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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orygallery Nov 12. 2019

#1. 그를 보낸 겨울로부터…

“나는 당신이 살았으면 좋겠다.”

무슨 얘기부터 시작할까, 잠시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리고 고민했다. 활자를 쳐내지 않고 토독토독 건드리다가 ‘겨울’이라는 단어를 먼저 썼다. 그래, 그 사람을 보낸 겨울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나한텐 엄마만 있었다.

아빠는 호적상 ‘父’로 올라가 있을 뿐. 그 이름과 막연한 삶만 알뿐. 내 일상에 그리고 인생에 존재하지 않았다. 평생을 자기 마음대로 살았던 그 사람은 새로운 가정을 위해 엄마와 나를 버렸고, 내 기억이 존재하는 한 나는 한 번도 내 입으로 ‘아빠’라는 단어를 내뱉어 본 적이 없다.


어렸을 땐 미웠다. 아주 어렸을 때는 아빠에 대한 기대가 있어 미웠다.

드라마에서처럼. 학교 교문 먼발치에서 나를 보기 위해 기웃거리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상상에

혼자 걷는 길에도 최대한 어깨를 펴고 걸었다. 내가 너무 그리워 밤새 술을 마시며 울고 있지는

않을까… 드라마는 판타지 일뿐인데 말이다. 어린 마음에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기대를 가지고

나는 자랐다.


어른이 되어가는 청소년의 길목에서는, 돈이 없어서 미웠다.

엄마는 식당 일해 가며 나를 키웠고, 지금처럼 나는 어렸을 때도 돈이 없었다. 가난했다.

대학도 가야 하고, 이런저런 공부도 하고 싶은데 나는 돈이 너무 없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새 가정에서 아이들을 풍족하게 키우고 있다 했다. 어른들은 가끔 잔인하다. 그 이야기를 나에게 전한다. ‘야 너는 돈도 없고 아빠도 없어.’라고 말이다.


그래서 대학 입학 통지서를 받자마자 나는 스스로 아빠를 찾았다.


너무 닮은 부녀는 마주 앉아 돈가스를 먹었고,

“대학 등록금 좀 대 주세요”라고 말하는 딸에게, 눈썹이 닮은 아빠는 걱정 말라고… 이제부터 보고 살자고, 먼저 연락 줘서 고맙다고 했었다. 드라마가 완전한 판타지는 아닌가 보다 했다. 나에게도 든든한 아빠가 이제부터 있다 생각하니, 마치 내가 드라마의 여주인공이 된 양 들떠버렸다.


하지만 스무 살이 되는 그 겨울 길목에서. 그는 나를 다시 버렸다.


만난 날부터 연락이 없던 그는 결국 내 대학 입학금을 대 주지 않았고, 엄마가 어렵게 마련한 입학금을 마감 시간에 겨우 내어 나는 스무 살 대학생이 되었다.


평생 만나지 않으리라, 내겐 죽은 사람이라 생각하며, 미움도 기대도 없이 분노만 남은 채. 그렇게 나는 어른이 되었다.



기대를 저 버린 채 어른이 되고 나서 두 번.

할아버지 장례식장에서, 그리고 할머니를 만나러 간 시골집에서 나는, 아무 감정 없이 그를 마주했다. 잔뜩 취해서 사온 불어 터진 어묵을 들이미는 그를 외면했다. 수년 만에 만나는, 이제 어른이 된 딸에게 그는 어묵이 사주고 싶었나 보다. 취한 그만큼 잔뜩 불어 터진 어묵 말이다.


눈도 마주치지 않는 서른 무렵의 딸에게, 당신은 말했다.

“용서하지 말고 평생 미워해라. 죽어서도 용서하지 말아라.”


그리고, 내겐 그게 유언이 되어 버렸다.



당신은 정말, 용서할 기회도 주지 않고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렸다. 서른여덟 겨울의 길목에서, 나는 당신의 부음을 들었다.


가을이었다. 당신이 많이 아프다고 했다.

