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게타, #말라가 대성당 #피카소
ALSA버스는 도시 간 이동의 주요 수단이다.
그라나다에서 말라가까지는 버스로 1시간 40분이 소요된다.
말라가는 한국인 여행객들이 말라게타 해변 사진을 '찍고만' 가는 도시인데 우리는 말라가에서 제대로 휴양을 할 작정이다.
유럽인들이 여름휴가를 가장 보내고 싶어 하는 도시로 꼽는 이유가 분명 있을 거라는 생각에 이번 여행 숙소 중 가장 비싼 파라도르 히브랄파로에서 2박을 한다.
파라도르(Parador)는 스페인 정부에서 운영하는 국영호텔이다. 고성(old castle), 옛날 시청 등을 개조해서 만들었다는데 일반 호텔보다 비싸지만 성주가 자신의 영지를 내려다보던, 전망이 일품인 Old castle에서 지내보는 것도 특별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파라도르를 스페인 여행의 테마로 잡기도 한다.
파라도르가 있는 도시만을 여행하는 것이다.
나는 말라가, 론다, 톨레도 세 도시의 파라도르를 예약했다. (일찍 예약을 해서 프로모션 가격이라 일반 호텔과도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
부킹닷컴이나 트립어드바이저에서 예약을 해도 되지만, 파라도르 공식 홈페이지에서 회원가입을 하면 아미고 카드를 받을 수 있다. 이 카드로 조식 무료 쿠폰을 받을 수 있으니 다소 번거롭더라도 파라도르 홈페이지에서 예약해보기를 권한다.
나와 남편 이름으로 회원가입을 하고 각자 아미고 카드를 발급받으니 조식 바우처는 두 장이 된다.
바우처 하나로 회원과 동반자 1인까지 무료 조식을 먹을 수 있다.
말라가에서는 내 바우처로, 톨레도에서는 남편 바우처로 조식이 다 해결된다.
론다 파라도르는 프로모션으로 조식 포함이다.
그리고, 전망 좋은 방은 공식 홈페이지에서 예약을 하면 우선 배정받을 수 있으니 why not!
말라가 파라도르에 체크인 후 도시 구경을 시작한다.
우리가 있는 곳은 도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언덕 위의 성이고, 바로 뒤에는 히브랄파로 요새가 있다.
그라나다에서 알람브라를 보고 온 후라 그런지 히브랄파로 요새는 크게 와닿는 곳은 아니다.
말라가 대성당으로 간다.
대성당 근처는 골목들이 많고, 먹을 곳도 많다. 즉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중심가인 것이다.
대성당 가까이에 피카소 박물관이 있다.
피카소의 고향 말라가(?).. 꼭 가~.
피카소 가족들이 박물관에 기증한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입장료는 10유로, 영어 해설 폰은 무료다.
우리 집에는 피카소의 그림 한 점이 있다.
물론 가짜다.
송사마 친구가 결혼선물로 준 꽤 큰 크기의 액자인데 20년이 지나도 그림이 지겹지가 않다.
난해한 작품이라 아직도 이해를 못 하고 있기에 지겨울 수가 없다.
피카소의 매력이다.
피카소 박물관에서 보았던 그의 그림들도 하나같이 난해했다.
'나는 대상을 눈에 보이는 대로 똑같이 그리지 않는다. 나는 사진작가가 아니란 말이다.
내 눈에 보이는 대상이 내 마음에서 받아들여질 때의 느낌, 그 느낌으로 표현할 뿐이다.'
그가 그린 여성들의 누드를 보자니 그의 마음의 눈으로 본 여자의 몸은 서커스 단원의 그것처럼 유연하고, 통아저씨처럼 잘 접고(?), 요기처럼 사지를 잘 나누는 것이었나 보다. 아니면 그렇게 유연하기를 바랐을까?
여자들이여, 식초를 마시자.
부부의 냉전은 늘 말 한마디로 촉발된다.
말라가 역에 있는 스페인 마트인 메르까도나에서 물과 납작 복숭아를 사려고 들어 갔는데 남자는 와인 한 병을 사고 싶어 했다. 와인은 진짜 싼 편이다.
