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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orygallery Nov 12. 2019

#2. 잃어버림에 대한 몇 가지 단상

당신을 잃고 써 내려갔던 어느 글

가늠해 보니,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내 생일 즈음이었더라.


내가 태어난 걸 축하해 주는 사람들의 온기 속에, 나는 행복했던 그때. 당신은 눈을 감았다더라.



"언제 돌아가셨어요?"

 

....

 

"어디에.. 묻히셨어요?"

 

....


들려오는 대답이 없다.

너는 혼자 못 찾아갈 테니, 오면 같이 가잔 한마디뿐.


내가 먼저,

당신이 죽어도 난 몰랐으면 좋겠다. 고 얘기했었다.


그래서, 그들은,

내게 당신은... 죽음조차도 끔찍한가 보다. 고 생각했고, 그래서 알리지 않았다 한다.



나는, 소리치지도 못한다.

그 어떤 원망도, 그리움도 쏟아내지 못한다.

나에게 당신의 죽음은... 삶과 마찬가지로 그렇게나 무심했다.



원래 없었던 것인데, 그래서 그게 무엇인지도 모르는데, 나는 그렇게 겨우내 아팠다.

그렇게, 당신을 잃은 것에 대한 짧은 기억 몇 개를 얘기해 보려 한다.


 

첫 번째 단상 – 빨간 손톱

연말에 바쁜 공연 특성상. 그 겨울도 나는 공연 하나를 올리고 무척 바빴다. 크리스마스에도 그 이튿날도 일했다. 이렇게 저무는 내 한 해가 아쉬워 손톱을 빨갛게 물들였다. 나로서는 제일 야하고 화려한 색이 아니었을까? 늘 회색 아니면 검은색, 갈색으로 치장했었으니까.


빨갛게 손톱을 물들이고, 자랑한다고 친구를 불러내 소주를 마셨다. 그렇다 또 술이다. 나는 술이 좋다. 잘 못 마시는데도 술이 좋다.


그리고 그날 낮에 당신 병원을 물었던 내 문자에 대한 늦은 답이 그 저녁에 왔다.


‘언니, 큰아빠 사실 그러고 나서 이주 후에 돌아가셨어. 언니가 싫대서 말 못 했어. 그리고 무슨 면목으로 언니한테 연락해…’


마치 거짓말 같은 그 텍스트들에 한동안 아무 생각할 수 없었고,

어느새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아이처럼 엉엉 울고 있었다.

눈물로 흐려지는 내 눈에, 빨간 손톱이 어른거렸다. 빨간 손톱을 꾹꾹 눌러가며 울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나는 손톱을 빨갛게 물들이지 못한다.


당신을 잃은 그 밤의 내 상처인 것만 같아, 다시 보지 못한다.




두 번째 단상 – 마이마이

 

나는 당신한테 받은 게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 사이에 추억은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잊어버렸었다.


사는 동안 내 기억이 자리한 당신과의 네 번의 만남 모두 싫다고만 행각 했는데. 아니.. 그 또한 잊어버렸었던 거더라.


열두 살 무렵. 친척 집에 나를 보러 온 당신이 내게 사 준 처음이자 마지막 선물. 그때로선 고가였던 마이마이를 당신은 내게 사 주었다.


숫기 없어 눈 한번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는 나를,

당신은 무척 애틋하게 바라봤었다.

그 눈길이 못내 마음에 남아서, 사는 동안 당신을 잊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 앞에서 끝내 고맙단 인사를 전하지 않았지만.

그 이후 한동안, 아니 몇 해를 내가 그 워크맨을 얼마나 귀히 여기고 아꼈는지... 당신은 몰랐을 것이다.



당신과 나 사이에 아무것도 없다 생각했는데,

있었다.



어린 나는, 그때 당신이 너무 좋았다.


나와 닮은 얼굴을 한,

웃는 눈매가 닮은 당신을 마주한 그때 나는,

어쩌면... 행복했던 것 같다.



내가 그때 조금이라도 살가웠다면,

어렵게, 어린 딸에게 내민 당신의 손을 한 번이라도 잡았다면,

우리는 사는 동안. 서로에게 곁을 내어줄 수 있었을까?



당신이 내민 선물 상자를 받으며, 너무 좋다고.. 마음 그대로 말했다면,

우린 조금은 달라질 수 있었을까?




세 번째 단상 – 글

 

 

마지막 일지 몰랐던, 당신을 마지막으로 만났던 서른 무렵. 당신은 내게 ‘낭만…’으로 시작하는 단어의 블로그 주소를 적어 주었다. 글을 좀 쓰고 있으니 보라고 했다.


엄마가 그랬었다. 방에 처박혀 책만 보고 끄적거리는 거 니 아비 꼭 닮았다고.


잘 쓰지 않지만 글 좋아하는 나는 아빠를 닮았던 건가…



당신 글이 궁금했다.  

그 밤. 모두가 잠든 밤 들어가 찬찬히 읽어 보았다. 당신 글은 블로그 주소처럼 참 낭만적이고 멋있었고, 그리고… 애틋했다. 새로 꾸린 가정의 아이들에게 말이다.


너무 미웠다.

상처를 주기 위함 이였나 생각하고, 그 주소를 적은 메모를 갈가리 찢어 버렸다.


그런데 말이다. 내가 나이가 들고, 당신을 잃고 보니, 그게 당신만의 방법이었던 것 같다. 눈 한번 마주하지 않고, 이름 한번 불러보지 못할 만큼 곁을 주지 않는 딸에게 손을 내미는 당신만의 방법 말이다. 한 번도 아빠라 불러주지도 않는 딸에게, 나는 사실 이런 아빠야…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물론. 그 방법 조차 참 뻔뻔했고, 나는 또 그렇게 서른이 되어서도 상처를 받았지만 말이다.



뻔뻔하고 당당했던 당신은, 그래서 죽지도 않고 어딘가에서 후회 가득한 삶을 살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래서, 마지막까지 곁을 주지 않는 당신이 너무 미웠는데,

죽는 그 순간까지도, 당신 몸속에 암덩어리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당신은 몰랐다 한다. ‘꽃 피는 거 보고 싶다’라고 말했던 당신은, 그 계절이 오기도 전에 낙엽이 지는 어느 날 눈을 감았다. 어쩌면.. 준비하지 못한 죽음이었을 것이고, 후회 가득한 당신 인생을 되돌아볼 시간도 없지 않았을까...라고 가늠해 본다.


그리고, 어쩌면, 뻔뻔하고 당당한 당신이라면,

죽는 순간까지도, ‘네게 미안하지 않다.’라고... 말했을 것도 같다.


하지만, 이젠 알 것 같다.

당신은 사는 동안, 내게 너무 미안했을 것이고, 내가 무척 그리웠을 것이다.



당신도 나도,

참 어리석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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