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텔마릴린 May 10. 2016

[6] 속세에서 온 손님_불가리아 릴라수도원.

1부-발칸

릴라 수도원행 버스를 기다리며 두쁘니짜 버스터미널에서 온 김에 다음 목적지로 이동할 방법을 알아보기로 했다. 인포메이션 창구 안을 들여다보니 아침에 있던 남자(그는 내가 입을 떼기도 전에 “느엣 앙글리스키(No English)!”라고 말하며 손을 내저었었다) 대신 중년 여자가 자리를 지키고 있길래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지고 창구 안으로 머리를 집어넣었다. 하지만 역시나 그녀와도 말이 통하지 않았다. 


이럴 때 내가 쓰는 방법은 가고자 하는 도시의 이름을 종이에 적고 그 끝에 물음표를 두세 개 붙이는 것으로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Melnik ???


사실 방법이라고 부를 수도 없을 만큼 단순한 시도이지만, “느엣 앙글리스키.”라고 말하며 어깨를 으쓱하고 딴전을 피우는 사람에게도 대개 이 방법이 통해서 몇 차례 종이와 펜을 서로 주고받다 보면 흡족할 정도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종이 주고받기가 원활치 않았다. 걸려 오는 전화 때문이었다. 인포메이션 창구에 전화를 건다면 시간을 묻거나 경로를 묻는 것이 전부일 듯싶은데 도대체 그런 것을 묻고 답하는 사이에 무슨 할 말이 그리들 많은지 게다가 도대체 어느 대목에서 그렇게 하하호호 웃을 수 있는지 도통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전화벨이 한 번 울리면 통화는 족히 오륙 분은 계속되었고 긴 것은 십 분을 넘겼다. 그녀가 지역 주민들과 옆집 여자가 뒷집 홀아비와 야반도주한 금주의 핫이슈, 건넛마을 소가 세쌍둥이를 낳은 세상에 이런 일이, 블라고에브그라드 쇼핑몰의 여름 상품 대방출 정보, 최근에 알게 된 홀라당 태워 먹은 냄비를 새것처럼 만드는 기똥찬 방법 등에 대해 살가운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나는 아까부터 청구 안으로 반쯤 들어가 있는 상체를 빼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서 나의 존재를 잊지 않게 하기 위해 그녀와 눈을 맞추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다. 그리고 드디어 그녀가 수화기를 내려놓고 내 쪽으로 몸을 돌렸을 땐 수도원행 버스가 달달달달 요란한 소리를 내며 시동을 건 참이었다. 


“너무해!” 


이럴 때면 꼭 한국말이 튀어나온다. 그것도 큰소리로. 그런 나를 보고 한 남자가 무슨 일이냐고 말을 걸어왔다. 오십 대로 보이는 남자는 뚱뚱하고 짤막한 몸집에 붉고 기름진 얼굴, 뒤로 바짝 쓸어 넘겨 묵은 노루 꽁지머리를 하고 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그는 손에 쥔 아이스크림을 들어 보이며, "먹고 있어서 미안!"이라고 우물거리며 사과하고는 입가에 묻은 아이스크림을 혀로 쓱 핥으며 말을 이었다. 


"말 안 통하니까 정말 거지 같지?"


소피아에 사는 그는 그의 여동생, 여동생의 아들과 함께 수도원에 가는 길이라며 뒤에 서 있는 가족을 소개했다. 우리는 다 함께 버스에 올랐다. 남자에게 수도원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아느냐고 물었는데 이것이 화근이었다. 그때부터 남자의 수다가 시작되었다.


"수도원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아? 우라질, 환장해, 환장해. 나는 스무 번도 넘게 가 봤는데 갈 때마다, 빌어먹을, 매번 새로워. 장담하는데 수도원에 들어서자마자 그 풍경에 턱이 빠지게 될 거라고. 두고 봐. 나는 걷기 하나는 정말 자신 있어서 릴라 산에서 트래킹도 여러 번 해봤어. 불가리아의 산은 정말 빌어먹게 아름답다고. 수도원에 있는 약수는 또 어떻게? 젠장, 얼마나 달고 맛있는지. 그리고 수도원 뒤로 돌아가면 죽여주게 맛있는 요구르트를 파는 가게가 있거든? 참, 너희 나라에서 파는 그 요구르트 말야. 흥, 불가리스? 지랄, 그건 요구르트가 아니야, 그냥 물이지 물!"


