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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여행 가방- 빈둥거려도 프라하!

프라하 살기 일주일째..

by 달의 노래

아침에 일어나기 무지 힘들었다.

어제 올로모우츠 여행 후유증인가 보다.

오늘은 프라하의 자부심인 프라하성을 여유 있게 돌아본다.

프라하성은 프라하 어디에서나 보일만큼 위용이 대단하다.

그 규모는 단연 압권이다.

그리고 성 안의 비투 성당..

수세기 동안 건물 축조와 보수를 거듭한 비투 성당은 바로크, 고딕과 르네상스 양식을 다 볼 수 있다.

화려하며 정교한, 거기다 성서의 스토리텔링까지 담은 스테인드글라스를 보니 우리나라 사찰의 정교한 단청이 묘하게 오버랩된다. 우리가 이들의 예술에 감탄을 자아내듯 이들도 우리의 천년 사찰을 보며 감동을 받을지 궁금하다.


프라하성까지 올라오느라 다리가 아픈지 프라하성 입구 광장에 퍼질러 앉은 지나와 제니..

우리가 언제 또 이렇게 프라하성 바닥에 퍼질러 앉아보겠는가.

우리, 하고 싶은 거 맘껏 하다가 집으로 갑시다요.


프라하성 안에는 '황금소로'가 있다.

연금술사들이 주를 이루던 마을이라 '황금'이고, 아주 작은집들과 좁은 길이라서 '소로'라 이름 지어졌다 한다. 솔직히 나는 황금소로의 소로는 영어 sorrow인 줄 알았다. 괜히 연금술사들의 슬픔이 묻어 있는 골목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그냥 단순히 좁고 작은 길의 '소로'일 뿐이다.

황금소로에는 카프카의 작업실이 있다.

카프카는 알폰소 무하와 더불어 명실공히 체코의 보물이다.

어딜 가나 카프카 관련 기념품이 있다.

말년에 카프카는 여동생이 거주하는 마을로 이사하는데 바로 여기 연금술사들의 마을인 황금소로 22호인 것이다.

한 사람만 드나들 수 있는 좁은 공간.. 공간의 크기와 사유의 크기는 오히려 반비례할 수도 있겠구나 싶다.

연금술사들이 대거 살면서 이 마을은 점차 빈민촌으로 전락하게 되고 나중엔 군인들의 숙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 소로의 집들 중 그나마 두 칸짜리 집이 있는데 '마틸다'라는 한 예언가의 집이다. 2차 대전 독일의 패전을 예언한 탓에 게슈타포에 의해 총살되었단다. 황금소로에선 그녀의 집이 가장 살림집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저녁이 되어 우리는 바츨라프 광장으로 간다.

프라하 여행의 시작이라는 바츨라프 광장.

명성에 걸맞게 바츨라프는 지하철 두 정류장을 걸쳐있다.

큰 대로 양쪽엔 옷 가게, 카페, 레스토랑, 서점, 쇼핑센터, 호텔 등이 즐비하고 대로의 가운뎃 길에는 기념품을 팔거나 전시를 하는 부스들이 꽤 있다.

저녁식사를 어디서 먹을까 얘기를 나누며 바츨라프 광장의 중간쯤 왔을 때 어디선가 흐르는 멋진 재즈 연주에 발을 멈춘다.

중세시대 콘셉트의 식당에서 연주가 흘러나온다.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픈 우리는 음식 맛은 별 기대하지 말자며 들어갔는데 웬걸.. 맛도 서비스도 정말 훌륭하다.

재즈 밴드의 멋진 연주가 귀와 심장을 황홀하게 한다.

오늘 프라하 탐험은 이렇게 멋지게 마무리한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거지인지 왕자인지 알쏭달쏭한 차림의 기사가 사진을 찍자고 해서 못 이기는 척하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밀착한 채 그의 얼굴을 보니 쓸데없이 너무 잘 생겼다.

무심코 거지 왕자님 허리에 두른 손에 나도 모르게 힘이 꽉.. 못된 손의 주인은 한참 흐뭇했다나 뭐래나..


< 빈둥거려도 여전히 프라하 >


원래 오늘은 온천도시로 유명한 '까를로비 바리'라는 근교 도시에 갈 계획이었으나 전날 의논한 결과 오늘 오전은 각자 빈둥빈둥거리기로 의견 일치를 보았다.
빈둥대도 여긴 프라하다.
제니는 집 근처 공원 산책과 프라하성의 궁전 정원을 돌아보고 오겠다며 홀연히 사라진다.

