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결국엔 우리와 함께 하게 될 운명,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영화 <인터스텔라, Interstella>(2014)는 점차 황폐해져 가는 지구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행성을 찾고자 우주여행을 떠나는 SF 블록버스터다. 이 영화는 상대성이론을 바탕으로 웜홀과 블랙홀을 아주 현실적으로 다루기도 했다. 글쎄, 그곳에 가본 사람은 없어도 여러 이론과 연구에 근거한 내용을 바탕으로 연출한 것이라 (픽션이라 할지라도) 개인적으로는 사실적으로 느껴져 경이롭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각본은 메가폰을 잡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동생인 조너선 놀란이 썼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쿠퍼(매튜 매커너히)의 든든한 조력자로 등장하는 타스(TARS)라는 로봇은 외형으로만 보면 미래형 로봇이라고 하기에 다소 괴리가 있는데 필요한 정보를 찾아 전달하기도 했고 마치 사람처럼 농담을 하고 원활하게 소통이 가능한 것으로 볼 때 꽤 고도화된 인공지능임을 알 수 있다. 주어진 역할만 제대로 수행할 수 있다면 반드시 사람처럼 보일 필요도 없는 법.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대다수 SF 영화들이 사람과 닮은꼴로 로봇을 연출하는 경우와 굳이 비교하면 이 영화 속에 등장한 타스나 케이스 모두 독특한 편에 속한다.
네이버랩스가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2019 CES에서 선보인 로봇은 브레인리스(Brainless)라고 해서 머리가 될 수 있는 영역을 과감하게 없애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5G 시대에 이르러 통신만 할 수 있다면 충분히 주어진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기계의 무게도 줄일 수 있고 물리적인 제한까지 사라지기 때문에 효율적으로 활용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두뇌는 어디에 있을까? 어쨌든 로봇에 장착되는 메인 CPU나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연결고리가 있어야 작동을 하게 마련이지만 네이버랩스의 브레인리스 로봇은 클라우드와 5G를 이용한다. 로봇이나 인공지능이 점차 진화하게 되면 여기에 탑재되는 CPU나 메인보드 같은 칩들도 고성능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네이버랩스는 이를 클라우드와 통신 네트워크에 분리해 넣었다. 자,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5G를 도입한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 5G 폰이 등장하고 5G 요금제로 LTE보다 빠른 속도를 체험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나 아직까지 인프라는 미비한 수준이다. 본격 5G 시대는 조금 기다려야 하지만 벌써부터 6G와 7G를 연구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5G의 특징은 초고속, 초연결, 초저지연성인데 네이버랩스는 5G 통신 네트워크가 로봇과 결합되어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네이버랩스의 획기적인 아이디어는 실제 브레인리스 로봇으로 탄생한 바 있고 인텔이나 KT, 퀄컴 등 5G 인프라를 가진 기업들과 손을 잡고 시연에 성공하기도 했다. 머리, 두뇌가 없는 로봇의 탄생은 이제 영화에서 그치지 않는다.
홍콩에 메인 오피스를 두고 있는 핸슨로보틱스(Hanson Robotics)는 소피아(Sophia)라는 인공지능 로봇 즉 휴머노이드를 제작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표정 자체를 무려 60가지나 구현할 수 있다고 한다. 피부 자체만으로도 사람과 유사하여 누군가에는 소름이 돋을 정도일지도 모르겠다. 영화 <알리타 : 배틀엔젤>에서 알리타(로사 살라자르)를 지극정성으로 수리하고 다시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다이슨 이도(크리스토프 왈츠) 박사가 아빠였다면 핸슨 로보틱스의 CEO인 데이비드 핸슨(David Hanson)이 소피아의 아빠 같은 존재다. 영화 속에 등장한 알리타 역시 겉은 로봇이지만 인간의 감정을 가진 휴머노이드가 있는 것처럼 소피아도 인간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감정을 불어넣는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왜? 기본적으로 인공지능은 지성을 넘어 감성까지 인간을 모방한다. 로봇이 인류를 지배하지 않으려면 로봇이 가진 인공지능이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는 학습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핸슨로보틱스의 궁극적인 목표는 인간의 라이프스타일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 삶의 질을 높이는데 로봇이 기여할 수 있는 인공지능을 만드는 것이다. 사실 소피아의 외형만 봐도 '로봇'이라는 느낌이 자연스럽게 풍기는데 사람이라도 해도 무방할 정도로 외모를 가꾸는 것은 나중 문제다. 그러한 측면에서 핸슨로보틱스는 외모보다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것에 집중한다.
