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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미 Aug 23. 2024

무지개 너머 어딘가 숨어있을 것들

삶, 공감하기 <주말마다 나를 고쳐 씁니다>를 읽다가

느닷없이 '후배'를 소환하다


“선배, 지금, 여기 어딘지 알아요?“

“뭐야, 지금 몇 시인줄 알아? 또 산이야?”     

언론사에 있을 때 안 오래된 후배가 있다. 일찍 기자 일을 접고 의류 업계 MD로 착실하게 경력을 쌓고 있는, 그 친구의 취미가 산을 타는 거였다. 처음엔 일 때문이었지만 차츰 산에 스며들었다고나 할까. 아무튼 자연스럽게 캠핑, 백패킹에 빠졌고 하나둘 장비가 늘어간다 싶더니 직접 상품 기획하기까지 했다. 가끔 안부 대신 신제품 카달로그를 보내고 “어때요?”하고 물었다. 관심 분야였으면 이건 어떻고 저건 어떻고 했겠지만 그런 오지랖은 체질이 아닌 까닭에 색이 좋네, 제품 스토리가 알차네 하면서 나름 부지런히 응원했었다.



암튼 그 후배는 겨울 지리산 설중 백패킹 아니면 그냥 별이 쏟아진다는 강원도 어느 산 중턱, 기습폭우로 옴짝달싹 못하는 전라도 어디 이름 낯선 산 같은 데서 불쑥 전화를 했다.

“으~ 춥다”

“겨울이 춥지 그럼”

“아니 선배 지금 텐트 안에 있는데 지붕이 점점 내려오고 있어요. 낭만적이지 않아요?”

“그러다 큰 일 나는 거 아니야? 휴대전화 배터리는? 위치 지표 찍어서 보내 아침 연락 안되면 119 연락하게”

“선배는 날 너무 약하게 보네”

본인은 자랑이었겠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조마조마할 뿐. 쬐끔 부러워할 뿐이었다.      

지난해 한참 연락이 없다가 세상의 끝이라는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 티에라 델 푸에고를 다녀왔다는 무용담(?)을 던졌다. 회사에 기획안을 냈는데 경비 문제 등등이 있어서 혼자 장비를 이고 지고, 콘티도 짜고 섭외도 하고 촬영도 하고 했다는데 도대체 뭘 어떻게 했다는 건지 머리 속에 그려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냥 ‘이건 뭐 온 세상을 발아래 둬야 직성이 풀릴, 바람 같은 아이로구나…이젠 그만 등 떠밀어야 겠다’.했는데 직장을 옮긴 지금은 산을 그리워하며 마구 달리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지 말고 산에 좀 다녀와” “…가야지. 가고 싶어요”     


어느 회사원의 캠핑 인생 회복기


'어느 회사원의 캠핑 인생 회복기'라는 부제의 책을 선물받았다.

퇴근 시간이 되면 바람 빠진 풍선인형처럼 녹초가 되지만, 그래서 주말이면 아무것도 하기 싫어 장판처럼 방바닥에 들러붙어 있고 싶지만, 자신의 키보다 큰 배낭을 메고 ‘바득바득’ 캠핑을 떠난다는 회사원이다. 누군가 계속 연상이 됐다.

퇴근 후 바로 캠핑을 갔다가 회사로 바로 출근하는 과정도 낯설지 않다. 

아주 자연스럽게, 내가 쓸 일은 별로 없는데, 힘들 때면 웜톤 선배 카드를 꺼내 흔드는 후배를 소환했다. 아니 소환할 수밖에 없었다. 책을 읽으면서 자꾸 생각이 났다.

무엇이 그를 캠핑으로 이끄는가…했던 답을 찾았던 때문인지 모르겠다. 

길들여졌던 것과는 다른 속도와 궤적으로 일상을 꾸려나가며 차곡차곡 행복이란 단어를 채웠음을 책을 읽다 느꼈다.