- 4시간 후-
점심을 먹으러 나간다.
우리의 동선은 카를교 건너 캄파섬 둘러보기, 카프카 뮤지엄, 존 레넌 벽을 본 다음 저녁엔 클래식 연주회 가기다.
리파블리끼 광장(공화국 광장)에서 내리니 신나는 트럼펫 연주 소리가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광장 한편에 짚을 깔고 나무상자 몇 개를 의자 삼아 오픈 펍을 열고 있는 이 곳은 'king's wood'라는 나무간판을 걸고 있다.
분위기 참 좋다.


못 보던 시장이 서있다. 규모는 작은데 물건들이 다르다.
여기 이 시장의 모든 물건이나 농산물들은 다 직접 만들고 키운 것이라고 하는데 Farmer's Market이라고 보면 되겠다.
목걸이 펜던트를 고르고 줄을 고르니 아저씨가 즉석에서 목걸이를 완성해준다.
마음에 쏙 든다.

시장을 어슬렁거리며 손에 든 크로와상 샌드위치와 맥주로 점심을 해결한다.

토마토 모양이 참 다양하고 양파도 종류가 참 많다.
특히 저 빨간 양파는 아삭한 맛이 정말 좋다.

이제 배도 부르겠다, 시장에서 기념품도 샀겠다, 리파블리끼 광장, 까를교, 캄파까지 쭉 걸어보자.
(대략 남포동에서 부산역까지의 거리)

까를교 아래에서 클래식과 팝을 연주하는 이 친구들의 실력은 진짜 놀랍다.

50 코룬을 이들의 첼로 케이스에 아낌없이 쾌척한다.

첼로 케이스에 낯익은 글자가 보여서 자세히 보니 '감사합니다. 독도는 대한민국 땅'이라는 포스트잇이 붙여져 있다.


Who wrote this?
I don't know. A Korean gave it to us.


거리의 연주자를 위한 어느 멋진 한국인 여행자의 아이디어가 기발하다.


존 레넌의 벽으로 걸음을 옮긴다.

주로 레넌의 노래 가사의 한 구절이 적혀 있고, 잠시 서서 생각하게 하는 짧은 문구들도 적혀 있어서 읽는 재미가 있는 곳이다.

그중 제일 마음에 들었던 낙서는 바로,


Happiness is only real when shared.


낙서들을 쭉 읽는데 이런.. '소영아, 사랑해'라고 볼펜으로 적은 낙서에 눈살이 찌푸려진다.
그런 건 소영이한테 직접 말로 해도 되는데 말이다.


다리가 너무 아프다.
이 더운데 걸어도 너~~~ 무 걸었다.


카프카 뮤지엄을 찾아간다.
생뚱맞게 카프카 뮤지엄 마당엔 두 남자가 마주 보며 소변을 누는 분수가 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넘들이 움직이기까지 한다. 옆으로, 위아래로..
소변 줄기도 세어졌다가 줄어들었다가.. 오, 완전 실감 나는 라이브 분수다.


잠시 카페에 앉아 시원한 레모네이드로 땀을 식힌 후 오늘의 마지막 여정이자 하이라이트인 클래식 콘서트홀로 간다.

모차르트가 사랑한 프라하에서.. 더하여 비발디, 드보르작, 스메타나의 체코에서.. 그들의 출렁이는 음표가 전하는 스토리를 들을 수 있다니 실로 감개무량하다.

지금 여기.. 좋은 친구들과 함께 수 백 년 전의 이들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 감사하고 감사해서 목구멍이 아플 지경으로 울컥한다.

집에서 두 아이들을 보살피고 계시는 친정 엄마, 송사마, 그리고 엄마의 여행을 늘 응원하는 착한 아이들이 있어서 나는 얼마나 행운인가. 가족의 고마움을 생각하니 더 놀다 가고 싶은 마음이 싹.. 더 생긴다.


가슴 벅찬 공연이었다.

리파블리끼 역 28번 트램을 타고 집으로 가려면 리파블리끼 광장을 가로질러야 한다. 오늘 밤도 어김없이 거리의 악사들이 그들만의 퍼포먼스를 멋들어지게 하는데 건장한 남자들이 맨살에 멜빵 가죽치마만 입고 연주와 차력쇼 비슷한 것을 한다.

그들의 맨살 공연을 흐뭇하게 보다 정신 차리고 다시 트램 타러 정류장으로 총총..


밤 9시가 넘어도 해질 줄 모르는 프라하에서 나도 쉬 잠이 들 것 같지 않다.



네루도바 거리

프라하에서 지낸 지 어느새 열흘이다.

오늘은 프라하성 후문에서 연결되는 귀족 거리 네루도바를 가보기로 한다.

