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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텔마릴린 Apr 25. 2016

[9] 다름에 대하여_불가리아 코프리브쉬띠쨔.

1부-발칸



십오 년째 함께 살고 있으면서도 남편과 나는 여전히 티격태격한다. 서로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런저런 일로 옥신각신 말다툼을 하다 보면 남편에 대해 미처 알지 못했던 부분을 발견하기도 하고, 나를 이렇게도 몰라 주나 서운하기도 하다. 시비를 가리고자 시작된 다툼은 대개 서로의 다름을 깨닫고 그것을 이해하려는 노력으로 마무리 되지만, 아무리 곱씹어 생각해 보아도 서로의 간극조차 가늠할 수 없을 때가 간혹 있다.


전기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멜닉 호텔 앞 벤치에 앉아 말동무 란코 아저씨와 시간을 보냈다. 피라미드를 보러 가던 길이 얼마나 험했는지, 어찌하여 차를 얻어 타고 로젠에서 돌아왔는지, 혹시 전기가 밤새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있었는지, 그렇다면 이 주린 배를 어떻게 달랠 것인지. 볼 때마다 싱글벙글 웃는 란코는 이래서 힘들고 저래서 걱정스런 나의 하소연을 항시 웃는 사람 특유의 긍정적인 어조로 되받았다. 이내 내가 누그러져 그처럼 싱글벙글 웃게 되자, 그는 내가 여행을 시작한 이래 숱하게 받았던 그 질문을 했다.


"한국에서는 월급이 보통 얼마야?"


발칸 여행을 다 마친 후에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던 그 질문의 본질에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곤혹스러워 할 때라 우리의 대화는 이런 꼴이었다.


"그럼, 좋아. 한국에서 담배 한 갑에 얼마야?"

"2유로요."

"그럼, 코카콜라 한 병은?"

"1유로."

"그래, 그러니까 한국에서는 보통 한 달에 월급을 얼마나 받냐고."

"아저씨가 무슨 일을 하냐에 따라 다르다니까요."

"그냥 보통 회사에 다니면?"

"보통 회사라... 그 보통 회사에서 아저씨가 무슨 일을 하는데요?"

"아무거나. 그냥 책상에 앉아서 일한다 치고."

"그 책상에 몇 년 동안 앉아 있었는데요?"

"글쎄, 한 십 년?"

"십 년 동안 그 책상에 앉아서 아저씨가 무슨 일을 했는데요?"

"그냥 아무 일이나!!"

"보통 회사에서 십 년 동안 책상에 앉아 아무 일이나 했다... 흠..."

"좋아, 그럼 처음부터 다시. 그러니까..."


