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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orygallery Nov 12. 2019

Prologue. 긴 글  

이 이야기가 시작된 이유, 그리고 쓰고 있는 사람.

- 긴 글


어쩌면 나는 오늘 밤 긴 글을 써야 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살아온 인생에 대해 구태의연하게 이랬다 저랬다 하는 글이 아닌, 지금 내가 죽고 싶지 않도록. 살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나를 다독이는 글 말이다.


‘내 인생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지?’라는 물음이 아닌,

‘구질구질하지만 그래도 잘 버텼어. 아 그런데… ‘의 물음에 대한 답이 될 것 같다.


가난하고 빈곤한 마음이 들던 어느 하루, 그 무엇도 할 수 없었던 어느 하루의 끝. 나는 마우스 커서가 깜빡이는 빈 워드를 켰다. 지금 내 빈곤을 채우기 위한 일종의 의식처럼,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가 본다.

이 글을 토해내듯 써 가며, 나는 또 내 마음이 무너졌던 어느 하루를 끝내 보려 한다. 살고 싶어 지는 마음이 드는 내일 아침을 맞이 해 보려 한다.




- 이 글을 쓰고 있는 사람


내 글을 보이기 전에 내가 누구인지, 이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이야기해 보려 한다.  


사람 좋고 술 좋고, 급하게 흥분하는 서른아홉 미혼.   

두 달을 지내고 나면 마흔이 된다.

그렇지만, 호적상 나는 서른여덟이므로 내년에 다시 서른아홉이 된다.

문서상 어려서 좋을 나이는 아니다. 아홉수를 두 번 겪는 기분이다.


공연 기획 일을 십삼 년째 하고 있다.

정확히 홍보 마케팅 팀장만 십 년째.

오랜만에 만난 업무 지인이, 이제 직함이 뭐냐 물어오면 답한다.


“십 년째 팀장입니다.”


마치 능력 없어 만년 대리인 그런 느낌 아니다. 내가 나를 스스로 돌이켜 보건대, 혹은 다른 이의 평을 들어 보건대, 재수 없는 소리지만. 나는 일을 좀 잘한다. 십삼 년 일하며 한 번도 내 손으로 이력서 써서 회사에 들어가 본 적이 없다. 늘 누군가에 의해 찍힘 당해 회사를 옮겼고, 십삼 년 동안 4번의 이직만이 있었다. ‘아 쟤 싸가지 더럽게 없는데 일 잘해’ 축에 속한다.


더럽게 일 잘해서 일 복 터진다. 실로 쏟아지는 업무 제의를 반려하는 일이 수차례.

하지만 일복만큼 재물운은 주어지지 않았다. 나는 더럽게 가난하다.


페이나 처우가 좋지 않은 공연계에서 십삼 년을 버틴다는 건. 다른 이가 누리는 삶의 여유와 평온을 포기한다는 뜻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나는 이 일이 좋아서 버티고 있다.

한 분야에서 십 년 넘게 일하면 돈 못 모으는 게 이상하다 하는데, 나는 그 이상한 거지다.

흥청망청 쓰기도 했고, 이 긴 글 어딘가에 나오겠지만. 나는 생계형 가장 미혼이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월급은 늘 통장을 스친다.


서로 고성 질러가며 싸우는, 성격 똑같은 분신 같은 엄마가 있다.

아빠는 없다. 없는 상태로 살았고, 없다 여기며 살았는데 작년에 진짜로 세상에서 사라져 버렸다.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지만. 나는 여전히 아프다. 어쩌면 이 긴 글의 첫 번째 이유는, 평생 내 아버지가 아니었던 그를 보내주기 위함 일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결혼.

못했다. 안 한 게 아니라 나는 못했다.

이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모자라는 구석은 없는데, 못했다.

핑계같이 들리겠지만. 바빴다. 한참 이쁠 나이엔 일하느라 결혼의 기억 자도 생각이 없었다. 그럴 거면 비혼을 하던가… 하지만 나는 결혼이 하고 싶다.


만나는 친구가 있다. 친구로는 십구 년 썸은 오 년. 이제 그만 손도 잡고 선도 넘고 해서 그 친구와 결혼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선 못 넘은 상태로 우리는 이도 저도 아닌 사이가 되었다. 아마도 그 친구와 결혼하려는 나의 계획은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도 나는 언젠가 결혼을 할 것이다.

나는 혼자 살 수 없다. 외롭다.



그렇다.

나는, 서른아홉의 미혼. 돈도 없고 애인도 없고(있다고 말할 수 없는 사이이므로 일단 없다고 하겠음), 평생 책임져야 할 엄마와 내 늙은 강아지, 그리고 통장에 월급 들어오면 바로 채가는 빚만 있다.


빛 아니고 빚 말이다.

쥐구멍에 빚 말고 빛이 제발 들었으면 좋겠다.


내가 나를 이렇게 적나라하게 들여다본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혹은 이렇게 까 보여도 되나 싶을 만큼. 정확하고도 가슴 아픈 자기소개를 했다.


내가 쓰는 글이 가짜가 되지 않으려면, 내 보이는 나도 가짜가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과한 자의식 일 수 있지만, 나는 내가 부끄럽지 않다.

부끄럽지는 않지만 내 새울 것 없는 내 소개를 마쳤으니, 이제 긴 길을 적어 내려가 보려 한다.


당신들에게 조금은 지루한 혹은 ‘아 또… 신세한탄이야…’ 싶은 글이 될 수도 있다.

최대한 그렇고 그런, 나 살기도 버거운데 남 신세 한탄스러운 글이 안 되도록 노력하겠지만 말이다.


그렇더라도 들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들어주고 보아 주는 누군가에게, 감사의 말을 미리 전한다.



‘고맙습니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긴 글을 붙들고 있는 내 마음을 다독이듯 보아 주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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