하루에도 여러 번, 그것도 매일 보고 가게 되는 곳이 있다.

바로 우리만의 랜드마크인 '화약탑'과 '리파블리끼 나메스띠(공화국광장)'
프라하 올드타운의 처음과 끝은 이 두 곳에서 시작되고 마무리된다.

오늘의 시작은 '프라츠키흐라드(프라하성)'이다. 끝은 역시 화약탑을 거쳐 리파블리끼~


내일이면 이별할 우리 동네, 레텐츠키 나메스띠의 표지판도 오늘은 더 애틋하다.

사실 프라하성을 한번 더 보고 싶긴 했다.
하루를 완전히 할애해도 모자랄 수 있는 규모이나 우리는 고작 반나절만을 봤으니 말이다.
다시 올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어디서 보든 정말 아름다운 프라하다.
아름다운 건 아름답다는 단순한 진리의 프라하..


네루도바 거리가 시작된다.
아무래도 프라하성에 가까울수록 더 높은 지위의 귀족 가문이 아니었을까.

백조 문장, 사슴 문장, 사자 문장 등 집마다 가문 고유의 문장으로 장식되어 있다.

이 중 사자 문장의 가문이 제일 유명한데 현재는 루마니아 대사관이다.

루마니아 대사관 바로 맞은편은 이탈리아 대사관이 있다.

대사관 대문을 장식하는 무어인 조각상은 관광객들에게 포토 포인트로 인기가 높다 한다.


페스트가 유럽 전역을 휩쓸고 간 후 희생자들의 명복도 기리고 두 번 다시 전염병이 돌지 않기를 기원하는 의미로 세워진 삼위일체상.
네루도바 거리가 끝나갈 즈음 있는 이 삼위일체상 바로 앞에 '성니쿨라셰 성당'이 있다.
70 코루나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다.

여태껏 봤던 성당들과는 사뭇 다르다.

무엇보다 화려한 내부장식과 거대한 성인들의 조각상들이 과거 이 성당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하게 한다. 대표적인 바로크 양식의 성니쿨라셰 성당에 들어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 성니쿨라셰 성당이 유명한 또 하나의 이유는 요양차 프라하에 들렀던 모차르트가 이 성당에 초대되어 파이프 오르간을 연주했기 때문이란다.
저기 파이프 오르간이 보인다.

길을 따라 내려가면 자연히 까를교와 만나게 된다.
까를교 건너기 전에 있는 핫도그 집은 맛과 저렴한 가격으로 유명하다.

노천카페도 좋지만 오늘은 다른 이들처럼 서서 핫도그와 시원한 콜라를 즐겨본다.


'믈레이니체'에서의 마지막 저녁식사


첫날엔 위치만 파악하고, 두 번째 방문 땐 자리가 없어 돌아가고, 오늘이 세 번째 방문이다.
7시 정도면 저녁식사로 빠른 편인 데다가 비도 오니 사람들이 별로 없으리라는 희망으로 나선다.
오.. 아슬아슬하게 자리가 하나 있다.
믈레이니체의 웨이터는 우리 얼굴이 낯익은 지 반겨준다.
다행히 자리도 좋다.

세계 맥주대회에서 1등을 했다는 벨벳 맥주..
나도 한 모금 마셔보니.. 아오,, 부드럽고 맛있다!

우리가 주문한 것은 매운 양념의 비프스테이크와 양송이버섯을 곁들인 안심 스테이크, 그리고 감자요리, 마늘빵.
마늘빵 보고 빵 터진다.
빵 옆에 통마늘 몇 조각.. 그것이 바로 마늘빵!
상추도 곁들여 있고 빵과 함께 나온 마늘도 있고 스테이크의 양념도 약간 짜니까 제대로 쌈 싸 먹어볼까?


믈레이니체는 일 년에 한두 번은 체코 오케스트라와 녹음 작업을 하러 온다는 유명 음악감독 이웃 블로거의 포스팅을 보고 찜 해놨던 곳인데 워낙 유명한 곳이라 늘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한 번에 성공하면 you are so lucky~

리파블리끼 광장의 스타벅스 옆 골목에서 첫 왼쪽 옆길로 막다른 골목까지 쭉 들어가면 있다.

이제 우리는 리파블리끼 광장과 이별한다.

재즈 페스티벌이 한창인 광장에서 재즈 연주에 몸을 흔들며, 천문 시계탑의 열 시 타종도 듣고, 우리의 화약탑.. 그 멋진 야경을 한번 더 눈에 담은 후, 리파블리끼 나메스티 트램 정류장에서 레텐스키 나메스티로 가는 8번, 26번 트램을 기다린다.


