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서 <메기 효과>라는 말을 배웠다. 미꾸라지가 사는 어항 속에 메기를 풀어 넣으면, 미꾸라지들이 메기를 피해 다니느라 더 활발하고 건강해진다는 얘기였다. 약육강식의 긴장감이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뜻으로 자주 비유된다고 했다. '딱봐도 이런 말은 경쟁을 시키는 사람들 입에서 나오겠군', '임원들은 분명 이런걸 명분삼아 우리들을 경쟁 지옥에 집어넣는 걸거야'. 피 마르게 경쟁시키는 걸 즐기는, 회사의 한 아저씨가 떠올랐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동물들이 실제로 포식자를 만날 경우 오히려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아 반대로 활력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생기를 잃을 뿐만 아니라 움직임도 점차 둔해진다고. 책에서는 '메기 효과란 결과가 긍정적으로 풀렸을 때 할 수 있는 비유일 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보편적인 방법이 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사실 연구 결과를 떠나서 실제 생활에 대입해보면 금방 답이 나오지 않나 싶다. 회사에서 메기 같은 빌런이 팀을 얼마나 피로하게, 또 무기력하게 만드는지는 익히 경험했으니까.
미꾸라지의 스트레스에 대해 생각하다, 문득 '직장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나만의 취미를 찾아라'고 조언했던 또 다른 아저씨가 떠올랐다. 업무 중 과호흡이 왔던 내게 '경쟁에서 이기는 것처럼, 일하며 생긴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것도 능력'이라 말했던 분이었다. 본인은 골프를 친다며, 당신을 본받아 운동을 하거나 여행을 가라고 했던..!
대충 보면 맞는 말 같지만 엄밀히 따지면 팩트는 아니다. 우리는 스트레스를 느낄 때마다 소포(vesicle)라는 호르몬이 생기게 되는데, 소포는 자극에 따라 늘어나기만 하지 다른 활동으로 분비량이 줄어들지 않는다는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말인 즉 스트레스는 좋은 식사나 격한 운동으로 상쇄할 수 없다는 것인데, 과학자들은 스트레스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지금 당장 스트레스 받을 상황을 피하세요! 그게 제일 유익한 방법입니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회사 생활이 힘든 건 다 너의 역량 부족이란다> 라고 말하던 악의 무리들의 말이 논리적으로 다 틀렸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다. 이렇게 팩트를 들이밀며 회사를 까면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걸 깨닫게 된다.정신 승리일 뿐이라도 최소한 회사가 강요하는 모습에 내가 잡아먹히지 않게 되고, 기분도 잠시동안 좋아진다.
물론 이렇게 마음을 다잡아도, 직장 스트레스는 생길 수밖에 없고 일상이 메기들로 넘쳐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상사든, 동료든, 일 자체든 간에 말이다. 스트레스 받을 상황을 최대한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하지만, 그게 어디 쉽냔 말이다! 당장 밥벌이 생각에 회사를 때려치울 수도 없는 거고, 속 시원하게 메기에게 한 소리 할까 싶다가도 모든 것들이 내 연봉에 영향을 미친다 생각하면 결국 말을 아끼게 되는데. 인내하는 나를 보며 스스로 대견해하다가도 다시 답답함을 느끼는 건 덤이다.
회사 스트레스가 극한으로 치닫았던 나는 현생을 바꿀 수 없다면, 잘 받아치는 방법이나 납득할만한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그후 누구라도 날 구원해주길 바라며 미친 듯이 책을 붙들기 시작했다. 여러 메기로부터 내 자존을 지켜낼 수 있는 그럴듯한 방법을 찾기위해. 회사에 대한 애정과 증오라는 미묘한 감정을 지혜롭게 다루기 위해. 우리는 어떤 민족? 결국 답을 찾아내는 민족! 긴 헤맴 끝에 어느 한 독립 서적에서 한 문장을 발견했다. 비록 명쾌한 해답까지는 아니었으나, 희미하지만 분명한 힌트를 준 말이었다.
