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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orygallery Nov 12. 2019

#12. 나는 당신의 자랑이 되고 싶었습니다.

부끄러운 딸이 아니라... 자랑이 되고 싶었어요.

결혼도 결혼이지만, 돈이 없는 딸은 엄마를 더 늙고 괴롭게 만들고 있었다.

나도 내 인생이 왜 이리 궁핍한지 모르겠는데, 엄마는 그 상실감이 더 큰 것 같다. 여자 나이 예순아홉. 오롯이 딸 하나만 보고 희생한 그 마음이 점점 더 병이 드는 것 같다.


그 누구보다 잘 안다.

엄마는 엄마 살을 태우고 피를 말리며 나를 키웠고, 그래서 거죽만 남았다. 그래서 가끔 그 희생과 그에 대한 기대가 버겁기만 한 것도 사실이다.


요즘. 그래서 늙은 엄마와 늙은 딸은 매일 싸운다.


앞서 얘기했듯이, 양심 없는 딸에서,

‘부끄러운 딸’로 진화했다. 아니 퇴화했다고 해야 하나…?!


마흔 바라보는 딸이 시집도 못 가고 있는 게 창피해서, 어디 가서 얘기도 못 하겠다 한다.

나는 늘 엄마의 자상스러운 딸이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지?

여러 가지 물음 속에 엄마와 나를 되돌려 본다.


엄마의 희생으로 자란 만큼, 나는 그 흔한 사춘기도 겪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혼자 내 안으로 사춘기를 삼켜버렸다. 너무 힘들었다. 예민하고 감성적인 나는, 청소년기에 돈 없는 홀 엄마와의 생활이 미치도록 힘들었고, 매일 걸어 하교하던 그 다리 위에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그리고 집으로 들어서는 길목에서 눈물 닦고 코 풀고, 맑게 웃으며 ‘엄마’를 불렀던 그 슬픈 기억이 아직도 가득하다.


나는 그렇게, 그 흔한 사춘기도 없이 착하게 잘 자라준 엄마의 자랑스러운 딸이 되었다.


집, 학교 밖에 몰랐지만 공부를 또 그렇게 썩 잘하진 못했다.

뭐랄까… 엄마는 내가 똑똑하다고 동네방네 자랑을 했었지만, 사실 공부 머린 없었던 것 같다.


그냥 적당히.

시험 성적표를 내밀면, ‘그래 이 정도면 뭐…’까지는 엄마를 만족시켰다.


어부지리로 4년제 대학을 나오고, 내 밥벌이하는 사회인이 되었다. 한 분야에서 십 삼 년 일 하며 그래도 내 앞가림은 하고 있지만, 나는 계속 얘기하듯 가난하다.


어렸을 때 철 모를 때는 돈 모으는 법을 몰랐고, 엄마가 아프면서부터 생계가 기울어가며 오롯이 내 빚으로 남아 버렸다. 차라리 그때 엄마한테 힘들다고 말했어야 하는데, 빚을 만들면서 까지 나는 또 엄마한테 ‘자랑’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실로 감당하기 힘든 빚이 쌓였고, 나는 솔직히 말하건대 아직도 갚고 있다.

이렇게 솔직히 말할 수 있는 건, 나는 그 빚이 부끄럽지 않다.


그 빚으로 엄마를 살렸고, 그래서 엄마는 내 옆에 살아 있다.


흥청망청 유흥에 탕진하지 않았으며, 내 실리를 위해 쓰지 않았다. 나는 그 돈으로 정말 말 그대로 살아냈다.


하지만, 엄마는 내가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이 빚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돈 없는 딸, 그리고 결혼 못하는 딸…이 되어 버렸다.


양심 없는 딸은, 그렇게 부끄러운 딸이 되어 버렸다.


나는 지금, 내 인생에서 그게 제일 슬프다.


다른 건 대차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고개 저을 수 있는데, 엄마에게 부끄러운 딸이 되어 버린 지금이 한스럽다.


그래서 미안하면 잘하면 되는데, 마음과 달리 집에서 냉랭한 딸은 매일 엄마와 싸운다.

얼굴도 체형도 성격도 닮은 모녀는 지지 않는다. 강한 엄마 밑에서 독한 딸이 나왔다. 늙고 마음도 약해진 엄마한테 그러면 안되는데, 나는 또 그게 못내 속상해서 독한 말을 뱉어낸다.


엄마가 일평생 희생으로 나를 키워낸 것처럼,

나는 내 일평생 엄마의 자랑이 되고 싶어 열심히 살았다. 정말 한 순간도 허투루 살지 않았다.


마흔이나 먹고 시집도 못 간, 어디 가서 부끄러워 말 못 하는 딸이지만 말이다.


나는 여전히 엄마에게 자랑이고 싶다.



그러니, 엄마가 아주 조금만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내가 다시 자랑이 될 때까지 기다려 줬으면 좋겠다. 나는 아주 열심히 오늘 하루를 감내하며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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