<Good bye, Praha!>

새벽 6시..
'미리애, 자는척하지 말고 일어나요~~ 까를교 일출 보러 간다 했잖아~'


내가? 아침에? 까를교를?
간밤의 천둥번개와 거센 비 때문에 양질의 잠을 못 잔 터라 그냥 눈감고 계속 자는 척하다 진짜 잠들려고 했는데 실패다.
부산하게 움직이는 지나와 제니를 보니 더 잘 수도 없는 노릇이다. 길~~ 게 하품 한번 하며 일어난다.

환상의 팀워크로 프라하에서 2주를 해피하게 보낸 꽃보다 언니팀의 마지막 산책은 당연히 까를교이어야 한다.


< 아침 8시 >
까를교를 건너면 말라스트라나 광장이 나온다. 광장이라고 해서 넓은 곳이 아니라 사방에 건물이 있고 가운데 동상이라도 설 공간이 있다면 그곳은 광장(나메스티)이다.
아침을 먹어야 하는데 아침부터 오픈한 카페 찾기가 쉽지 않다.
이럴 땐 스타벅스를 찾는 게 최선이다.
스타벅스는 여행자들에겐 쉼터이자, 키친이자, 작업공간이며 안락한 화장실까지 약속받는 곳이 아니던가.


아, 반가운 공중전화..
우리나라 거리에서 사라진 것들을 꼽으라면 단연 이 공중전화와 휴지통이 아닐까?
프라하엔 두어 발짝만 걸어도 사방에 휴지통이 있어 아무렇게나 버려진 쓰레기들을 찾아볼 수가 없다. (아.. 담배꽁초는 빼고.)
담배 피우는 사람들은 담배꽁초 아무렇게나 버리는 것을 별로 개의치 않는 듯하다. 동서양인을 막론하고 스모커들의 습성이 그런 것 같다.


어제 네루도바 거리에서 맘에 드는 시장바구니가 있었는데 하나만 산 것이 후회되어 다시 가게에 가니 너무 이른 시각이라 오픈을 안 했네.
여행지에서는 빽도가 없다는 불편한 진실을 잊지 말라.
마음에 드는 것은 미루지 말고 넉넉하게 사두기..

네루도바를 걷다 멋진 골드 카를 만났다.

이 차의 주인은 누굴까?


오전 11시..
이리저리 아쉬운 듯 구경을 하다 말라스트라나에서 12번 트램 타고 집으로 온다.
서로의 자리에 앉거나 누워서 우리는 각자의 폰에 있는 서로의 사진들을 카톡으로 슝슝 정산을 한다.
이 시간이 제일 재미나다.
사진들을 보면서 다시 한번 키득키득하는 이 시간이 너무 좋다.

이제 제니와 나는 진짜 가방 싸기를 한다.
어젯밤 대충 싸놓았지만 혹여 빠진 것이 있을 수 있으니 한번 더 체크해야 한다.
혼자 하루를 더 있을 지나가 새삼 걱정이다.
항공 티켓을 우리보다 늦게 산 탓에 우리의 귀국날에 비행기 좌석이 없어 부득이 다음날 체코항공으로 와야 하는 지나 언니.. 우리 없이 하루를 잘 보낼 수 있을까?(는 우리의 기우로 판명~)


오후 3시 30분..
인심 넉넉한 집주인 아저씨도 작별인사를 하러 와주시곤 후기 좀 잘 써달라며 신신당부를 하신다.

오후 4시..
아.. 우리가 신청한 Praha airport transfer service의 기사님이 픽업하러 왔다. (강추! 21.5유로)
정말 지니와 작별 인사할 시간이다.
벌써 눈물이 그렁한 지나 언니.. bye...
And.... bye, Praha... I will never forget you.


<에필로그>

중년 여자 셋이 함께 지낸 프라하의 시간들은 자유 그 자체였다.

하고 싶은 건 하고 하기 싫은 건 하지 않을 자유와 가족 걱정을 하지 않을 자유, 직장 생각 따윈 하지 않을 자유..

걷고 싶은 시간에 걸을 자유, 먹고 싶은 시간에 먹을 자유..

우리는 그동안 결혼, 육아, 시댁 식구, 그리고 거기에 이름 붙여지는 여러 가지 역할들로 지내며 나를 잃고 또 잊어 왔다.

단 2주간의 시간이었지만, 나는 누구였으며, 누구 집 딸이었음을 찾았고 기억했다.

중년이 되어서야 진정한 자유&여행을 시작할 수 있어서 감사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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