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모메 식당으로부터 헬싱키 여행이 시작되다
<프롤로그>
헬싱키 착륙 30분 전, 핀에어 기장은 현재 헬싱키는 비가 내리고 있고, 기온은 18도라고 알려준다.
헬싱키는 현재 싸-하다는 말이다.
헬싱키의 첫 느낌은 뭐랄까.. 신비함이 없었다.
다만 설렘은 그대로였다.
<카모메 식당>을 열 번은 보았고, 볼 때마다 헬싱키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기는 일이지 않는가.
필 꽂히는 영화마다 배경 장소를 갈 수도 없는데 헬싱키는 왜 그리도 끌리던지 말이다.
함께 모임을 하는 발령 동기들과의 곗돈이랄까.. 뭐랄까.. 무튼 5년 만에 또 불어난 모임 회비로 하와이행 비행기 티켓팅을 다 해놓고는 얼마 뒤 내가 틀어 버렸다.
"얘들아, 하와이 보다 핀란드가 더 낫지 않겠늬?"
나의 변심으로 먼저 하와이에서 2주간 부부 휴가를 보내기로 한 계획이 물거품이 되어버려 속상해하던 나의 송사마에게 지금에야 심심한 사과와 감사의 변을 슬쩍 전한다.
싱글 침대가 네 개인 호텔방이 마음에 든다.
성인 네 명이 낸 호텔 2박 요금은 40만 원이 조금 넘는다.
핀란드 물가에 비하면 접근성 최고의 위치에 이만한 가격대의 호텔을 잡은 것은 7월 말의 숙박을 이미 1월에 예약한 내 쓸데없는 부지런함 때문이라고 자찬.. 하는 이 뻔뻔함은 또 뭔가.
실은 더 일찍 예약해 둔 에어 비앤비 숙소에 대한 후기가 마음에 걸려 취소한 후 어렵게 찾은 호텔이다.
중앙역에서 구글맵을 켜고 '호텔 아르튀르'를 찾아가면서 헤매고 힘들었던 얘기는 쏙 빼버리겠다.
유럽의 돌길.. 유럽의 매력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그 눔의 돌길은 캐리어 끌 때만큼은 뾰족한 짱돌로 다 파내고 싶다고만 해두겠다.
여자 넷은 언니팀, 동생팀으로 나뉜다.
넷은 개성이 무척 강하고 자기만의 까칠한 영역이 다 다르기에 서로 조심해야 할 부분을 존중하는 센스 정도는 각자 쓸 유로화와 함께 갖고 오기로 했다.
그눔의 돌길 위로 캐리어를 덜거덕 낑낑 거리며 끌고 숙소에 도착한 후 제일 먼저 간 곳은 '마켓 광장'이다.
<카모메 식당>에서 삶에 지친 '마사코'가 세계지도를 눈 감고 찍어 나온 데가 헬싱키였다.
여행가방이 바뀌어 오도 가도 못한 그녀가 멍하니 바다를 보며 서 있던 곳이다.
나도 마사코처럼 그 자리에 서 있다.
끼룩끼룩 낮게 날아다니는 갈매기들은 뒤룩뒤룩 살이 쪄 꼭 용두산 공원의 돼둘기 같다.
마켓 광장은 일명 fish market이라고도 하는데 비린내가 좀 난다. 6시에 파장을 하는데 파장 20분 전에 구운 연어와 청어, 야채들을 접시 한가득 담아 10유로에 주겠다니 입맛 없어도 뭐 어쩌겠나.. 맛있게들 잡솼다.
그리고 찾아간 곳은 바야흐로 카모메 식당이다.
중심가에서 벗어난 곳이라 트램을 타고 갔다. 한국사람 몇 팀, 일본 사람 몇 팀으로 작은 가게가 가득 차 있다.
운 좋게 딱 한 테이블이 남았는데 키친에서 준비 가능한 주문을 초과해 버렸다며 예약을 하고 다시 찾아달라고 했다.
다음날 점심식사 예약을 하고 나왔다.
그래, 내일 이른 점심을 여기서 하자..
좀 더 걷다가 들어가기로 한 여자 넷은 아까 봐 둔 초록 잔디와 어마어마한 크기의 나무들이 가득한 공원으로 갔다.
시간은 밤 9시가 넘었다.
자꾸 하품이 나오고 눈이 감기는 건 여독과 나이 탓인가.
아니다.. 한국시간으론 이미 새벽 3시가 넘었다.
문여사는 무지하게 눕고 싶다.
모자를 쓰고 스카프로 입을 가린 채 잠시 공원 벤치에 누워 깜빡 잠이 들었는데 으스스 한기가 느껴진다.
동생파들은 기운이 남아돌아 사진 찍으며 깔깔깔 삼매경이다.
오늘은 여기서 시마이..