끝날 것 같지 않았던 이 바보 같은 대화를 끝낸 이는 호텔 사장 마리오의 사촌이었다. 멜닉에서 주말을 보내고 다음날인 월요일 새벽 소피아로 돌아간다는 그는, 누구에게 들었는지 내가 소피아를 거쳐 코프리브쉬띠쨔로 가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그가 제안하길 소피아 버스터미널까지 태워 줄 테니 버스 값에 돈을 조금 얹어 달라는 것이었다. 멜닉에서 소피아로 가는 버스는 하루에 한 대 있고 새벽 6시에 마을을 출발, 총 4시간이 걸린다고 알고 있었다. 소피아에서 코프리브쉬띠쨔로 가는 아침 버스는 미리 알아본 바로는 아침 9시에 있다 했으나 출발 시간이 8시로 변경되었을 수도 있다는 정도였다. 그러니 멜닉에서 새벽 버스를 타고 소피아에 10시에 도착한다 하더라도 코프리브쉬띠쨔행 버스를 탈 수 없기 때문에, 사실 9시든 8시든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그의 메르세데스(이 부분을 수시로 강조했다)로 소피아까지 2시간만에 갈 수 있다며 란코와 나 사이에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는 휴대전화로 코프리브쉬띠쨔행 버스 정보를 찾아보았고, 그것이 여의치 않자 소피아에 있는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시간을 알아보게 했다. 여동생의 전화를 기다리며 그는 꽤 초조해 보였다. 행여 내가 자리라도 떠서 이 거래가 성사되지 못할까 걱정하는 눈치였다. 나는 지나치게 열정적인 그의 모습을 보며 도대체 돈을 얼마나 달라고 저러나 싶었지만, 막상 그가 부른 금액은 버스 값보다 고작 이천 원이 많은 돈이었다. 드디어 여동생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녀가 소피아 버스터미널의 인포메이션센터에 물어보니 9시에 코프리브쉬띠쨔행 버스가 출발한다는 내용이었다. "좋아요."라고 나는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마치 올림픽에서 금메달이라도 딴 사람처럼 뛸 듯이 기뻐하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새벽 5시 55분, 그의 자랑 메르세데스를 타고 마을을 떠났다. 여명 속에서 낡은 버스 한 대가 꽁무니에 희뿌연 연기를 뿜으며 마을 입구에 서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차를 타지 않았다면 내가 탔을 소피아행 버스였다. 그는 그가 말했던 대로 정말로 신나게 차를 몰았다. 뒷자석에 앉아 안젠벨트가 단단히 매어져 있는지 수시로 확인하며 1번 국도를 달릴 때 동이 텄다. 푸른 빛이 사라지고 옅은 오렌지 빛으로 물들다 이내 밝아진 하늘을 지켜보던 그때의 나의 심정은 조금 복잡했다. 180km 거리를 두 시간에 주파하겠다던 그의 호언장담을 믿지는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혹시나 재수가 좋아 코프리브쉬띠쨔에서 느긋하게 점심을 먹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가 어느새 움트고 있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은 그것보다 더 크다는 진리를 어릴 적 진작에 터득한 나는 자꾸만 꿈틀거리는 기대의 싹을 자르려 거듭 노력했는데, 만약 9시 버스를 타게 되면 그것을 시작으로 딱딱 들어맞을 아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8시 40분, 그가 나를 소피아 터미널에 내려 놓았을 때, 별 수 없이 희망에 부풀어 버스 회사를 찾아 정신 나간 사람처럼 터미널 안을 헤집고 다니게 되었던 것이다. 어렵게 찾아간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코프리브쉬띠쨔행 버스가 9시에 있다는 것을 재차 확인하고는 전력을 다해 버스 회사 사무실로 뛰어 들어갔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버스는 이미 8시에 떠나고 없었다.


얼마나 더 이런 경험을 해야 애꿎은 사람에게 화풀이를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언제쯤 호탕하게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허허허, 그럴 수도 있지 뭐,'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시간표가 바뀐 지 일 년도 넘었다는 버스 회사 직원을 붙잡고 나는, 무슨 일들을 이렇게 하냐고, 같은 터미널 안에 있는 인포메이션 센터 조차 제대로 된 시간표를 모르고 있는데 어찌 내가 그것을 알 수 있었겠냐고, 있는 대로 성질을 부렸다.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그는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찾아 다른 사무실로 나를 데려갔는데, 세상에나 나는 그곳에서도 붉으락푸르락 화를 내고 말았다. 그들은 연신 사과하면서, 오후에 있을 다음 버스를 기다리는 것보다 기차를 타고 가는 것이 더 빠를지도 모른다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들이 코프리브쉬띠쨔행 기차와 최선의 방법에 대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심각하게 궁리하는 모습을 보며, 갑자기 서늘한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쳤다. '도대체 나는 뭣 때문에 이 난리야.' 그러자 잔뜩 몸에 들어갔던 기운이 빠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제서야, 영어를 할 줄 안다는 죄로 아침부터 남의 일에 끼어 엉겁결에 사과하고 있는 여자와 그녀 옆에서 쩔쩔매고 있는 커다란 덩치의 남자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어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머리를 쑤셔 박고 싶은 심정이었다. 창피함이 순식간에 나를 덮쳤다.


기차역은 버스터미널 바로 옆에 붙어 있었다. 그곳에서 9시 25분에 출발하는 코프리브쉬띠쨔행 기차표를 손에 넣었을 때, 나의 부끄러움은 극에 달했다. 멍청이가 된 기분이었다. 달리는 기차 밖으로 끝도 없는 해바라기 밭이 펼쳐졌다. 하늘의 파란색과 땅의 노란색만이 세상의 전부인 것 같았다.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풍경을 앞에 두고도 나는 버스 사무실에서의 일 때문에 시무룩하기만 했다. 아, 앞으로 착하게 살아야지. 화내지 말아야지.