조선 회사에 다녔던 그는 몇 달 동안 중국에서 일했고 일 때문에 한국에 몇 번 와 본 적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그의 말 그대로 '뻑'나서 지금은 나의 동지, 백수.


"중국 가봤어? 빌어먹을 중국, 얼마나 지랄 같은지 정말 끔찍했어. 길거리 더럽지, 식당 더럽지. 식당에서 파는 것은 죄다 쓰레기라고, 쓰레기. 그래서 동료들하고 맨날 어디서 밥을 먹었는지 알아? 맥도날드! 질리도록 먹어서 다들 쉿도날드라고 불렀어, 쉿도날드!"  


불가리아를 남북으로 연결하는 1번 국도는 1번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한산했다. 버스는 비록 쩍쩍 갈라진 의자의 틈 사이로 누런 스펀지가 드러나 있고 대지를 뒤흔들듯 요란한 소리를 내는 구닥다리였지만 그 세월을 앞설 기세로 무섭게 달렸다. 국도와 나란히 달리는 철길이 수풀 사이에서 나타났다 숨기를 반복했고 그러다 작은 마을에 막히기라도 하면 저 멀리 들판 어딘가로 사라져졌다 어느샌가 우리를 쫓아와 나란히 달리고 있었다. 사실, '불가리스' 이야기가 나왔을 때 부끄러운 생각이 조금 들기도 했지만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의 넓적한 얼굴 너머의 창 밖 풍경을 바라보며, 카메라 앞에서 바쁜 시늉을 하는 국회의원들이 보좌관의 귓속말에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떡이는 것처럼, 건성으로 흐음... 흐음... 그냥 고개만 주억거리게 되었다.  


수도원까지 90분이 걸렸다. 50km 조금 넘는 거리라 설마 그렇게 오래 걸리까 싶었는데 정말 그렇게 오래 걸렸다. 국도를 벗어나면서 완만하지만 경사로가 계속되었고, 중간에 릴라 마을에서 휴식시간을 갖기도 했다. 수도원에 도착한 시간이 세 시 사십오 분이었고 버스가 다시 두쁘니짜로 돌아가는 시간이 다섯 시 정각이었다. 수도원에서 주어진 시간이 고작 한 시간 십오 분이 전부였다. 마음이 급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런 나의 마음을 알리 없는 남자는 멀리 동양에서 온 나에게 그가 그토록 좋아하는 수도원에 대해 뭐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주차장에서 보이는 수도원의 개성 없는 외관이 연출한 극적 효과가 더해져 소름 끼치도록 아름다운 수도원의 첫인상에 압도당한 나머지 그가 장담했던대로 그만 턱이 빠져 수도원 돌바닥에 나뒹굴게 되자 나는 그저 창연하고 우아한 그곳을 조용히 즐기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내가 고개를 한껏 젖히고 입을 헤 벌리며 눈으로 구석구석을 쫓고 있는 와중에도 남자의 참견은 계속되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듣고 있지 않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어느새 그는 사라지고 없었다.