기회가 되면 페루 레인보우마운틴에 가보자는 얘기를 “어~ 그래!”하고 흘려들였던 걸…반성했다.

낭만이라 하기엔 어딘지 불편하고, 그 걸 모두 감수해야 얻을 수 있는 행복이지만….그게 어떤 느낌일지 안다면 해볼 수 있지 않을까.  


“내게 캠핑은 인생이라는 저장 탱크에 설치한 느린 클래식 음악 스피커와 같다. 시간을 들여 불을 피우고, 바람과 햇빛의 방향을 계산해 타프를 치고, 다음 날 같은 시간을 들여 그 모든 장비를 다시 걷어야 하는 캠핑은 속도가 생명인 현대사회에선 무용한 취미 생활이다. 배낭의 무게를 두 다리로 온전히 감당하는 백패킹, 맨몸으로 자는 비박은 또 어떤가.

그럼에도 인생이라는 술이 제대로 익어가기 위해서는 '빠른 속도'라는 자동화 벨트에서 잠시 날 내려놓고, 본질 이라는 효모를 빼놓지 않고, '시간'이라는 숙성이 더해져야 한다는 것을 오키노에라부 섬의 캠핑은 내게 알려주었다.”     


"가자 무지개 산"


책을 절반쯤 읽고 나서 후배에게 톡을 남겼다. 

“언제 갈까?”

“어디요?”

“무지개산”

서너 시간이 흘러, 아마도 해가 진 뒤 전화가 왔다.

“무슨 말인지 한참 생각했어요”

“거기 있잖아, 무지개산”

“아 레인보우마운틴”

“그러니까 무지개산”

“선배 일단 달려요”

“왜?”

“선배 체력으론 무리야. 가다 중간에 포기하면 버리고 갈 건데. 짐도 안 나눠 줄거예요”

“…이게 아닌데?”

“산 타는 걸 낭만쯤으로 생각한 거 아니죠?”     



언젠가 저 무지개 너머 꿈을 찾아서


부리나케 ‘무지개 산’ 정보를 찾아봤다.

‘레인보우 마운틴’. ‘비니쿤카’(Vinicunca)또는 ‘몬타나 드 시에떼 컬러’ (Montaña de Siete Colores, 일곱 색의 산)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이 산은 페루 쿠스코 지방에 위치해 있으며 해발 5000m 높이를 자랑한다.

레인보우 마운틴은 화산활동과 지각 변동에 의해 퇴적된 광물이 산화하면서 청록색, 황색, 빨간색, 자홍색 등 다채로운 색을 띄게 됐다. 맑은 날씨에는 그 색이 희미하지만 흐린 날에는 선명한 무지갯빛을 선보여 날씨에 따라 사뭇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러나 높은 해발고도를 자랑하는 만큼 3~4시간 정도 트래킹을 요하기 때문에 체력 소모가 크고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고산병 등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최근에는 남미 여행 필수 코스로 자리 잡으면서 방문객들이 많아져 한적하게 경치를 구경하기도 쉽지 않다.     

그럼 그렇지 쉬울 리가. 영화같은 풍경이 거저 얻어질 리가 없다.

어쩐다. 한참 웃던 후배의 말이 위로가 됐다. “그래도 역시 선배야. 기억해줘서 고마워요”

힘든 시기다. 어깨만 빌려줘도 좋으련만 하필 그 어깨마저 부실해 기댈 힘을 채우지 못함이 안타까운 때다. 오즈의 노란 벽돌길이 눈 앞에 펼쳐졌으면 하는 멋쩍은 상상을 하며 OST를 틀었다. 내 무지개 산을 찾아서.


“…Somewhere over the rainbow

Bluebirds fly

And the dreams that you dream of

Dreams really do come true-ooh-ooh

Someday I'll wish upon a star

Wake up where the clouds are far behind me

Where trouble melts like lemon drops

High above the chimney tops that's where

You'll find me, 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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