소피아에서 코프리브쉬띠쨔까지 두 시간 반이 걸리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도착 시간이 아직 한참 남았을 때 승무원 아줌마가 내게 다가와 기차에서 내릴 준비를 하라며 배낭을 어깨에 메는 시늉을 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승객들도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있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 의자에서 엉덩이를 들썩이고 있으니 그녀가 다시 한번 "코프리브쉬띠쨔!!"라고 말하며 함박 웃음을 지었다. 퉁퉁하고 푸근한 미소에 버석버석했던 마음이 조금 털리는 기분이었다. 기차에서 우르르 내리는 사람들 틈에 얼떨결에 끼었다. 곱슬머리와 남자 같은 풍채의 승무원 아줌마가 손짓과 표정을 총동원하여 설명하길,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는 것 같았다. 불가리아 중부, 이름도 모르고 어딘지도 모르는 작은 역에서 그렇게 내려 역 앞에 대기하고 있던 버스에 다 함께 옮겨 탔다. 버스는 이런 시골을 돌아다니기에 꽤나 신식이었고 운전기사 역시 정복 차림이었다. 승무원 아줌마도 함께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산길을 지나고 마을을 지나고 다시 산길을 달려 어느 기차역 앞에 멈추었다. 그곳이 바로 코프리브쉬띠쨔 기차역이었다. 선로가 중간에 끊긴 모양이었다. 승무원 아줌마는 손가락으로 땅바닥을 가리키며 “코프리브쉬띠쨔!” 라는 말과 함께 예의 그 푸근한 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다른 사람들을 인솔해 기차역 안으로 들어갔다. 역 앞 작은 공터에는 나를 포함한 네 사람만이 남겨졌는데, 그 중 두 사람이 마중 나온 차를 타고 바람같이 사라지는 바람에 공터에 남은 것은 나와 다른 여행자 한 명뿐이었다.


론리플래닛의 코프리브쉬띠쨔 편에는 이렇게 써 있었다.


'코프리브쉬띠쨔로 가는 것에는 약간의 도전이 따른다. 기차역은 마을에서 북쪽으로 9km 떨어져 있는데, 기차역과 마을을 오가는 셔틀버스가 언제나 기차 시간과 상관없는 시간에 기차역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마침 한 젊은 여자가 역사에서 나와 주차되어 있는 차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녀에게 어디로 가냐고 물으니 손사래를 쳤다. 천천히 또박또박 다시 한번 물었다. 


"코.프.리.브.쉬.띠.쨔.로 가나요?"


여자는 그렇다고 대답하며 활짝 웃었다. 아이고, 다행이다. 그녀에게 차를 태워줄 수 있냐고 물었다. 흔쾌히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나는 아까부터 내 옆에 서 있던 여행자에게 같이 타겠냐고 물어 보았다. 그녀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더니 조수석 문을 열고 냉큼 차에 올랐다.


알바니아 티라나의 호스텔에서 다른 여행자들과 시간을 보낼 때의 일이다. 자연스레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대화는 여행 중 겪은 짜증나는 일에 대한 것으로 흘러갔다.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알바니아 사람들의 그 제스쳐 있잖아, 그거 진짜 짜증나. 뭔지 알지?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가 또 안 오는 거야. 더워 죽겠지, 가방은 무겁지. 그래서 옆에 있는 사람에게 물었어. 버스 언제 오냐고. 그랬더니 망할 그 제스쳐! 환장하는 줄 알았다고!"

"나도 그거 정말 별로더라."

"나도 나도!!"


그게 무엇이냐 하면, 두 팔을 접어 올려 손바닥을 하늘로 향하게 함과 동시에, 어깨 으쓱 + 눈썹은 위로 + 눈 한 번 깜빡 + 아랫 입술 쭉 내밀기. 다급한 상황에서 보고 있노라면 정말 한 대 쥐어박고 싶어진다. 내가 말했다.


"나는 프랑스 사람들이 왜 툭하면 얼굴을 찌그러트리고 입을 비틀어 '퓩!'하는 소리를 내는지 모르겠어."

"맞아. 그거 짜증나지 않아? 여기 프랑스 사람 없어? 이유나 좀 알자."


