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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orygallery Nov 12. 2019

#9. 당신은 나를 잃어버리게 될지도 몰라요.

나만 아는 이별 이야기

어쩌다 보니 첫사랑 이야기만 주구장창 하고 있다. 그만큼 첫사랑 그대는 내 인생의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사실이다.


바람에 실려 온 기억 만으로도 마음이 아릿해지는 세상에서 가장 열렬했던 첫사랑 이후, 나는 쉬이 누군가를 만나지 못했다. 잊지 못했다는 사실과 함께, 너무 바빴다는 변명을 보텐다.


참 고운 나이에 공연 일에 나를 던져 버리고, 그렇게 서른을 훌쩍 넘겨 버렸다.

열렬했던 첫사랑의 기억마저도 흐릿한 모태솔로인 듯한 느낌으로 나는 일만 했다. 어쩌면, 너무 좋았던 추억이 깊이 자리해서 다른 누군가와 다시 다른 사랑에 빠질 마음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사람 일은 참 모르는 것 이더라.


서른을 훌쩍 넘긴 어느 해 여름, 나는 그 사람을 만났다.


많다면 많고 절대 적지 않을 내 나이에도 그렇게 누군가를 미치도록 좋아해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주변에서 모두 이상하다고 말릴 정도로 나는 그 사람에게 빠졌다.


내 첫사랑이 겨울이었다면, 그 사람은 여름이었다. 뜨겁던 한 낮 햇빛이 조금씩 식어가던 여름밤에 만나, 비 내리던 여름 내내 많이 좋아하며 보냈다.


어게인 첫사랑인 것 같았다.

스무 살처럼 마냥 설레고 떨리는 만남이고 인연이었다.



하지만,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인생의 순간을 한참 앞서 겪은 그는, 불도저처럼 밀고 들어오는 내 감정이 버거웠던 것 같다. 밀어내지 않되 당기지 않았다. 그저 절대 넘어오면 안 되는 선을 그어놓고 내 감정을 내버려 뒀다.


비에 젖은 나무 냄새가 옅은 바람에 실려오던 여름밤. 나란히 그 길을 걸었다. 그 사람은 평소와 다름없었다. ‘아… 비, 그리고 나무 냄새 너무 좋네요…’라고 내가 너무 좋아하던 그 목소리로 나를 또 설레게만 하고 있었다.


그 사람은 평소와 다름없이 너무 좋은데, 그 무엇 하나 변한 것이 없는데, 나는 그날이 끝인 것 같았다.


‘아… 여기가 끝이구나. 이 사람한테 나는 없구나.’



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 왜 끝을 직감했는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나는 끝이라는 마음이 들어버렸고, 그 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너무 슬펐다.


그 여름밤. 나는 나 혼자 이별했다.


돌아오는 지하철에 오도카니 앉아 그 사람 번호를 띄워놓고 문자를 써 내려갔다.

썼다 지웠다. 몇 번을 반복했는지 모른다.


‘당신은 나를 잃어버리게 될지도 몰라요.’


하지만 나는 결국. 그 사람에게 이 한마디를 보내지 못했다.


전송하지 못했던 건, 아마 나는 알았기 때문 아닐까?


그는 나를 잃어버려도 하등의 상관도 없는 사람이라는 걸.

혹은… 나를 잃어버린 것도 몰랐을, 그런 사람이라는 걸 말이다.



무척 아픈 여름의 이별이었다. (나 혼자만의-)



그래도 말이다.

결혼이나 연애가 아닌, 사랑을 하고 싶은 사람을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했다.


밉지 않다면 거짓말 이겠지만, 그는 내게 그 어떤 잘못도 하지 않았다. 오롯이 내 감정이었고, 내 이별이었다.



그에게 짤막하게 한마디 전하고 싶다.


“고마웠어요. 아주 많이 사랑할 수 있게 해 줘서… 아주 많이 고마웠어요.

이 글을 읽을 일이 올진 모르겠지만, 읽는다면, 이 감사가 전해지길 바라요.

 

 

또. 나는 뒷 끝 있는 여자라서… 나를 놓친 걸 평생 후회하며 혼자 살아가길 바라요.

마지막으로, 속 시원하게 한마디만 할게요. 그때 못했던 그 말!

 

당신은 나를 잃어버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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