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torygallery Nov 12. 2019

#11. 서른아홉 미혼, 양심 없는 딸

서른일곱에 쓴 글이지만, 변함없는 미혼.

- 이 글을 처음 썼을 때는 서른일곱 이었어서, 제목이 서른일곱 이였는데 그새 2년이 지났고 그 2년 동안에도 내 일신상의 변화는 없었다.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었지?!’


스무 살 이후엔 먹고 살 준비하는 졸업장에 모든 걸 걸었고, 졸업 후엔 먹고사는 데 내 모든 걸 걸고 나니 서른아홉이 되어있다.


서른아홉 까지, 혼자 일 줄 몰랐다.



어렸을 때 분명, 이 나이쯤 되면 결혼도 하고, 아이도 둘 정도는 키우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일복만 넘쳐나는, 결혼 못한, 시간적이고 금전적인 쪼들림에 지칠 대로 지친 서른아홉의 내가 존재한다.

 

앞서 밝혔듯이 비혼 주의도 독신주의도 아니다. 언젠가는 결혼을 할 것이고 결혼하고 싶은(연애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친구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연애와 결혼에 목을 매지 않는다.


한해 한해 다른 내 일에 대한 치열함과 십삼 년을 했는데도 너무 좋은 공연 일에 대한 애정. 그리고 멋지게 포장하지 않은 진심을 말하자면, 아직은 그래도 혼자가 좋다. 더 쉽게 말해 나는 조금 더 놀고 싶다. 또 하나 덧붙이면, 먹고사는 데 이렇게 애쓰는데 굳이 연애나 결혼에 기를 쓰고 싶지는 않다. 될 대로 되라지~ 싶은 마음인 것이다.

그러나,


인생 혼자 사는 거 아니고 내 인생이 오롯이 내 것만이 아닌, 우리 엄마 딸로서의 서른아홉 미혼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서른에 나를 낳았던 엄마는, 내가 여덟 살이 되던 해에 아빠의 바람으로 갈라서고 여자 혼자 몸으로 나를 혼자 키웠다. 본인의 불행했던 결혼 생활 탓에 어렸을 때부터 ‘결혼은 여자에게 필요 없는 것’이라는 강한 기조를 심어주었다. ‘더럽고 치사한 니 돈 안 받아’라며, 위자료도 양육비도 모두 거절한 멋진 여성이었다. 이 부분은 사실, 좀 엄마의 강한 기조가 안타깝다. 여자 혼자 몸으로 홀홀 단신으로 키워낼 거면 야무지게 위자료와 양육비를 챙겼어야 했다. 돈으로 모든 관계가 정리되는 것은 아니지만, 아빠는 부부의 신의를 져 버렸고, 그에 응당한 대가를 치렀어야 하는데 말이다.  


‘울 엄마는 결혼 안 해도 된대!’를 자랑처럼, 얘기하며 다녔다. 내 나이 스물이 붙었던 그때는 말이다.


그 후에도, 나이가 더 먹어 ‘결혼 적령기’가 되었어도 결혼이라는 제도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

엄마와 나 둘만의 일상이 무척 자연스러웠다.


강하고 또 강했던 엄마는, 그러나 몇 해전 큰 수술을 받고 약해질 대로 약해지고 말았다.


결혼은 필요 없는 것이다… 에서, ‘이제 좀 결혼 좀 해 달라’라고 부탁을 했다.

권유가 아닌 부탁이었다.


그럴 때마다 듣는 척도 안 하면, 낮게 읊조린다.


“양심도 없다…”



그렇다. 결혼 안 하는 게 양심 없는 나이가 돼 버렸다 나는.


텔레비전에 아이들만 나오면 잘 키워줄 테니 어서 결혼해 낳으라고 옆구리를 찌르고, 사람 말 못 하는 강아지한테 뭐라 뭐라 말을 하길래 ‘왜 알아듣지도 못하는 애한테 그래..’라고 하니, ‘나도 사람 새끼랑 얘기하고 싶다.’라고 강력 화법의 대답이 오곤 했다.



나는, 그래도 끄덕 없었다,

엄마는 한 번도 나를 이긴 적이 없었으므로, 이 결혼의 문제도 그러다 말겠지 했다.


그러다,

서른여섯 가을 무렵. 튼튼한 손목이 똑 부러지는 사고가 있었다. 깁스 정도로는 안되어 응급 수술에 들어갔다. 철들고 그렇게 수술을 해야 할 정도로 다친 적은 처음이었을 것이다.


손목에 철심 9개를 박아 넣어 부러진 손목뼈를 이어 붙이는 수술을 받았다.

진통제 맞아가며 아픔 참는 서른여섯 딸이 안쓰러웠는지, 늦가을 찬 바람 들어갈까 이불 끌어 덮어주며 그런다.


“너도 나도 이제 늙어가고, 아플 일만 남았잖아. 나는 이제 네가 버거워…”



서른여섯 딸내미 간호에 지친 엄마의 말에 가슴이 죄어왔다.

물기 어린 그 말 앞에서는 뻔뻔하지도 당당하지도 못했다.  


서른여섯의 아픈 미혼의 딸은, 예순이 훌쩍 넘은 노모를 버겁게 만들고 있었다.


둘 뿐이었고, 늘 가난했고 풍족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즐겁고 따뜻했고 행복했다.

그런데 서로가 버거운 이 나이가 되고 보니, 엄마한테 나 아닌 가족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긴다. 언제까지 나 좋은 대로 망아지처럼 자유롭게 살 수만은 없지 않은가…



그때도 참 양심 없었는데, 그 이후로도 시간이 훌쩍.

여전히 양심 없는 미혼의 딸이지만, 그렇다고 내 일생일대의 결혼을 아무렇게나 할 수는 없으니, 엄마 조금만 기다려 주길…



오늘도 조금 더 양심 있게 살자고 다짐 하지만, 여전히 혼자인 게 즐거운 미혼의 양심 없는 딸이다.

이전 11화 #10. 너와는 결혼이 하고 싶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