누군가 거들었다. 다들 비슷한 걸 느끼는구나 싶어 다 함께 한바탕 웃었다. 웃음이 잠잠해졌을 때 터키에서 온 여행자 중 하나가 나와 내 옆에 있던 동포 여성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근데 너희가 한국 사람이니까 물어보는데, 기분 나빠하지 말고 들어 봐. 이건 정말 궁금해서 묻는 거니까. 알았지? 한국에서 여행 온 여자들을 보면 핑크색의 거대한 트렁크를 끓고 챙이 넓은 모자에 예쁜 원피스나 짧은 치마를 입고 굽이 높은 힐을 신고 다닌다? 무슨 파티장에 갈 것처럼 완벽한 모습으로 말이야. 서울에서라면 모르지만 도대체 그렇게 입고 어떻게 여행할 수 있는 거야? 진짜 궁금했어. 멀리서 봐도 누가 한국 여자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니까. 그렇게 입는 사람 중 열에 아홉은 한국 여자라고."

"야, 그들이 한국 여자인지 일본 여자인지 아니면 중국 여자인지 어떻게 확신해? 구별할 수 있다고?"

내가 물었다.


"왜 몰라. 한국말이 어떻게 들리는지 정도는 우리도 아는 걸."


옆에서 듣고 있던 다른 여행자들이 자기들도 궁금했다며 한마디씩 말을 보탰다. 나의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한국 여성을 대표해 무슨 말이든 해야 할 것 같은데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럽기만 했다. 그때 동포 여성이 이렇게 말했다.


"있지, 내가 한 달 전에 영국에 도착했어. 그곳은 나의 첫 유럽이야. 발칸이나 동유럽 말고 사람들이 흔히들 말하는 그 유럽 말이야. 런던 공항에 처음 도착했을 때 '아, 내가 드디어 영국에 유럽에 왔구나!' 가슴이 다 벅찼어. 너희들이 밖에서 보는 수많은 한국 여자들이 나처럼 그럴지도 몰라. 그들의 첫 유럽일지도 모르고, 처음이자 마지막 유럽일지도 모르는 거야. 이곳에 오겠다고 몇 달 혹은 몇 년 동안 돈을 모았을지도 모르고. 그렇다면, 그렇게 바라던 곳에 왔는데 가장 멋진 모습으로 오고 싶지 않겠어? 너희라면 그렇지 않겠어?"


조근조근 차분한 그녀의 말에 귀 기울인 청중들이 하나 둘 고개를 끄떡였다. 나도 고개를 끄떡였다.

'아, 그런 거였구나.'


프랑스인 마카엘의 첫인상은 다른 프랑스인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녀는 오 분에 한 번 꼴로 내가 싫어하는 그 '퓩!' 표정을 지어 보였고, 그 탓에 생긴 것인지 미간 깊이 자리잡은 주름이 그녀를 더욱 쌀쌀맞아 보이게 했다.


론리플래닛이 '무지하게 도움 돼요!'라고 칭찬한 코프리브쉬띠쨔의 여행자센터는 굳게 닫혀 있었다. 센터를 통해 오늘 밤 묵을 숙소를 소개 받을 생각이었는데 주변 상인들에게 물어도 여행자센터가 어찌된 사정인지 알 수가 없었다. 마카엘 역시 숙소를 찾아야 했기에 우리는 동행했다. 한 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마을을 가르며 흐르는 작은 개천의 돌다리를 건너 호텔이 몰려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호텔 간판을 보고 나무 대문을 밀고 들어서는 곳마다 잘 정돈된 푸르고 너른 마당에 형형색색의 꽃이 심어져 있었고, 두세 개의 안채들은 각지 다른 파스텔 톤의 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몸을 잔뜩 수그리고 바라보며 그토록 들어가고 싶어했던,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정원으로 들어온 기분이었다. 그저 평범해 보였던 외관과 투박한 나무 대문에 비교되어 담 안쪽의 세상은 마치 다른 세상 같았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 별천지들의 숙박료는 우리의 예산보다 높아 아쉬움 마음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고, 그 호텔들보다 조금 덜 아름다운, 그럼에도 여전히 아름다운 숙소의 마당으로 들어설 때는 적당한 금액이라면 이곳에 짐을 풀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숙소를 찾으며 하루를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마당에 서서 "계세요~~"라고 몇 번을 외쳐도 아무도 나오지 않아 또 허탕을 치려나 생각하던 찰나 대문과 가까운 안채에서 소리가 들려 안을 들여다보니 한 할머니가 TV를 틀어놓고 주무시고 계셨다. 자는 할머니를 깨워 방이 있는지를 물었지만,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하고 잠까지 덜 깬 할머니는 눈만 껌뻑이며 멀뚱히 서 있을 뿐이었다. 그런 할머니가 답답했는지 마카엘은 엄지 손가락을 검지와 중지에 비비며 "'머니! 머니!"라고 말했다. 마카엘은 내가 싫어하는 행동은 다 하고 있었다. 어쨌거나 '머니'가 통했는지 할머니는 대뜸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 나를 바꿔주었다. 할머니의 아들이라는 남자는 침대 세 개짜리 방을 혼자 쓰면 25레바(12.5유로)라고 전화기 너머에서 우렁차게 말했다. 좋은 금액이라 그러겠노라고 대답하고 다른 방이 하나 더 있나 물으니 남은 방이 그거 하나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옆에 있는 미카엘에게 대화 내용을 전달했을 때 실망하는 그녀의 표정에 마음이 흔들려 40레바를 주고 그녀와 한방에 묵기로 했다.


