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가 되고 싶다

by 디아나

작년 1월 우리 실 마케팅팀에 신입 사원 2분이 들어왔다. 중고 신입인 요우님과 갓 대학 졸업하고 입사한 샤오님이었다. 둘 다 옆 팀이었기 때문에 크게 마주칠 일이 없었다. 우리 팀 코가 석자라 여유가 없어서라는 이유도 있었고, 또 회사 특성상 공채를 유별난 집단으로 생각하기에, 농담으로라도 공채가 공채 챙긴다는 소리를 듣기 싫었던 게 가장 큰 이유였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그분들과 나는 어색한 인사를 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 분들과 다시 마주치게 된 건 8개월 뒤인 게임 런칭 시즌이었다. 당시 우리 실 실무자 중 런칭 경험이 있는 건 내가 유일했기 때문에, 콘텐츠 라이브나 스케쥴링 등의 일을 도맡아 진행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마케팅팀이 담당하는 업무도 있었다. 실 단위의 과한 업무량에 심통이 난 나는 '가이드만 줄테니 각 팀 별로 메인 실무자를 만들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메인 실무자가 생겼는데, 신입 사원이었던 샤오님이 마케팅 업무를 맡았다.


사실 이 일은 챙겨야 할 가짓수도 많고 매번 다른 유관부서와 커뮤니케이션을 해야해서 다소 복잡한 업무 중 하나였다. 능력과 별개로 조직 구조를 모르면 어려울 수 있는 일이었는데 이걸 신입을 시키다니 얼탱이가 없었다. 직책자들에게 조정이 필요하다고 얘기할 수 있었으나, 생각보다 나는 속이 좁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알아서 하겠지. 못해도 우리 잘못도 아닌데 뭐'라는 나쁜 생각을 하며 그냥 넘어갔다.


예상대로 일은 잘 굴러가지 않았고, 매번 업무에 어김없이 구멍이 났다. 원래 옆 팀 업무이기도 했고, 괜히 이러쿵 저러쿵 얘기하다 월권 소리 듣기도 싫어서 가이드를 준 이후에는 업무에 선을 그었다. 샤오님이 내게 도움을 구하면 나는 모르는 척하며 팀에 직접 물어보라고 했다. 귀찮아서 신경 쓰고 싶지 않아서 한 말이었다. 업무를 못한다 한들 그건 직책자와 선임의 잘못이지 내가 신경 쓸 문제가 아니라 생각했으니까. 그 후 종종 샤오님의 자리에는 한숨 소리가 들렸다. 업무에 어려움이 있구나 싶었지만, 그냥 그러고 말았다.


한동안 무관심하다가, 문득 요새 사무실에 샤오님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뒷자리의 옆 팀 동료에게 물었다. 샤오님 재택근무 중이냐고. 그랬더니 그는 씁쓸한 웃음과 함께 장난기있는 모습으로 대답했다. "몰랐어? 샤오님 몸이 안좋아서 지금 휴직 중이야"


처음에는 몸이 아픈가 생각했다. 종종 샤오님은 허리가 안 좋거나 목이 안 좋다며 커다란 기구를 목에 끼우고 일하곤 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더 들어보니 공황 증세가 있어서 잠시 쉰다는 거였다. '아, 공황 올 수 있지.'라 생각하면서도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마음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나도 같은 시기에 샤오님과 비슷한 일을 하고 비슷한 감정을 느끼며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는데- 내로남불이라고 그걸 눈만 가리고 아웅 하고 있었구나 하고.


선임 없이 혼자서 5~6년 차 선배들과 같은 일을 했던 나의 1년 차가 떠올랐다, 선배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두고 '나는 OOO 담당자, 너는 △△△ 담당자'라는 논리로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잘난척하는 아저씨들을 보며 늘 화가 나고 억울해했다. 혼자서 아등바등 준비했던 프로젝트가 7부 능선을 넘어가자 갑자기 사무실에서 숨이 쉬어지질 않았다. 응급실을 다녀온 직책자들은 내게 '스트레스 관리도 능력'이라고 말했다.


어쩌면 샤오님과 같은 상황을 겪었음에도, 나는 옆 팀이라는 이유와 공채 챙긴다는 소리 듣기 싫다는 이유와 월권이라는 핑계를 대며 그녀의 어려움을 방관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 미안함이 커졌던 이유는 샤오님과 업무 중에 들었던 목소리와 장면들이 떠올랐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아무도 안 알려주고 어떻게 하는지 하나도 모르는데. 무작정 물어보라 하고 해야 한다고만 하면 어떡하라는 거에요. 이걸.."


내가 샤오님께 마지막으로 들었던 한 마디. 어느 날 내가 업무 진행 상황을 묻자 울먹거리는 얼굴로 쏟아냈던 말이었다. 곧바로 팀 선임이 와서 너무 감정이 과한 것 같으니 침착하자고 타일렀던 상황으로 기억한다, 아차 싶은 얼굴을 했지만 억울함이 가시지 않았던 샤오님의 표정이 떠올랐다. 돌이켜 보니 그 후로 샤오님은 점심 시간에 밥을 안 먹기 시작했고, 사무실에서 잘 웃지 않게 되었던 것 같다.


회사라는 조직과 업무는 생각보다 복잡해서 누구의 잘못이라 판단하거나 넘겨짚을 수는 없는 것 같다. 다만 같은 상황을 겪었던 내가 샤오님에게 따뜻한 말이라도, 아니면 회사 욕이라도 한 바가지 하며 속상한 마음을 달래줄 수 있지 않았을까? 뒤늦게 아쉬움이 남을 뿐이다. 내가 겪었던 상황이라 더 미안한 감정이 든다. 나는 적어도 회사 욕을 같이 한바탕 할 수 있던 동료가 있었는데.. 샤오님에겐 누가 그런 분이었을까. 아니 있었을까?


선배란 같은 분야에서 자기보다 많거나 앞선 사람을 이야기한다. 일반적으로는 업무적으로 능숙하고 경험이 많은 사람을 떠올린다. 그 모습도 멋진 선배의 모습이겠지만, 후배의 경험을 들어주고 다독여주고 먼저 어려움을 겪었던 사람으로서 감정을 함께 나눠주는 것도 멋진 선배의 모습이 아닐까? 그 어느 때도 샤오님에게 따뜻함을 주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든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듯 뒤늦게 반성을 해본다.


이미 다 지나버리고 난 후 쓰는 후회의 글이지만, 다음에는 꼭 선배로서 힘든 일을 들어주고 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무엇보다 함께 웃고 떠드는 친구가 되어주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다음에 사무실에 나오게 되면 아무 말 없이 커피 한잔 사드려야지.

keyword
이전 01화회사, 나의 전부같은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