빅히어로에 등장하는 베이맥스는 디즈니의 놀라운 상상력이 섬세한 CG와 잘 결합된 작품으로 포근한 인상을 선사한다. 베이맥스의 외형 자체만으로도 사랑이 샘솟는다. 베이맥스는 히로(라이언 포터 목소리)의 형인 테디(다니엘 헤니 목소리)가 만든 힐링 로봇이자 히로의 친구다. 히로의 감정을 읽을 줄 아는 베이맥스는 인간의 상실감이나 슬픔을 온전히 이해하고 진심을 다해 안아줄 수 있는 로봇이다. 만일 이러한 친구가 곁에 있다면 어떨까? 네이버랩스의 로봇이 산업 전반이나 공공장소 등 일상생활에 투입될 수 있는 로봇이라면 핸슨로보틱스의 로봇은 베이맥스와 같이 곁에 두고 싶은 친구를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힘이 들 때 위로해줄 수 있는,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는 온기 있는 로봇을.
전 세계적으로 밀레니얼 세대가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면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이후에는 Z세대가 본격적으로 그 바통을 이어받게 될 것이다. 로봇 시대가 본격화되면 지금도 학습을 지속하는 인공지능 역시 놀라운 수준으로 진화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만 되어도 로봇과 사람의 커뮤니케이션은 마치 사람과 사람의 대화처럼 자연스럽고 익숙한 모습으로 보일테니까. 베이비붐 세대 전반에 걸쳐 꿈꿔왔던 로봇이 X세대와 밀레니얼 세대를 거쳐 (어느 정도) 실현되기에 이르렀고 Z세대와 더불어 이후의 세대들이 친구 같은 로봇을 마치 운명처럼 만나게 될 것이다.
2016년 아동용 AI 로봇 '코즈모(Cozmo)'와 크라우드 펀딩 킥스타터를 통해 주목받게 된 '벡터(Vector)'의 경우 꾸준하게 계단을 오르다가 파산이라는 결말을 맞이한 사례도 있다. 물론 실패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인공지능을 탑재한 기계가 꼭 로봇일 필요는 없었다. 음악을 듣고 날씨나 뉴스를 발화하는 인공지능 스피커만 있어도 충분하다는 것. 가정용 로봇이 그 이외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위에서 언급한 로봇들처럼 인간과 감정을 주고받는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기보다 시간이 필요한 이야기다. 만일 가정용 로봇이 책을 읽어주고 청소를 해주고 설거지나 요리를 해줄 수 있었다면? 사람을 대신해 (그것이 무엇이든) 가사 업무를 하거나 노동력을 나눌 수 있다면 실패할 가능성이 크게 낮아질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실패와 파산에 이르는 사례들을 꾸준하게 연구할 필요도 있겠다.
또 한 가지. 1970년 일본의 로봇 공학자인 모리 마사히로가 소개한 이론 중의 하나로,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 불쾌한 골짜기)라는 것이 있는데 어원으로만 보면 '이상하고 묘하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 이는 '인간이 인간이 아닌 존재 즉 로봇 같은 것을 볼 때 인간과 닮으면 닮을수록 호감도가 높아질 수 있지만 일정 수준이 되면 불쾌감을 느끼게 된다는 이론'으로 호감도의 증감 추이 그래프에서 따온 말이기도 하다.