코프리브쉬띠쨔는 19세기초에 있었던 큰 화재로 거의 전소된 후 새롭게 재건된 곳이라 했다. 국가 부흥기였던 당시, 부를 축적한 상인과 장인들이 마을로 들어왔고 그 시대에 새롭게 등장한 건축 양식으로 호화로운 주택을 경쟁적으로 지어 현재의 아름다운 마을 모습을 갖게 된 것이다. 오토만에 대항한 봉기가 일어난 곳 중 하나이기도 한 코프리브쉬띠쨔는 불가리아 부흥시대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박물관 도시'로 선정되어 국가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다.


해발 1030m에 위치한 탓에 소피아 보다 5도 이상 기온이 낮다더니 간혹 불어오는 바람에도 몸이 선득선득했다. 내복 바지를 껴입고 숙소 뒤 언덕에 올랐다. 야트막하고 동그란 언덕은 온통 풀밭이었고 언덕 위에는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숲에서 내려오는 차가운 기운에 젖은 흙 냄새가 실려왔다. 폭신한 풀을 밟자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언덕에는 말들이 여기저기 점처럼 서 있었다. 바람에 갈기를 날리며 어딘가를 혹은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는 그 모습이 신비로웠다. 자세히 보고 싶어 가까이 가니 느릿느릿 고개를 돌려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 우아한 모습에 감탄하고 있을 때 멀리서 뎅뎅뎅 방울소리가 들렸다. 목동 여자가 거대한 소 한 마리와 염소 두 마리, 양 여러 마리를 몰고 내 쪽으로 오고 있었다. 그녀는 내 나이로 보였다. 그 언덕의 살아 있는 동물 중 인간은 그녀와 나 둘 뿐이었다. 우리는 눈으로 인사를 나눴다. 그녀가 손가락 하나를 들어 혼자 왔냐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웃어 보였다. 그녀도 따라 웃었다. 그녀의 얼굴은 햇볕이 만든 색으로 검었고 바람이 만든 결로 거칠었지만 아름다운 광대뼈는 붉게 빛나고 있었다. 자연이 만든 그녀의 얼굴에, 주름 가득한 그 웃음에 껄끄러웠던 내 마음에서 티끌들이 툭툭 털려 나가는 것만 같았다.


