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미 Jul 11. 2023

“난 동해 바다 고래도 무섭지 않았어”

제주 아기상군 해운대 블라디보스토크에 가다 : 청진항의 기억 1

# 제주에서 부산, 다시 청진까지


강예길 할머니의 기억 속에 울산 얘기는 그렇게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사실 이 부분은 질문자의 영역이다. ‘만약 나였더라면…’하는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마저 없었다면 그 당시 떠돌던 풍문 정도로 제주해녀들의 출가 경로를 유추하는데 그칠 수밖에 없었을 일이다. 연구 초창기가 그렇듯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물질을 갔었다’는 사실을 중심으로 인터뷰를 하면서, 구체적인 동선이며 빠진 부분을 추가해 묻지 못한 이유가 컸으리라 추정된다. 강 할머니가 자주 언급하는 ‘경상도’에 부산과 더불어 울산이 있었다는 사실을 추정할 수 있다. 녹취한 내용을 정리하는 과정에서도 필요에 의해 누락한 부분도 있다.

강 할머니가 풀어내는 얘기 중에 박진감이 넘치는 포인트가 크게 두 개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고래 잡이’, 포경(捕鯨)과 관련한 내용이다. 고래 얘기를 하기 위해서는 역시 강 할머니의 출가(出稼) 경로를 눈여겨봐야 한다.     

한국형 귀신고래. 한국계 귀신고래가 수면으로 부상하고 있다. 고래연구소가 2007년 러시아 사할린에서 촬영한 것이다. 자료사진

고래 얘기는 청진항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당시 어떻게 청진까지 갈 수 있었냐는 일제강점기 ‘기계배’도입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를 통해 대륙과 연결하고 다시 사람과 물자를 실어 나르기 위해 육지에는 철도가 깔렸고, 바다에는 기선이 도입됐다.

제주-부산, 목포를 연결하는 노선에 투입된 배는 주변 항구를 모두 들르는 형태로 운영됐다. 부산에서 다시 다른 지역으로 움직이는 노선은 처음 인천과 신의주 등을 목적지로 구성됐다. 원진‧청진항이 언급된 것은 『조선총독부관보』1922년 4월 26일 정규호 2908호 ‘명령 항로 개시’에서다. 당시 개시된 항로는 인천과 진남포(결빙 때 제외), 신의주(〃), 다이렌(대련), 즈푸(지부‧엔타이 연대 옛 지명), 칭타오(청도)를 월 2회, 연 27회 이상 운항하는 조선북지방선(1000噸‧톤 음역어 이상)과 원산청진선(월 15회 이상 연 180회 이상 운항‧700噸이상 1000噸 이상 각 1척), 다이렌지후인천선(월 3회 이상 연 36회 이상, 1380噸 이상 1척)이다.


『조선총독부관보』 1915년 4월 14일 정규호 806호

     

일제강점기 부산항 모습. 기념엽서


강예길 할머니는 당시 부산까지 풍선으로 이동하고 이후 원산이나 청진으로 갈 때는 ‘기계배’를 탔다고 말했다. 기차가 없을 때였다고 했다. 우리나라 철도사가 1899년 9월 18일 경인선의 노량진∼제물포 간(33.2㎞) 개통과 함께 시작됐다는 것을 감안하면 고개가 갸우뚱거려지는 부분이다. 당시 일본은 철도는 대륙, 그러니까 중국과의 연결고리로 그림을 그렸고, 선박은 일본에 필요한 물자 등을 실어 나르는 수단으로 투입했던 것 같다.

실제 경인선은 일본제국주의의 대륙 진출 및 식민지 수탈 목적으로 개통됐고 이후 경부선(서울~부산‧1905년), 경의선(서울~신의주‧1906년), 호남선(대전~목포‧1914년)‧경원선(용산~원산‧〃), 충북선(조치원~충주‧1929년), 장항선(천안~장항‧1931년)이 놓였다. 바다 밭을 따랐던 해녀들의 눈에 기차가 눈에 들어올 리 만무했다. 그 만큼 배 얘기가 훨씬 많이 나온다.

별일 아닌 것처럼 툭 하고 뱉은 그 때였지만, 생각보다 꽤 먼 뱃길이었다. 먼 곳까지 출가 물질을 나간 것은 아이가 어느 정도 컸다고 판단했을 때 였다. 시점이 분명하지는 않지만 ‘말젯아이(막내)가 커가사 먼 디에도 노리가고’라고 말하는 부분이 나온다. 막내가 커서야 멀리까지 갔다는 얘기다.


경성제대 교수.일본 문부대신 등을 지낸 아베 요시시게(安倍能成 1883~1966)의 저서 ‘청구잡기’(靑丘雜記 1932)에 수록된 제주해녀 작업모습.

부산에서 배를 타고 청진까지 가는 데만 밤낮해서 닷새가 걸렸다.      