10시쯤 들어왔는데 밖은 아직 환하다.
다시 잠들기 위해 뒤척여도 잠 들 수가 없다. 왜? 밖이 환하기 때문이다.
이름하여 백야..
새벽 네시에 일어나서 수다를 떨다 6시 30분에 조식을 먹는 이변이 발생한다.
오늘의 첫 일정은 쭉 걷다가 쭉쭉 더 걷기다.
숙소 위치가 좋아 웬만한 곳은 도보로 거의 가능하다.
트램도 아주 잘 되어 있다.
헬싱키 대성당을 시작으로 원로원 광장, 우스펜스키 교회 등을 둘러본 후 여자 넷은 배를 타고 수오멘린나 섬에 간다.
수오멘리나 섬은 요새가 있는 곳인데 기대 이상으로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아주 소박한 나무 십자가의 교회가 있어서 들어갔다.
삼절 밟기도 아니고 반나절 사이 카톨릭 성당과 러시아 정교회와 루터 교회 등 세 곳에 들어가서 고개 숙여 온 마음으로 기도를 드렸다. 단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이었다.
방명록에 한 줄을 남기고 나왔다.
Thank God for leading me here.
아쉬운 마음으로 수오멘리나 섬을 나와 예약한 시간에 맞춰 카모메 식당으로 서둘러 갔다.
그 복잡하던 식당엔 영화에서처럼 손님이 한 사람도 없다.
'사치에'상과 비슷한 온화한 미소의 여자 주인이 굉장히 난처해하며 배수관이 고장 나서 당분간 영업을 못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헐..
헐~보다 어울리는 표현이 없는 상황이다.
축 처진 어깨를 뒤로 하고 온 길을 되돌아 가는데 나의 사치에 상(?)이 뛰어 와선 죄송하다며 판매용 초콜릿을 여자 넷에게 다 준다.
"그럼 우리에게 좋은 로컬 식당을 좀 추천해 주세요.."
그렇게 알게 된 레스토랑 "이스탄불"에서 터키식 점심 뷔페를 맛있게 먹었다.
헬싱키에서 12유로짜리, 심지어 맛도 있는 뷔페를 먹는 행운은 카모메 식당 두 번 까인 여자 넷에게 큰 위로와 보상이 되었다.
얘들아, 우리 헬싱키 가면 꼭 핀란드 사우나 체험해보자~
뭘 꼭 해보자 주의가 아닌 노플랜 문여사는 대중탕이나 온천을 싫어하면서도 사우나 체험은 왠지 하고 싶었다.
핀란드에서 살고 있는 한국 여성의 브런치 글을 읽고 Loyly라는 멋진 사우나 카페를 알게 된 것이다.
동생팀 J가 미리 Loyly 홈페이지에서 예약을 해왔다. 예약시간은 저녁 7시~9시 타임.
두 시간 동안 사우나를 즐길 수 있다.
우리 중 아무도 헬싱키의 해 질 녘이 그리 추운지 몰랐다..
남녀가 좁고 뜨거운 사우나 공간을 같이 사용해야 하니 수영복은 필수이다.
조신한 문여사는 원피스 수영복을 잘 챙겨 갔는데 원피스 수영복에 딸린 수영 빤스를 챙기지 않는 참사를 저지르고 만다.
크허헉..
그러나 담대한 문여사, 원피스 수영복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용도 변경한 빤스를 착용하고 당당하게 사우나에 들어가 숨 막혀 죽을 뻔하고, 호기롭게 바다에 들어가다 추워 죽을 뻔한다.
밤 10시의 석양이 어여 들어가라 배웅을 한다.
새벽부터 비가 많이 내린다.
암석교회를 오픈 시간에 맞춰 갔다.
비옷만 가져온 문여사는 암석교회 앞 기념품 가게에서 우산 가득 헬싱키라 적힌 14유로짜리 우산을 샀다.
암석교회는 말 그대로 바위 교회이다.
천장은 꼭 우주선 같다.
단체관광객들이 참 많이 왔다.
" Visitors, please silence! Shee...." 이미 녹음해 둔 모양인지 묵직한 음성의 여성이 계속 같은 말을 한다.
이번 여행은 '따로 또 같이' 콘셉트이다.
헬싱키에 함께 온 여자 넷은 헬싱키에서 스톡홀름과 프라하로 각자 가고 싶은 도시를 다녀오기로 했다.
그리고 이틀 후 헬싱키에서 다시 만나 이웃나라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을 함께 여행할 것이다.
언니팀은 스톡홀름행 비행기에 몸을 구겨 넣었다.
너무 좁은 비행기였다.
그만큼 싼 요금을 지불했다.
지난 1월 예약할 당시 헬싱키-스톡홀름 왕복 티켓 가격은 12만 원 남짓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