더불어 괴기스럽게 생긴 기형적 로봇이나 인간보다 힘이 세고 특수한 능력을 가져 패배감이 들게 하거나 인간과 너무 닮아 소름이 끼칠 정도의 녀석들을 두고 언급하는 경우들도 있다.
'그래서 어쩌라고?'
이렇게만 보면 로봇이 가야 할 방향성, 정체성, 연구 목적, 제작 등 모든 상황에서 사용자와 교감이 필요하다. 산업 전반에 쓰이는 로봇이야 기계 자체로 받아들이고 있어 거부감이 없겠지만 일상생활 그것도 가정에서 활용하는 경우는 많은 것을 고려해야 하겠다. 영화 <A.I>에 등장하는 데이빗(할리 조엘 오스먼트)은 사람과 아주 닮은꼴이라 '데이빗은 사람이에요'라고 해도 믿을 수 있는 수준이다. 물론 영화지만. 그러나 언캐니 밸리라는 이론과 달리 데이빗 자체가 감정을 가지게 되면서 본래 제작 목적과 달리 변화한다는 것에 주목한다. 언캐니 밸리라는 것이 사람에게 해당하는 이론이라면 영화 <A.I>는 또 다른 개념의 스토리라 하겠다.
https://www.imdb.com/title/tt0212720/?ref_=nv_sr_1?ref_=nv_sr_1
이처럼 로봇은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이미 활용되고 있거나 일상생활 등 많은 부분에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인공지능이 발달하면서 로봇의 능력도 더욱 고도화될 것이고 이로 인해 사람의 편의를 도모하고 인류가 풀지 못한 난제들과 위협에서 벗어나게 해 주리라. <터미네이터>와 같이 인간을 위협하는 인공지능과 파괴적인 로봇의 등장은 사실 너무 앞서간 픽션이다. 인류의 손으로 개발한 인공지능, 이를테면 알파고와 같은 AI가 인간의 지성을 뛰어넘을 정도로 급격하게 발달한 것은 자명한 사실이지만 영화처럼 핵전쟁을 일으키거나 인간을 지배하려고 하는 거대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인공지능이 ‘생각’을 한다는 것인데 기본적으로 인간의 뇌와 기계 학습이 이뤄지는 로봇의 인공지능 영역은 너무 다른 차원이다. 지난 3월 11일, 대구광역시 소재의 엑스코(EXCO)에서 인간과 로봇 기술의 관계를 연구하는 학술대회가 열렸다. 이 컨퍼런스의 기본적인 토대는 로봇의 인간에 대한 위협이 아니라 인간과 로봇이 파트너이자 협력하는 차원의 ‘상호작용’을 이야기한다. 말 그대로 로봇이 인류를 위해 도움을 준다는 의미다. 픽션이라 할지라도 <범블비>와 같이 우리를 보호해주고 지켜주면서도 인간이 흘리는 눈물에 공감하는 베이맥스처럼 온전히 친인류를 위한 로봇이 등장하길 바란다.
<계속>
※ 로봇은 인공지능과 결합되어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정말 친구 같은 로봇이 생겨날 수 있을까요? 인간의 외로움과 쓸쓸함을 달래주고 감정을 이해해줄 수 있는 베이맥스가 있다면, 여러분은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로봇 분야는 꾸준하고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습니다. 역시 끝이 없는 분야이기도 하네요. 그런 의미에서 이 글 역시 '계속'이라는 단어를 남깁니다. 수정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꼭 알려주세요!
<같이 보는 영화>
- <인터스텔라> : https://www.imdb.com/title/tt0816692/?ref_=nv_sr_1?ref_=nv_sr_1
- <알리타 : 배틀엔젤> : https://www.imdb.com/title/tt0437086/?ref_=fn_al_tt_2
<참고>
- <5G 브레인리스 로봇에 대해 반드시 알아야 할 5가지>(2019.5.2), naverlabs.com
- <This is what the future of robots might do to humanity>(2018.11.28), forbes.com
- Hanson Robotics, hansonrobotics.com
- <What is the Uncanny Valley?>(2019.11.6), spectrum.iee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