그녀가 저 길을 따라 가 보라고 손짓했다. 그녀가 알려준 오솔길을 따라 언덕을 걸었다. 마을을 사이에 두고 꼭 닮은 언덕이 마주하고 있었다. 한참을 걷다 보니 거대한 기마동상이 나타났다. 아마도 그녀가 보라고 한 것이 이것이었나 보다. 동상의 주인공은 게오르기 벤코브시키로 오토만에 대항한 4월 봉기의 사령관이었다. 코프리브쉬짜에서 태어나 이곳을 위해 싸우다 이곳에서 죽은 그는 죽고 나서 불가리아 국민의 영웅이 되었다고 한다. 국민의 영웅을 지나 마을로 내려오니 몇 군데의 주택 박물관이 나타났지만 박물관을 구경하기에 햇살이 아까운 날이었다. 박제된 박물관 대신 살아있는 마을을 실컷 보고 싶었다. 마을 중앙을 흐르는 개천과 나란한 큰길을 따라 걸으며 마을이 끝나는 곳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와 마을의 이 골목 저 골목을 걸었다. 딸각딸각 말발굽 소리와 함께 찰랑찰랑 방울 소리를 내며 들썩들썩 몸을 흔드는 나이든 농부를 싣고 마차가 지나갔다. 자동차보다 마차가 더 흔한 동네였다. 마을 광장에는 기념품 가게와 레스토랑, 카페들이 있었는데 길가다 만난 동네 주민 둘이 짧은 대화를 마치고 사라지자 넓은 광장은 금새 텅 비었다. 광장 뒤쪽으로 넒은 잔디밭을 가진 문화센터가 있었고 그 옆으로 작은 무대와 함께 벤치가 놓여 있었다. 코프리브쉬띠짜에서는 5년 마다 큰 규모의 전통 문화 축제가 열린다고 했다. 전국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전통 복장을 하고 언덕에서 춤을 춘다고 하니 상상만으로도 근사한 일이다. 하여간 이렇게 예쁜 산골마을은 생전 처음 보았다. 주택 박물관 건물이 아니더라도 작은 골목을 따라 부드러운 색으로 칠해진 가옥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마을 북쪽에 있는 남보라색의 '성모승천교회'를 구경한 후 다시 언덕으로 향했다. 조지아의 코카서스 산맥의 작은 마을 스테판츠민다에서 내가 바랐던 것이 이곳에 다 있었다. 그곳에서는 좋지 않은 날씨와 그보다 더 좋지 못했던 몸 상태 때문에 우울하기 짝이 없었는데, 내가 그렇게나 좋아하는 아름다운 자연 속을, 그것도 풀 뜯는 말 사이를 누비고 다니다니 정말이지 머리에 꽃이라도 꽂고 싶은 기분이었다.


다시 언덕에 올랐다. 건너편 언덕 위에 우아하게 앉아있는 구름과 그 사이로 내린 빛살이 푸른 언덕과 주황 지붕을 번갈아 밝히는 것을, 작은 바위에 앉아 질리도록 바라보았다. 반나절이 지났는데도 목동 여자는 여전히 그 언덕에서 소에게 밥을 먹이고 있었다. 다 둘러 봤냐고 그녀가 손짓했다. 그렇다고 웃었다. 그녀도 따라 웃었다. 들꽃이 지천으로 핀 언덕이 집 뒤에 있고, 맨발로 흙을 느끼고, 나무가 내뿜는 숨을 들이킬 수 있는 곳. 목가적인 삶에 대한 나의 로망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해 질 녘 마을은 낮과 다르게 활기를 띠었다. 굴뚝에서 하나 둘 연기가 피어 오르기 시작했고, 꼴을 가득 실은 마차가 돌아왔고, 검은 타이즈를 신은 할머니가 구멍가게에서 토마토를 고르고 있었으며, 자전거 안장에 겨우 앉은 여자아이가 그 옆을 지나갔다. 곧 해가 질 터였다. 숙소에 들러 가진 옷을 몽땅 껴입었다. 껴입는 와중에도 해가 저 언덕 너머로 사라질까 마음이 바빴다. 저녁 산책을 시작한지 얼마 안됐을 때 다리 위에서 미카엘을 만났다. 몇 시간 만에 만나니 그래도 아는 얼굴이라고 꽤 반가웠다. 세수를 하러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라던 그녀가 저녁을 함께 먹자고 제안했다.


“좋아요, 그럼 다리 위에서 20분 후에 만나요.”


그렇게 돌아서 개천 주변을 산책하는데 멀리서 미카엘이 다시 나를 불렀다. 다리 앞에서 호텔을 운영하는 남자가 하릴없이 호텔 앞 계단에 앉아 있다가 다리 위에서 얘기를 하던 미카엘과 나를 본 모양이었다. 커피 한 잔 하고 가라고. 소피아에 부인과 자식이 있는 남자는 ‘무더위-프리’, ‘마누라-프리’의 이유로 주중에는 이곳에 내려와 있는다고 했다. 소피아의 날씨는 뚱뚱한 남자가 견디기에 너무 덥고, 하루에 담배 세 갑은 피워야 살 수 있는데 집에서는 부인의 잔소리 때문에 그럴 수 없어 코프리브쉬띠쨔가 좋다며 그는 가래 끓는 소리를 했다. 릴라 수도원에 가던 날 만났던 남자도 조선업에 종사했다고 하더니 이 남자 역시 17년 전 조선 회사에서 일할 때 한국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한국 사람 매우 매우 매우 좋아. 한국음식 매우 매우 매우 맛있어. 일본 사람도 매우 매우 좋아. 하지만 일본 음식은 나빠. 미안해. 나는 영어를 잘 못해. 하지만 한국 음식 매우 매우 매우 아름다워. 불가리아 음식 또한 매우 매우 매우 아름답지."


