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은 싶었어.
지독히도 깊고 서툴렀던 첫사랑도, 서른이 넘어 찾아왔던 열병 같았던 그 사람도, 이미 지나간 바람이고 끝난 추억이다. 추억에는 아무런 힘이 없다고 누가 그랬던 가…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 나왔던 대사 인용)
겨울이면 첫사랑이 떠오르고, 여름 짙은 비가 내리면 그 사람이 떠오를 뿐. 그때야 열렬했던 만큼 치열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그저 웃고 넘기는 내 안의 추억 들일뿐이다. 힘이 없지는 않은 것 같다. 지나 온 그 푸릇한 감정들이 내 마음에 작은 나무들로 자라 있으니 말이다.
그 두 번의 사랑 말고는 그렇다 할 연애가 나는 없었다. 앞서 말했듯 비혼 주의가 아니었으므로 부지런히 누군가를 만났어야 한다고들 하지만, 나는 먹고사는 게 너무 바빴고 버거웠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구와 연애 비슷한 걸 하게 되었다. 늘 내 옆에 있어주는 남자 사람 친구와 썸 그리고 연애를 시작한다. 서른 중반의 나는 말이다.
억지로 어쩌려고 했던 게 아니었다. 문득 나는 정말 그 친구와 결혼이 하고 싶었다. 그 친구라면, 내 모자란 부분도 잘 가려주고, 못난 부분도 어여삐 봐 줄거라 생각했다.
십구 년 차 친구.
어쩌면 서로를 너무 속속들이 알아 신비스러운 남녀 관계라기보다는 형제 같고 분신 같은 친구.
그 친구와의 관계는 여전히 진행 중. ING.
주변에서 더 닦달하는 관계이지만, 급하게 서두르지 않고 같이 늙어가고 있다.
어느 날은, 덜컥 청혼을 해 버리기도 했다.
‘있잖아. 나 너랑 결혼할래.’
무던한 친구는 한참이나 대답을 못 하다,
‘응 좋네.’라고 한마디 보내왔었다.
멋없는 녀석이라 나는 그 친구가 좋다.
이 관계의 끝이 어떻게 될는지는 잘 모르겠다. 서두르지 않고 누군가 변하려 하지 않는 이 관계가 과연 정말 내 바람대로 결혼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이렇게 만나지 않는 평행선처럼 나란한 두 개의 선으로 이어지게 될지 모르겠다.
뭐가 먹고 싶은지, 어디를 가고 싶은지, 지금 내 마음이 어떤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조용히 앞서거니 뒤따르는 우리는, 그 언젠가 무언가는 되어 있겠지.
나는 또 어느 날 너에게 청혼할지도 모른다.
그럼 그때도 ‘그래’라고 대답해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