저 청진 다니는 때가 일본이실 때 아니야. 일본이실 때. 그 때 청진 댕기는 입신환 또 군두(대)환. 막 큰 배. 기차도 아이 놨을 때, 큰 배로만 다닐 때. 청진까지 가는 데 밤낮 닷새나 걸려서. 부산에서. 그 때는 제주에서 못 갔다. 부산에서 큰 배 타서 청진가서 노국 다니는 배 타고.
제주에서 댕기는 배는 나중에 복신환 경성환 @@환 세척 댕겨서. 가오리하면서.     


청진에서의 기억에는 ‘고래’가 떠다닌다. 청진에 간 제주해녀들은 집을 빌려 작업을 했다. 합저, 홍합 작업이 많았다. 어느 날인가 청진항에 고래잡이배가 들어왔는데 모래밭이 북적북적했었다고 했다.     

정리를 하면 당시 청진항에서는 ‘서양 사람’들이 고래잡이를 했다. 눈도 노랗고 키도 큰 사람들이 많았다. 큰 기계를 장착한 배를 타고 나가 망원경(천리통)을 보면서 고래를 찾았다. 그 때 이북 바다에는 고래가 막 몰려 다녀서 배들이 여러 방향에서 고래를 몰아 잡았는데 강 할머니가 목격한 날에는 고래를 한꺼번에 두 마리나 잡아서 배 위고, 모래밭이고 다 난리가 났었다.

포수들은 춤이라도 출 기세였다. "방방방 방방방" 요란하게 경적을 울리며 천지에 자신들의 무용을 알렸다. 축 처진 고래는 작살이 꽂힌 채 항구로 들어왔다. 그 이후에는 고래백정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허리에 칼을 차고 해체 작업을 했다. 가운데에서 힘줄을 정리하며 도감을 하는 사람이 있었고, 양 옆에서 부위나 용도별로 해체하는 사람 몇 명이 함께 움직였다. 해체한 고래는 기계장치를 이용해 바로 일본 가는 배에 실었고, 얼음에 채워서 보냈다.     


한반도 근해에서 일본포경회사가 포획한 고래. 자료사진.

그 시기는 우리나라 포경사를 통해 유추할 수 있다.

우리나라 포경 역사의 시작은 ‘경북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소 5000 년 전에 고래사냥이 이뤄졌다는 사실은 있지만 그 후 특별한 기록은 없는 상태에서 ‘귀하게 여겼다’는 내용만 전해졌다.

우리나라 동해안 고래 잔혹사는 조선 말기로 접어드는 1850년대, 미국과 러시아 등에서 마구잡이로 고래를 잡아들이던 때와 연결된다. 18세기 중엽 고래 기름을 이용한 양초 공업이 발달하면서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포경업에 뛰어들었고 대서양‧인도양 뿐만 아니라 태평양까지 무대로 만들었다. 실제 1855년 미국 포경선 선원들이 강원도 통천군 일대 해상에서 고래잡이를 하다가 난파당했던 일도 있었다. 우리나라가 포경을 산업으로 연결한 것은 그로부터 30년은 지난 뒤었다. 1882년 수신사 일원으로 일본에서 포경 산업을 살핀 김옥균이 관련한 내용을 보고했고 고종은 1883년 김옥균을 동남제도개척사(東南諸島開拓使) 겸 포경사(捕鯨使)로 임명해 울릉도 개척과 포경산업 전반을 관장케 했다.

하지만 실제 득을 본 것은 일본이었다. 일본은 1883년 7월 25일 조선과 ‘조일통상장정’(在朝鮮國日本人民通商章程)을 교환하고 1889년 11월 12일 ‘조선일본양국통어장정’(朝鮮日本兩國通漁章程)을 체결한다. 통어장정은 일본 측이 한반도 연근해에서의 포경에 대한 특허권을 명문화한 것으로 ‘특별 허가를 받지 않고서는 양국의 해변 3리 이내에서 암수 고래(鯨鯢)를 잡을 수 없다’는 것이 핵심이다.

동해안 일대에서 불법 포경을 하고 있던 러시아도 1899년에 조선 조정으로부터 포경을 허가받아 하는 상황이 됐지만 결국 우리 바다에서 두 나라 포경선이 피비린내 나는 경쟁을 펼치는 판국이 됐다. 한반도 연근해의 러일 고래잡이 경쟁은 1905년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면서 종결됐다.

처음 일본 포경회사들은 울산과 장생포를 고래 포획근거지로 삼아 조업하다가 1910년대 후반 들어 조업 무대를 서해안으로 넓혔다. 일제 강점기 초반 한반도 근해에서의 포경은 동해를 중심으로 이뤄졌지만 무분별한 남획을 고래 개체수가 현저히 줄어들자 남·서해안으로 포경 영역을 넓혔다.

강 할머니가 봤다는 ‘서양 사람들’은 러시아 선원들일 확률이 높지만 단정하기 어렵다. 시기 역시 1920~30년대 사이로 추정이 가능하다.


** 내용 및 문구, 이미지에 대한 무단 도용 및 복제 사용을 금지합니다

이전 06화 “그 때는 죽지 않으면 살기로 한 것이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