남자가 레드와인 한 병을 담는다.
"그거 무슨 와인이야?"
"뭐긴, 와인이지."
여기서 여자는 빈정이 팍 상한다.
"누가 와인인 거 몰라?
무슨 품종이냐는 거지!"
여자의 목소리엔 칼날 같은 날카로움이 서렸고 남자는 여자의 격앙된 반응에 순간 당황하며 대응한다.
"당신, 왜 소리 지르는데?"
"대답이 그게 뭐냐고!
와인 고르는 거 보면서 무슨 와인이냐 물으면 '뭐긴 와인이지'가 제대로 된 답인가?
귀찮다는 답이지! "
여자는 레이저를 쏘며 휙 가버리고, 남자는 담던 와인을 다시 갖다 놓으며 슬슬 따라온다.
여자는 납작 복숭아 네 개와 물 한 병을 사고 계산을 하려 하니 풀 죽은 채 다시 제자리에 갖다 놓던 그 와인이 어느새 계산대 위에 있다.
"2.9유로밖에 안 해서.."
이렇게 맥락이 없다.
와인 값이 아까워 못 사게 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 남자의 매력은 가끔씩 나를 피식~웃게 만드는 데 있다.
말라게타 해변을 산책한다. 너무 뜨겁다.
덥다는 말로는 표현이 안 되는 뜨거움.
냉랭해진 두 남녀가 놀라 손을 잡는다.
젖가슴을 드러낸 여자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사실에 남자는 놀란다.
'여보, 여기 천국인가?' 하는 저 표정을 보라..
여자도 놀라기는 마찬가지다.
젊고 날씬하고 탄력 있는 여성이나, 늙고 축 처진 가슴과 뱃살의 여성이나 태양 아래에선 그저 웃통 벚어젖힌 남자들처럼 "인간"일뿐이다.
뭐, 어때서! 여자도 사람이다. 꽁꽁 싸매어 놓은 거 바다에서라도 해방시키련다..라고 말하는 듯한 자유로운 여성들..
갑자기 내가 초라해진다.
자연스러운 그녀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말라게타 비치의 끝자락까지 긴 거리를 걸었다.
파라도르에 돌아오니 늦도록 이어지는 디너와 심장을 파고드는 기타 연주 소리에 절로 릴랙스 되며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든다.
아침에 일어나니 온 삭신이 쑤신다.
쉰 남자는 파라도르에서 해변까지 운동하러 나간다.
쉰 여자는 침대에서 바스락 거리다 풀장으로 간다.
아,, 풀장에선 또 초로의 남녀가 엉켜있다.
'마이 좋은가배..'
남자는 멋지게 생겼는데 배가 남산만 하고, 여자는 와.. 그저 와.. 나이 들어도 당당하고 섹시한 멋이 비키니 입온 몸에서 흘러 나온다.
진짜 멋지다.
수영을 하니 좀 살 것 같다. 뭉친 근육들이 풀어지고 기분도 한층 올라온다.
그렇게 두 시간쯤 혼자 놀고 있으니 많이 본 남자가 바싹 구워진 채 여보~하며 다가온다.
헉, 뉘신지..
나도 까맣게 탔지만 남편도 진짜 많이 탔구나.
저 수염 때문에 더 까매 보인다.
수영하며, 선탠하며 제대로 쉼표를 찍는다.
저녁엔 다시 대성당이 있는 광장에서 말라가로 넘어온 친구와 만나 저녁식사를 11시가 넘도록 했다. 주류파 두 명은 와인 두 병을 마시고, 나도 분위기가 너무 좋아 틴토라는 약한 탄산 포도주 한잔 한다.
말라가에서의 마지막 밤은 바알간 와인색으로 물들고..
파라도르에 돌아오니 말라가의 아름다운 야경에 쉽사리 잠들 것 같지 않지만 눕자마자 깰꼬닥..
10시 05분 기차 타고 론다로 이동한다.
파라도르에서 보이는 말라가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