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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러브레터

- 폴라로이드 SX-70

by JI SOOOP

겨울이면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1995년 이와이 슌지 감독이 만든 '러브레터'다. 눈 내리는 오타루의 풍경과 함께 펼쳐지는 아련한 첫사랑 이야기는 지금도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린다.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주인공 히로코가 소포로 받은, 바로 폴라로이드 SX-70 카메라다.


폴라로이드 SX-70은 1972년에 출시된 혁신적인 폴라로이드 즉석 카메라로, 당시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했다. 접이식 디자인과 자동 현상 시스템, 그리고 순간을 즉시 포착하는 마법 같은 능력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히로코에게 폴라로이드 SX-70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추억을 즉시 소환하면서,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잇는 타임머신이다. 후지이 이츠키가 남긴 유일한 형태의 기억이기도 하다. 카메라의 뷰파인더를 들여다보며 히로코는 이츠키와 함께했던 순간들을 되새긴다. 셔터 소리와 함께 사진이 천천히 현상되는 모습은 마치 과거의 한 장면이 현재로 서서히 떠오르는 듯하다.


폴라로이드 SX-70의 접이식 디자인은 히로코의 복잡한 내면을 대변하기도 하는데, 필요할 때 펼쳐지고 때로는 접혀 있는 카메라처럼 그녀도 감정을 적절히 조절한다. 즉석 현상 시스템은 히로코가 자신의 감정을 즉각적으로 마주하는 모습과 닮아있다. 순간을 포착하는 능력은 그녀가 현재의 소중함을 알아가는 과정을 암시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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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 폴라로이드 SX-70은 종종 클로즈업으로 등장한다. 카메라에서 천천히 나오는 사진, 그리고 점점 선명해지는 이미지. 이 모든 것이 히로코의 내면세계를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그녀의 복잡한 감정, 점차 선명해지는 기억, 그리고 서서히 치유되는 마음을 말이다.


특히 인상적인 장면은 히로코가 설산에서 "오겡끼데스카?"(잘 지내시나요?)를 외치는 장면이다. 그녀는 폴라로이드 SX-70을 들고 있지만, 셔터를 누르지 않는다. 이는 더 이상 과거의 이미지에 매몰되지 않고 현재를 직시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카메라는 그녀의 곁에 있지만, 이제 그녀는 현상된 사진이 아닌 눈앞의 현실을 바라보게 된다.


'러브레터'에서 카메라 셔터 소리와 함께 우리는 히로코의 마음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는 사랑과 상실, 그리고 새로운 시작에 대한 보편적인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우리는 문득 오래된 폴라로이드 사진들을 꺼내보고 싶어 질 것이고, SX-70을 들고 눈이 쌓인 오타루로 여행을 가고 싶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이 언젠가는 그리운 추억이 될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추억을 즉시 현실로 만들어낼 완벽한 도구가 바로 폴라로이드 SX-70이라는 것을.




“오겡끼데스카, 와타시와 겡키데스.”(잘 지내시나요, 저는 잘 지내요)

배우 나카야마 미호는 지난해 12월 6일 숨졌습니다. 향년 54세. 그녀의 아름다웠던 시절은 영원한 설원에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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