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덩 Jan 24. 2022

아이를 유치원에 그만 보내기로 결정한 4가지 이유

내일이 첫날이다. 둘째 출산을 도와주시기 위해 한국에서 방문해 주셨던 어머님과 아버님도 한국에 돌아가셔서 이젠 함께 계시지 않고, 첫째 아이도 유치원에 가지 않는 첫 월요일. 그리고 나의 봄학기 개강일이기도 하다. 여러모로 새로운 시작처럼 느껴지는 내일이다. 


아이는 지난주부터 유치원을 안 가긴 했다. 하지만 할머니 할아버지가 함께 계셔주는 마지막 주간이었기에 유치원에서 홈스쿨링으로 넘어가는 방학처럼 한 주를 보냈다. 그러는 새 시험 삼아 몇 가지 교육 콘텐츠들도 함께 해보고, 필드트립이라는 이름을 붙여 평일 낮에 동물원에 다녀오기도 했다. 


둘째를 출산하며 시간적 여유가 훨씬 빠듯해진 우리가 아이를 유치원에 그만 보내기로 결정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유치원에 보내지 않겠다는 결정에 이르기까진 물론 고민도 많았고 적지 않은 의논을 거쳤다. 그리고 아래와 같은 이유들을 생각하며 우린 합의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첫째, 코로나바이러스


여기에 적는 이유들 중 어떤 게 가장 중요한 이유인지 그 경중을 가리긴 어렵겠지만, 역시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인 이유를 무시할 수 없다. 최근 미국에서 무섭게 치솟은 코로나바이러스 케이스 수에도 불구하고 여기 학교에선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 동료 교수의 남편인 의사에게 들어보면 내가 사는 도시에서도 어린이 환자 수가 급격히 늘었다는데, 참 신기하게도 (또는 놀랍게도?) 위기감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아이가 속한 학급은 총원이 25명인데 그중 마스크를 쓰는 아이는 우리 아이를 포함해 단 2명이었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처음엔 매우 협조적이었던 아이도 점점 마스크 쓰는 걸 부담스럽고 힘들어했다. 무척이나 이해가 된다. 어른도 하루 종일 마스크를 쓰자면 힘든데 아이야 말해 무엇할까. 더군다나 반의 친구들이 거의 아무도 안 쓰는 상황이라면 말이다. 아이 말에 의하면, 친구들도 아이에게 마스크를 벗으라고 늘상 얘기한다고.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가 생겨서 잠정적으로 유치원을 닫게 됐다는 소식이 이웃 여기저기서 들린다. 그럼에도 이곳 미국에서는 다수의 사람들에게 이젠 거의 감기 취급을 받다시피 하는 코로나바이러스다. 걸릴까 봐 우리가 불안에 벌벌 떨고 있는 건 아니지만, 우린 여전히 피할 수 있다면 피하자는, 조심할 수 있는 부분은 조심하자는 생각이다. 



둘째, 아이의 스트레스


아이는 줄곧 학교에 관련해서 몇 가지 스트레스들이 있었다. 먼저 아이는 아침에 일어나는 걸 무척 힘들어하는 편이다. 본인도 스스로 "나는 아침엔 힘이 없고 밤에는 힘이 많아"라고 얘기할 정도다 (한숨..). 아이의 말대로 밤에 힘이 넘치니 암만 수를 써도 늦게 잠이 들 때가 많고 아침에는 언제나 힘들어하기 일수였다. 


잦은 변화로 인한 스트레스도 한몫했다. 우리는 첫째 아이가 100일 남짓일 때 미국에 왔고 만 18개월 무렵에 파트타임으로 처음 시설에 보내기 시작했다. 만 2살이 되었을 때 풀타임으로 한동안 데이케어를 보내다가 코로나로 인해 만 3살 무렵 약 9개월 정도를 집에 데리고 있었다. 그리곤 또 이사를 해서 새로운 학교에 오게 된 것이다. 이런 불규칙한 변화들에 더하여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고 영어를 외국어로 사용하는 아이다 보니 언어적 소통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늘 있었다.


더군다나 최근엔 친구들이 키가 작은 편이고 월령이 좀 더 어린 자신을 아기라고 놀린다며 몇 번 속상함을 토로했었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학교 측에 면담을 요청하고 대화를 했으나 학교의 대응은 썩 만족스럽지 않았다. 아이는 반의 유일한 아시안이자 ESL (English as Second Language: 모국어가 따로 있고 영어를 외국어로 사용하는 경우) 학생이어서 안 그래도 신경이 쓰이던 터였다. 그런 와중이었기에, 에라 모르겠다, 하고 보내지 않기로 결정을 하는데 영향을 미친 것이다. 



