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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orygallery Nov 12. 2019

#14. 나는 내 인생을 찾고 싶었고,

그건 아주 절실했어요.

나이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내가 이 나이에 왜 이렇게 지지리 궁상으로 살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나는 내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공연 일을 선택 한 걸 후회하지는 않는다. 나는 내 일이 이해 안 갈 정도로 좋다. 

하지만, 앞서 얘기했듯이, 시간을 돌려 시작점에 있는 나로 돌아간다면 나는 이 일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즐겁게 살고 있지만, 그로 인해 잃어버린 내 인생이 너무 아깝기도 하다. 


그 잃어버린 내 인생 이야기를, 잠시 해 보려 한다. 


겉보기엔 아주 화려하지만 그 내실은 썩을 대로 썩어있는 공연 제작사에 홍보마케팅 팀장을 맡고 있었다. 내 나이 스물아홉에 입사 해, 서른다섯까지. 6년을 몸 바쳐 일했다. 


입사 2년 차부터 퇴사를 고민했다. 


밤낮 없는 업무 지시와, 그에 동반되는 과도한 업무량. 자꾸만 그만두는 밑에 직원들과 전혀 우산이 되어 주지 못하는 임원들. 그 사이에서 나는 조금은 과격한 대표의 화살받이가 되어야 했고, 무엇보다 ‘너 때문이야’라는 비난에 스스로를 자책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엄마가 아팠을 때, 퇴사 의사는 더욱 커져갔다. 엄마를 돌 볼 사람이 없었다. 우울증이 날로 심해지는 엄마를 나는 밤낮으로 지켜야 했다. 그 사이 집안 경제 상황은 극도로 나빠지고, 나는 지쳐만 갔다. 


‘그만두겠습니다’라고 사표를 날리기를 수 차례. 개미지옥 같은 이 회사는 나를 놔주지 않았다. 밖에서 보면 전혀 이해 못할 것이다. 왜 그만두는 걸 마음대로 못 하는 건지 말이다. 


‘넌 못 그만둬. 여기 못 나가.’라는 대표의 회유와 협박에 어느새 수긍하고 있었다. 그게 뭐라고 벗어나지도 못하고 스스로 옭아맸다. 상식적으로 절대 이해되지 않는 6년을 나는 그 회사에서 몸도 마음도 지쳐가며 보낸 것이다. 


물론 모든 직장인들이, 그리고 회사 생활이 속박된 것. 이겠지만... 

아침부터 새벽까지, 잠든 몇 시간을 제외하고, 감당 안 될 일 더미에 쌓여 숨이 조여 오는 6년. 


문자나 전화 그리고 카카오톡은 업무로 점철되어 있었고, 

핸드폰 진동만 들려도 소름이 끼치는... 잠든 새벽에도 벌떡 일어나 업무 톡을 해야 하는.. 그런 6년. 


그러다 결심을 했다.

지난 6년을 후회하는 건 아니지만, 이대로 살다 간 나는 언젠가 이렇게 죽겠구나.   

그리고 지금 이 회사가 내 인생을 전체로 보았을 때, 내 젊음을 다 내 걸 가치가 있는 걸까…?


결론은, 지금까지면 충분하다!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는 강렬한 마음.


사표를 내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내도 반려, 또 내도 반려. 끝이 보이지 않는, 개미지옥 같은 퇴사 준비 중에. 거래처로 한번 인사한 게 전부인 C 회사의 J가 나를 만나자 했다. 누군가를 통해 내가 퇴사 준비를 하고 있다 들었고, 본인도 지금의 회사를 떠나 공연 제작사 팀 리더를 제안받았는데 내가 같이 가주면 좋겠다는 제안이었다. 


그만두는 것 자체를 못 하는 중이라 만나서 면접을 본다 한들 의미 없겠지만, 그래도 좋게 봐주신 분이니 만나서 차 한잔 하는 것도 좋을 듯싶었다. 스치듯 만난 처음 만남에서 나는 그녀가 참 좋았었기 때문에, 그냥 한번 더 만나고 싶었다. 


면접 아닌 면접이었다. 

편하게 같이 밥을 먹고 차를 마셨다.

만나서 이야기하는 한 시간 동안에도, 대표의 업무 지시 톡은 끊이질 않아 마주 앉은 그녀에게 미안하다는 말 하길 수 차례. 그녀는 참을성 있게 사람 좋은 얼굴로 웃으며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그 조차도 지쳐있었던 것 같다. 또 죄송하다 말하며 핸드폰을 보다 한숨을 쉬던 내게, 그녀가 조심스레 물어왔다. 


겉에서 보기엔 지금 회사가 본인 커리어 쌓는데  유리할  같은데 나오려고 해요?”    

 

그 질문이, 왜..라는 그 질문이 간신히 버티고 있던 내 어딘가를 툭 끊어버린 것 같았다. 

이전처럼 웃을 수도 없었다.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한참을 허공을 바라봤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내 입으로 말하는 게 맞나 싶은 대답을 나는 했다. 

 

제 인생을 찾고 싶어요.”

 

보통 면접이라면, 새로운 회사에서의 비전을 이야기했어야 하는데…

조금 이상한 대답을 한 나도, 그 대답을 들은 그녀도, 서로가 한참을 의아해했다. 

 

그리고 나는, 툭. 끊긴 무언가를 눈에서 흘려보냈다. 

그런 나를 보는 그녀의 눈도 빨갛게 달아올랐다.

 

아주 이상한 면접이 되어 버렸다. 

 

 

 

단순히 힘들어서 그 회사를 나오려던 게 아니다.  

나는 나를, 그리고 내 인생을 찾고 싶었고, 그건 아주 절실했다. 

 

그 절실함을 그녀와의 면접에서 각성 해 버린 것이다. 

나와 함께가 아니더라도, 꼭 새롭게 시작하길 바라요. 그랬으면 좋겠어요.” 

 

라고 그녀가 말해주었다. 

 

그때 난 결심했다. 어떻게든 이 사람의 손을 잡아야겠다고. 

그래야 나는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물론. 

장장 6년 동한 한 번도 제대로 행해진 적 없는 나의 퇴사는 멀고도 험난했다. 장장 4개월. 길고 긴 시간 끝에, 그리고 그녀의 도움으로 때려치울 수 있었다. 

 

그녀는, 그 시간을 기다려줬다. 

그리고 잡은 내 손을 놓지 않아 줬다. 

 

 

그로부터 5년이 흘렀고, 

나는 지금도 그녀와 이 척박한 공연 일을 함께하고 있다. 

 

함께 손 잡고 들어갔던 회사에서 2년을 잘 버티고, 손 잡고 나와 지금의 회사를 소소하게 꾸려나가고 있다. 

 

 

여전히 나는 내 인생을 찾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아직도 완벽한 대답은 하지 못한다.

다만, 믿어주는 사람과 손을 잡고 내 인생을 놓지 않고 있다. 그리고 함께 같은 눈으로 같은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 어느 봄날, 

 


 
새로운 인생을 완벽하게 찾았어요”라고, 

그리고 “고맙습니다. 손을 잡아 주셔서.”라고 그녀에게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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