그는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있는 힘껏 빨아들이고는 집안으로 들어가 앨범 하나를 들고 돌아왔다. 사진 속에서 지금 보다 조금 젊은 남자가 커다란 외투를 입고 순대국집과 족발집, 생선조림집에서 힘차게 밥을 먹고 있었다. 시장 통에 흔히 있는 그런 식당이었다. 나는 그 사진을 보고 진심으로 감동하여 보통의 한국 사람들이 먹는 곳에서 밥을 먹었다고 남자를 한껏 칭찬했다. 남자는 터키 사람들이 "쵹!"이라고 말을 할 때처럼 손가락을 모두 모아 입 가까이 가져가며


"한국 음식 매우 매우 매우 아름다워!"


라고 되풀이해 말했다. 남자의 호텔은 겉에서 보는 것과 다르게 상당한 규모였다. 그는 우리에게 호텔 구석구석을 구경시켜 주었는데 박물관의 도시에서 박물관을 구경하지 않은 것이 아쉽지 않을 만큼 전통 방식으로 잘 꾸며져 있었고 짧은 영어 실력이었지만 남자의 성의 있는 설명에 그들의 생활상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그와 헤어져 미카엘이 세수를 하러 호텔로 돌아간 사이 나는 다시 언덕에 올랐다. 바람 부는 언덕은 몸이 덜덜 떨릴 정도로 추웠지만 참담하게 시작된 하루의 마무리 치고는 염치가 없을 정도로 평화롭고 고요했다. 착하게 살아야지. 화내지 말아야지.


저녁을 먹으며 미카엘이 또 그 표정을 지어 보였을 때 나는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물었다.


"프랑스 사람들이 그 표정을 짓는 걸 자주 봤는데...그건 무슨 의미야?"

"뭐?"

“왜, 이거 있잖아. 퓩!"


흉내를 낸다고 냈는데 어설펐는지 그녀가 웃었다.


"아. 별거 아닌데. 그냥 '별로?' 아니면 '그냥 저냥.' 뭐 이런."


내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던 걸까? 그녀는 또 다시 그 표정을 만들었다. 이번에는 무슨 뜻인지 알 것 만 같았다. 아마도, '별 하찮은 걸 다 묻네.'


마을로 들어오는 버스와 달리 마을을 나가는 버스는 기차 출발 시간에 맞춰 운행된다고 했다. 소피아 방면이든 반대 방면이든 열차 시간 사십여 분 전에 버스가 출발하는 식이었다. 미카엘과 7시 50분 버스를 타기로 하고 잠자리에 들기 전 내일 몇 시에 일어날 거냐고 물으니 그녀 왈, 7시 30분. 집 나서기 2시간 전에 일어나야 하는 나는 그런 그녀가 부러웠다. 그녀는 정말로 7시 반에 일어났다. 혹시나 버스를 놓칠까 싶어 정류장에서 만나기로 하고 먼저 숙소를 나왔는데 내가 정류장에 도착한지 채 오 분도 되지 않아 멀리서 걸어오는 그녀를 볼 수 있었다. 


기차를 타고 미카엘은 '까진락'으로, 나는 '플로브디브'로 이동할 생각이었다. 둘 다 '카를로보'역에서 기차를 갈아타야 했다. 코프리브쉬띠쨔에서 탄 기차가 카를로보역에 멈추었을 때 바로 옆 선로에 기차 한 대가 문을 열고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타야 할 기차인가 싶어 가까이 가 보니 기차 안에서 어제의 그 승무원 아줌마의 복슬복슬한 곱슬머리가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나와 그녀 둘 다 깜짝 놀라 반갑게 인사를 했다. 아줌마가 물었다.


"플로브디브?"

"다!"


내 옆에 서 있던 미카엘이 그녀를 올려다보며 "까진락?"이라고 물었다. 승무원 아줌마는 어깨를 으쓱했다. 미카엘이 "잘가."라는 말을 남겨 놓고 인파 속으로 사라진 것은 정말이지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저녁밥도 같이 먹고 한방에서 같이 잔 사이의 작별 치고는 황망하고 씁쓸했다.

'마음이 급했겠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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