셋째, 비싼 학비


아주 단순하게 용어를 정리하자면 한국의 어린이집은 미국의 데이케어에, 그리고 유치원은 미국의 프리스쿨에, 그리고 킨더가든은 초등학교의 시작에 해당한다. 주(state)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미국은 여러 주에서 킨더가든 이후를 의무교육으록 규정하고 최소한 반나절 또는 종일 수업을 무료로 제공하도록 되어 있다. 그 말인즉슨 데이케어나 프리스쿨을 다니는 데에는 비용이 든다는 얘기인데, 이 비용이 상당하다. 


데이케어나 프리스쿨 학비는 대도시일수록, 학군이 좋을수록, 시설의 퀄리티나 커리큘럼이 좋을수록 비싼 경향이 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대도시가 아닌 중소도시임에도 커리큘럼과 시설이 괜찮아 보이는 곳을 선별했을 때 유치원 학비로 매달 약 1,200달러 정도를 지불해 왔다. 한화로는 현재 환율로 140만 원이 넘는 금액이며, 잘은 모르지만 우리나라에서 영유라고 부르는 영어유치원을 보내는 비용과 맞먹는 셈이다 (굳이 따지면 여기 유치원도 영어유치원이긴 하다...).


우리로서는 상당한 부담이 되는 학비를 지불하며 아이를 유치원에 보냄에도 불구하고, 만족스러운 수준의 교육과 다문화적 역량을 경험하진 못했다. 차라리 이 돈을 아껴서 맛있는 음식이나 한 번 더 먹고 힘내서 아이를 집에서 돌봐도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 이유가 됐달까. 지금까진 아내도 임신부의 몸이어서 첫째를 돌보기에 무리가 있었지만, 이제 출산을 한 뒤 현재까진 몸을 잘 회복해왔기 때문에 아이를 집에서 가르치고 돌보며 학비를 좀 아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넷째,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건 기쁘고 즐겁다. 동시에 체력 소모가 심하고 종종 궁극의 인내심을 요구하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이와 보내는 시간은 무척 소중하다. 함께 깔깔대고 웃든, 지지고 볶든, 지금의 시간이 영원하지 않고 언젠가는 아이가 내 품을 떠나갈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아이는 이제 반년 남짓 정도 뒤면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물론 방학도 있고 연휴도 있겠지만, 아이를 옆에 두고 이렇게 온전히 하루하루를 함께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 테다.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고, 점점 혼자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질 테고, 부모보단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늘어날 테다. 그리곤 어느 날 갑자기 나는 법을 터득한 아기새처럼 둥지를 홀연히, 훌쩍 떠나갈 테다. 너무 할아버지 같은 말인가 싶지만 사실인걸. 


그래서 아내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고 한다. 지금이 아이와 살 비비며 지내며 함께할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소중한 시간 중 한 때겠구나. 어쨌든 쉽지만은 않을 이 생활에 '끝'이 정해져 있다는 점은 위안을 준다. 암만 힘들어도 반년이 지나면 아이는 다시 학교에 가게 되기 때문이다. 끝이 언제인지 아는 시간은 버텨낼 수 있다. 무엇보다 아이는 정말 예쁘다. 보아도 보아도 사랑스럽고 안 보면 눈에 어른거린다. 실은 옆 방에서 그냥 자고 있는데도.. 




모든 일이 그렇듯 아이를 학교에 그만 보내기로 한 결정에도 장단점은 있다. 즉 그만 보내기로 해서 염려가 해소된 부분도 있고 새롭게 생겨난 염려도 있다. 이를테면, 학교를 다니는 것의 가장 큰 목적 중 하나가 다른 친구들과 교류하며 사회성을 기르는 일인데 그 부족함은 어찌 메울까, 집에서 홈스쿨링 하는 일과시간 동안은 영어로 진행하기로는 했지만 아무래도 영어에 대한 노출이 줄어들 텐데 초등학교에 갈 때가 되면 그 새 영어를 홀라당 까먹어 버리는 건 아닐까, 등등. 


"학교 안 가고 집에서 엄마 아빠랑 배우고 함께 지내니 어때?"라는 질문에 "너무 좋아!"라고 답하는 아이. 아이는 정말 마음이 더욱 편안해 보이고 더 행복해 보인다. 우리의 결정이 좋은, 또는 옳은 결정일까? 시간이 지나 보기 전엔 알 수 없는 걸까. 우리의 결정이 좋은 결정일지 아닐지, 어쩌면 그건 나와 아내와 아이가 앞으로 만들어가기 나름이리라는 생각을 한다. 



할로윈을 맞아 퍼레이드 쇼를 했던 사진 (왼쪽) 그리고 마지막 날에 친구들로부터 롤링페이퍼(라곤 하지만 친구들이 겨우 한땀한땀 자기 이름들을 적어준..)를 받은 아이.


매거진의 이전글 내게 힘을 준 첫째 아이의 한 마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