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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공팔 Mar 07. 2024

생각이 꼬리를 물어 걷기가 어려워요

<걷기의 말들/ 마녀체력/ 유유>, < 걷는 사람/ 하정우/ 문학동네>

 

마녀체력님은 걷기의 말들에서 그랬다. 걷다가 죽는 게 좋은 죽음이라 여긴다고. <걷기의 말들>은 다양한 책에서 언급한 걷기에 대한 문구들 인용해완성한 그녀의 걷기 예찬서다.


걷기의 효능은 마음의 병에도 부지불식간에 발휘된다. 온몸을 움직이다 보면 뇌 기능이 활발해진다. 머리 회전이 빨라져 막혔던 생각이 퐁퐁 솟는다. 좋은 호르몬이 분출되면서 나쁜 스트레스를 가라 앉힌다. 땀으로 촉촉해지면서 금세 기분이 좋아진다. 우울증 치료, 노화 방지에 좋다. 각종 암을 예방하는 특효약이다. 그러니 걷는 건 누구에게나 언제든 이익이다. 9. <걷기의 말들/마녀체력/유유>


어느 날 불현듯 꿈에 하정우가 나왔고(응?), 그의 책이 생각났고, 바로 아침에 구매해서 단숨에 읽었다. (지인의 말을 빌리자면, 유명인이 꿈에 나왔으니 난 로또를 샀어야했다. 책 말고.)

특히 몸에 익은 습관은 불필요한 생각의 단계를 줄여준다는 그의 신조. 백번 말해도 맞는 말이다. 걷기 욕구를 부추긴다. 덕분에 요 며칠 나도 걸었다.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추워지면 외투를 입는 것처럼 나는 기분에 문제가 생기면 가볍게 걸어본다. 누구에게나 문제없는 날은 없고 고민 없는 날도 없다. 고민이 내 머릿속에서 슬금슬금 기어 나와서 어깨 위에 올라타고 나를 짓누르기 시작하면 '아 모르겠다. 일단 걷고 돌아와서 마저 고민하자' 생각하면서 밖으로 나간다. 걸으면서 고민을 이어갈 때도 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걷는 동안에는 어쩐지 그 고민의 무게가 좀 가벼워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30-31. <걷는 사람/하정우>



기억에서 나의 걷기 경험들이 소환된다.

돌이켜보면 모두 행진이다.

초등학교 때, 걷기 대회. 그저 걸었다. 필자는 80년대생인데, 라떼때,,,걷기대회 같은거 있지 않았나요?

대학생 때, 4.19 걷기 대회(?) 마로니에 쪽에서 단체 학생들이 만나서 우이동 4.19 탑까지 걸었다. 어떤 의식이 있어서 라기 보단, 민주시민이고 대학생이니깐..? 끝나고 술 먹고 다음날 숙취와 근육통으로 개가 되었던 첫 경험이다. 대학원 때, 걷기를 즐기시던 교수님께서 대학원 연구소 학생들을 인솔해 주셔서 함께 걸었다. 옥수역에서 청계천 따라 광화문 상류까지 거의 11km 이상 걸었던 듯.

이건 어디까지나 영문도 모른 채 동료들과 우르르 걸을 때 이야기.


보통 혼자 걸으면 잡념이 정리된다던데, 그래서 화가 치밀 때나 기분전환을 위해 걷는다고 하던데. 내 경우엔 걸으면 생각이 많아지고 생각이 꼬리를 물어 부정적인 잡념이 나를 삼켜버린다. 생각 정리는커녕 처음 고민에 상상까지 더해서 망상 단계까지 갈 때도 있다. 내게 기분전환을 위해 그저 걷기는 효과적인 방식이 아니다.

이 문제는 마녀체력님 "평지주의" 덕분에 답을 찾았다. 내겐 이 평지가 문제 걸 알게 됐다.  너~~ 무 지루하다. 물론 누군가 함께 해 준다면 평지 걷기도 가능하다.


좀처럼 생각을 버리기 어려운 나는 등산을 선호한다. 등산은 몸을 혹사 잡념을 아예 차단하는 방식. 

변화무쌍한 지형이나 풍경을 지나면 지루하지도 않고 오르는 동안 벌렁거리는 가슴을 움켜 잡고 기필코 도착해야지 욕심도 좀 내 가면서.  오로지 꼭대기만 생각하기.

흔히 등산을 인생 사는데 에 비유하지 않나. 구불구불 울퉁불퉁한 정리되지 않은 길을 만나면서 그래 인생이 이런 거지 뭐. 계획대로 되는 일 하나 없지, 탄탄대로도 당연히 아니고, 결국 가다 보면 어딘가 도착해 있는 거지 뭐! 하고 높은 곳에서 우뚝 서서 고민 툭 던져 버리고 오는 거.

나를 조금 위로 올려놓음으로 사실 이 고민이 대단히 큰  문제가 아닐 수 있음을 깨닫는다.

(사실 이럴 수 있는 고민이면 참 좋으련만, 대출이며 카드 빚은 어쨌든 남아있는 큰 문제더라는...) 당연히 아무것도 해결은 되지 않는다.


항상 여지없이 하산이라는 유혹의 위기도 찾아온다. '도대체 언제까지 가야 하지? 땀도 나고 운동 잘했는데 뭘, 이쯤에서 그냥 내려가도 의미는 있어. 아니다... 그래도 그냥 여기서 내려갈 순 없다. 내가 이 정도 산도 못 오를 정도로 의지박약은 아니야. 내가 포기할 사람이 아니야. 에잇 모르겠다 그냥 올라가 줄 테다.'  결국에 그 위기를 넘긴 내 근성에 감탄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  등산이 매우 어려운 과제는 아니다. 그저, 가벼운 위기를 넘겼다는 것 자체로 스스로에게 소소한 성취감을 선물는 거지.


그렇다고  북한산국립공원에게 감사하다고 수상소감을 말한 해진님 만큼 등산이 내 삶에 큰 포션을 차지하는 건 또 아을 밝힌다.



등산이라 하기 민망한 높이 한양도성 코스 인왕산. 낮지만 바위산이라 암벽등반 하는 느낌적인 느낌.

창의문쪽으로 내려와서 부암동 부빙에서 빙수 먹으면 꿀맛.

과연 팁 인지 모를 일이지만, 목이 말라도 일부러 물 마시는걸 자제한다. 목만 축이는 정도. 하산해서 소맥이든 빙수든 극 시원하게 먹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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