구원의 문장은 이러했다.
아무것도 내게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나의 전부 같은 일부의 것들아
무엇에도 열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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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극히 일부인 것을 전부라 여기며 스스로 매몰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회사, 아니 그 어떠한 것도 내 인생의 전부가 될 수 없다> 라는 사실을 왜 떠올리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내 삶의 일부인 회사를 전부인 양 매몰시키고 몰아붙인 사람, 또 그 사실에 억울해 했던 사람은 다름아닌 나였다.
밀레니얼 세대로서 배운 막연한 인생 목표가 직장 생활이어서 그랬는지, 수면 시간을 제외한 하루의 절반을 회사에서 지내서 그랬는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으나 '20대 이후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 회사였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그랬나. 회사에서 나를 불행하게 했던 사람 -남 탓하는 사람, 알맹이 없는 사람, 나를 신뢰하지 않는 사람, 권위의식이 강한 사람- 들을 다 메기로 치부하고 미워했다. 머리로는 일이 나의 전부가 아님을 알고 있음에도 일과 평가와 시선에 매달렸다.
다만 회사가 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나에게 아주 하찮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무엇에도 열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라는 문장은 회사가 나의 일부임에도 열렬한 애정을 가지는 나의 태도를 존중해주었다. 포기라는 이름으로 회사 생활을 등지고 싶지 않았던 나에게 퍽 다정한 말이었다. '회사가 전부가 아니야, 대충 월급 값만 해'라 말하지 않아 고마웠다.
<일은 일로써 열정을 가지되 인생의 전부인 양 매몰되지 않아야 한다>. 누군가에겐 쉬운 명제일지도 모르겠으나 이 사실을 알아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삶에 있어 애정을 다하는 모든 일부는 전부이자, 또 전부 같은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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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내 삶은 '회사'라는 구성 요소가 전부가 아님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제야 내가 애정을 담아야 할, 삶 전체를 채워줄 일부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글을 쓰는 나, 책을 읽고 생각하는 나, 그림을 그리는 나, 눈빛이 반짝이는 나, 태도를 중요시하는 나, 분위기를 사랑하는 나, 사람들과의 관계에 힘을 얻는 나, 동물을 좋아하는 나, 그리고 '일에 성취감을 느끼는 나'가 함께 있었다. 나의 전부 같은 일부들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나서야, 일 속에서 버둥거리는 나를 꺼낼 수 있었다.
나를 꺼내는 일은 비록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방법이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 상황에 매몰되지 않도록 도와주었다. 손 쓸수 없는 상황과 이해관계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는, 여러 모습의 나를 항상 곁에 두고 어느 하나에 쏠리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우리가 여러 모습의 자신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하고 싶거나 되고 싶은 것들이 무수히 많다는 것을 확신했으면 좋겠다. 실제로 이후, 나는 더 또렷해지고 스트레스를 덜 받게 되었다. 무언가에 매몰되지 않기 위한 노력은 부족함의 영역이 아닌 풍요로움의 영역이다.
덧붙이자면 일에 대한 열정은 절대로 줄어들지 않았다. 여전히 최고가 되어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있다. 다만 그 성과와 인정이 나의 전부가 아님을 이해하고 있고, 타인과의 갈등이 나의 일부 중의 아주 작은 부분임을 알고 있을 뿐이다. 질 높은 삶을 위해 매 순간 일에 몰입하되 매몰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나를 망가뜨리거나 깨뜨릴만한 극한의 상황을 둥글게 다루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오늘도 기록한다. 내가 사랑하는 내 모습을 담아두기 위해, 부정적인 것들이 나를 잡아먹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 상황에 못 이겨 노력하던 것들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다만 이런 태도가 삶의 지혜가 되어주되, 치트키가 아님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앞서 말했듯 스트레스는 최대한 피하는 게 상책이다. 세상의 어떤 일들은 승부수를 두어야 끝이 나기도 하니까.
멘탈 정리를 마치고 조금 더 단단해진 나는 부서를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