많이 아프다고, 보지 않겠냐고 묻는 가족들의 연락에 나는 치를 떨었다. 죽든 말든 상관없다고. 죽어도 연락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놨다.


나는 그날 친구와 주꾸미에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그 밤 나는 많이 울었다.

슬퍼서가 아니었다. 그냥 너무 화가 났다. 절대 찾아가 보지 않으마 다짐했었다. 내 평생. 그의 모습이 아파서 죽어가는 모습으로 남는 게 끔찍하게도 싫었다.


당신이 나를 버렸듯이, 내가 당신을 버릴 차례라고 생각했다. 한 번쯤은 나도, 내 인생에서 독하게 당신을 밀어내도 되지 않을까? 평생의 회한이 된다 한들 말이다.


나도 당신을 버리고 싶었다. 그래서 외면했다.


 


버릴 거면 뒤도 돌아보지 말았어야 하는데, 늘 후회뿐인 내 인생은 또 한 번의 후회를 남겼다.


아프다는 소리를 들었던 가을로부터 두 달. 나는 매일 당신을 생각했다. 그리고 무서웠다.

이렇게 보지 못한 채로 당신을 잃어버릴까 무서웠다.


봐야겠다는, 보러 가야겠다는 결심이 서기까지 딱 두 달. 겨울이 되었다.

어렵게 병원이 어디냐 물었다. 몇 시간이 지나도록 답이 오지 않았다.


그날은 바람이 매섭던, 크리스마스 이틀 후였다. 쉬이 오지 않는 답이 불안했다. 애써 불안을 지우며 고단한 하루를 마친,

그 밤.


사실 당신은, 아프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그 이주 후 눈을 감았다 한다.

그러니까.. 나는 당신이 이미 없는데, 당신을 볼지 말지 혼자 고민했던 거다.


가족들은 내가 너무 냉정히 보지 않겠다 하니, 죽음조차 알리지 않은 것이다.



바스러지는 낙엽길을 밟고 가셨나,

포근한 눈 길을 밟고 가셨나..


문득 답답한 가슴에 일어나 잠 못 들던 그 새벽이었나,

너무 평범했던 어느 하루, 일을 하고 웃고 떠들던 그 어느 하루였나..


마지막 가는 길마저도,

그리 무심하게 가셔야 했나...


그렇게 마지막 까지, 곁을 두지 않아야 했나...


미워할 사람이 사라졌다. 용서할 기회도 없어졌다. 나는 그렇게 당신한테 또 한 번 버려졌다.

내가 버린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당신은 마지막까지도 나를 버렸다.



그 겨울.

나는 많이 울었다.


누군가에게 말도 하지 못하는, 내게 없었던 아빠의 부음.

나는 웃고 떠들고 바쁘게 일하고 그렇게 아무렇지 않아야 했기에, 아무도 없는 길에서 혹은 혼자 누운 밤에, 그렇게 많이 울었다.


추운 겨울 입김과 함께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마치 한숨처럼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겨울이 가는 내내 나는 그렇게 울기만 했다.


그리고, 두꺼운 외투가 버거워지는 겨울 끝 무렵. 높았던 어느 날의 하늘에 비행기가 만든 구름 길을 보며, 나는 혼잣말을 내뱉었다…


“아… 당신이 살았으면 좋겠다…”

 

 

당신이 살아서, 내 옆에서, 내 미움을 받아냈으면 좋겠다.

내가 당신을 보러 갔으면 좋겠다.

한 번도 불러보지 못한 ‘아빠’를 내뱉어보고 싶다.

 

살아 있는 당신이 나는 너무 보고 싶다.



이제 그 겨울에서 다시 겨울로, 1년을 지내며 내 울음과 후회는 옅어졌다. 살아가야 하는 나는 당신을 잃은 슬픔을 마음 깊이 꾹꾹 눌러 담아버렸다. 없었던 당신이므로, 나는 없는 채로 또 잘 살아야 하니까. 그만 눈물겨워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맑은 하늘에 그리고 비가 내리는 검은 하늘에 대고, 툭툭 내뱉는다.


‘나는…

당신이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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