10세기, 수도자 릴스키가 근처 동굴에서 말 그대로 가진 것 하나 없이 은둔 생활을 했다고 한다. 어쩌다 그리 되었는지 모르겠으나 그가 치유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이 퍼져 유명세를 타게 되었고, 그에게 가르침을 받으려는 추종자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어 지금의 수도원 자리에 공동체가 만들어졌다. 수도원이 지어진 이래로 이 땅의 영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게 되는데 그것을 가져다 뭐에 쓰려고 했는지는 몰라도 중세의 통치자들이 그토록 손에 넣고 싶어 했던 릴스키의 유해가 수도원으로 돌아오자 이곳은 성지로 등극하게 되었다. 정신적, 문화적, 민족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 수도원은 오토만 지배기에 숱한 공격과 약탈을 당했고, 19세기 초에 있었던 대화재로 거의 소실되고 말았다. 지금의 수도원은 대화재 이후 곳곳에서 모인 성금으로 19세기에 다시 지어진 것이다. 비딱한 모양의 안뜰을 둘러싸고 있는 건물은 300개의 수도실로 이루어져 있고 자리만 있다면 이곳에서 묵을 수 있다고 했다. 알바니아에서 만난 여행자가 칠월 중순 아무런 예약 없이 수도원에서 하룻밤 묵었다는 얘기에 나도 그러고 싶었지만 소피아와 싸빠레바 반야의 여행자센터 직원들은 성수기라 불가능하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버스를 함께 타고 온 남자 역시 수도원에 전화로 문의해 보았지만 두 달 전부터 예약이 다 차 있어 도리가 없었다고 했다. 나는 터키 마르딘의 시리아 교회에서 처음으로 정교회 예배를 지켜보았다. 작고 어두운 교회에서 기도하듯 노래하고 노래하듯 기도하는 그 울림에 감동받아 그 후로, 말이 좀 우습기는 하지만, '정교회 예배 관람'에 열광하게 되었다. 하여 관광객이 들어오기 전 이른 아침과 모두가 빠져나간 늦은 밤의 릴라 수도원이, 그리고 이곳에서 이루어질 예배가 눈에 어른거려 금욕의 삶을 살았다는 릴스키와 함께 있는데도 불구하고 수도원에서의 하룻밤에 자꾸만 욕심이 나고 말았다.



수도원 외벽에 줄무늬와 바둑판무늬로 칠해진 흑과 백처럼 프레스코화는 지옥과 천국을 선명하게 분리하고 있었다. 나처럼 죄 많이 짓고 사는 무신자의 눈에 지옥과 사탄, 벌과 고문의 묘사가 조금 익살스러워 보였다. 주변에 색이라고는 푸름뿐인 높고 깊은 산중의 수도원이 어쩌다 이렇게 화사하고 도드라진 옷을 입게 되었을까? 하얀 눈이 푸름마저 덮어버리는 겨울에는 또 얼마나 빛을 발하게 될까? 


하지만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이곳에서도 어쩔 수 없이 배가 고팠다. 종종 걸음으로 남자가 알려준 요구르트 가게를 찾아갔다. 끝내주게 맛있는 요구르트를 파는 곳이라더니 가게 앞에 줄을 서야 했다. 줄의 꽁지에 붙어 초조하게 시계를 보고 있는데 방금 요구르트를 산 그 남자가 '내 그럴 줄 알았지'라는 표정으로 내게 다가왔다. 


"요구르트 사려고? 자, 이거 받아. 우린 세 명인데 내가 네 개나 샀지 뭐야." 


그가 봉지에서 요구르트 하나를 꺼내 내게 건넸다.


"왜요? 다 떨어졌대요?" 


라고 말하며 앞을 보니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고맙지만 아저씨 두 개 드세요. 다른 사람들 보니까 빵도 먹던데, 빵도 사려고요." 


내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남자는 내 손에 요구르트 한 통을 안기며, 


"버스 시간 알지? 그거 못 타면 끝장이라고!" 


라고 말하고는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전투적인 자세로 달려들어 쫓기듯 감상하기에 수도원은 낯선 아름다움 천지였다. 한 시간 꼬박 난간에 걸터앉아 교회만 쳐다보고 있으라 해도 그럴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가혹한 일이다. 불경한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버스 시간표가 속상하기만 했다. 하여 영적으로 충만하다는 수도원을 떠날 때 나의 마음은 불평불만으로 가득 차고 말았는데, 그나마 버스에 남은 마지막 빈자리를 차지하자 마음이 누그러졌다.


        

이전 05화 [5] 감상의 순화 혹은 왜곡_불가리아 싸바레바 반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