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4월 5일 식목일 공휴일. 오늘 이맘때 내 고2시절.
공무원 아파트 뒷산으로 아버지가 약수를 뜨러 가시겠다고 하셔서 따라나섰었다.
하산길. 공짜인 데다가 몸에도 좋은 약수를 주름 통 2개가 가득 찼으니 기분 좋으신 아버지.
아버지와의 모처럼 부자간 산행이 나도 기분이 좋았었을까? 까불다가 넘어져 왼쪽 전갱이가 부러졌었지.
아버지께 못 보여드릴 모습을 보였드랬었다.
그때부터 몇 개월간은 석고 깁스를 하고 학교고, 노량진 단과학원이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목발이 신기해 재미있기도 했었지만, 그것도 잠시, 1주일 정도 지나니 겨드랑이도 아프고 참 불편하고 힘들었었다.
하지만 정말로 신기한 건 따로 있었다. 그때부터 내 눈에 다리가 부러지거나,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던 것. 관심사라는 게 항상 나와 연관이 되면 세상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형성되는 것인가? 그 이전에는 몰랐던 기특한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었다.
‘저 보호대를 찬 사람은 팔이 심하게 삐었나 보군.’
만원 버스에서 팔이 불편한 사람이 앞에 있으면 허리에 힘을 주고 부딪히지 않으려 더 신경 썼다.
‘저 어르신은 풍이 오셨나?’
백발노인의 어눌한 발걸음이 걱정스러워 건널목을 다 넘어가고 나서야 발걸음을 다시 재촉했다.
지금, 그때와 비슷한 상황일까?
내가 처한 환경에 따라 안보이던 게 보이기 시작했다.
작곡이란 것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이후, 이전에는 레코드 가게에서 나오는 음악소리에 귀 기울 일리가 없었겠지만 이제는 달랐다. 버스 정류장 앞 레코드 가게에서 한참을 서서 안 들리던 음악을 듣게 되었다.
이젠 박자를 세고, 박자가 얼마나 쪼개졌는지, 멜로디와 가수의 목소리가 어울리는지, 빠른 노래인데도 왜 슬픈 건지, 요즈음에는 노래 안에서 너도나도 랩을 넣는 것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호기심을 넘어서 작곡자가 되기로 공언한 이상, 이젠 ‘곡’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온통 음정과 음표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하지만 ‘작곡’을 한다는 건 마법 같은 음악적 능력을 가지고 난 뒤에도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특별한 능력이 생겨서 우쭐할 때가 아니었다. 넘어야 할 더 커다란 산을 보고 있는 느낌이랄까.
들으면 무슨 음정인지는 알겠는데, 악보를 보거나, 더욱이 머릿속에 떠오른 악상을 악보로 표시하는 건 또 다른 벽처럼, 더 커다란 산으로 느껴졌다. ‘노래를 만든다’라는 것은 완전 다른 영역의 문제였다.
‘악보를 어떻게 그리지? 김현석은 작곡을 어떻게 했을까?’
“따, 안. 따, 안”, “ / \ / \ ”
일일이 박자를 헤아려 표시를 하고 그것을 악상기호로 표시하는 것은 거의 막일에 가까웠다. 그런 식으로 계속해나가다가는 곡이 만들어지기 전에 지칠 게 뻔했다. 작곡은 내게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많이 고민하지 않고 생각해 낸 방법은 의외로 단순했다.
내 마이마이 카세트에 그때그때 악상이 떠오르는 데로 흥얼거리거나 기타로 연주하면서 녹음을 해두는 것이 어떨까?
아이디어를 바로 실행해 옮겼다. 집에 있는 녹음이 되는 모든 기계를 동원했다. 전축의 더블데크와 마이마이 소형카세트플레이어가 방구석 녹음실의 장비 전부였지만, 나는 곡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심지어 너무 재미있었다.
먼저 녹음해 둔 멜로디에 화음을 얹어 다시 녹음하기도 했다. 이것이 더블 데크의 힘!
그러면 얼추 화음이 들어간 효과를 낼 수 있어 제법 그럴싸한 데모테이프를 만들 수 있었다.
그 녹음테이프를 가지고 있다가 악보로 옮겨 그릴 줄 아는, 가령 키보드 담당인 다영이나, 김정안에게 가져다주고 악보로 만들면 되겠다 싶었다. 아니면 독고풍에게 맡겨야지.
나름의 방향이 정해지고, 몇 시간 동안 집중했다.
두 소절 정도 만들었다. 머리는 녹슨 수도꼭지처럼 시원스럽게 물을 뿜어내지 못했다. 잔뜩 녹슨 수도꼭지가 터질 듯 말 듯하다가 어디서 들은 것 같은 음률만 되뇔 뿐 더 이상의 창의력은 발휘되지 않았다.
‘이런 게 곡이 될 리가 없잖아.’
작곡을 한다는 것은 흥미롭긴 했지만, 확실히 고통스러웠다. 완벽을 추구하는 동시에 내가 만든 쓰레기를 보는 게 더 괴로웠다.
‘아 그냥, 동아리 20주년 연주회나 열심히 준비할 걸 그랬나?’
벌써 몇 시간째 만든 것이라고는 총 4마디, 한 악절도 안되었다. 속상한 마음에 곧바로 동네 슈퍼에서 소주 3병을 사 왔다. 안주도 따로 없이 깡소주를 마실 참이었다.
이전에는 그렇게까지 술을 좋아하지도, 의지하지도 않았었는데, 창작의 고통이라는 게 술을 부르는 듯했다. 그것도 오직 독한 술이어야 할 것 같았다. 소주병을 마이크처럼 쥐고는 연거푸 술을 마셨다.
심장이 뛰기 시작했고, 취기가 오르고 얼굴이 달아오르자, 머리는 깊은 시름을 잊었고 가슴은 말랑해졌다. 막혔던 흥얼거림이 다시금 긴 여운을 잃지 않고 목 밖으로 흘러나왔다.
그저 넋두리처럼 흥얼거리는 것을 주워 담아 그중의 어떤 파편이라도 써먹을 부분이 생기기를 바라며 녹음하고 또 녹음했다. 확실히 알코올 기운이 도움이 되는 듯했다.
'가사는 어떡하지?'
문득 내 얘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떠오른 것은 ‘아버지’였다. 상경대를 고집하시던 아버지의 소원은 내가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이었다.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에 나는 다른 길은 아예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사실은 두려웠다. 아버지의 웃는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일은 나는 할 수 없었다.
< 회색빛 넥타이, 어두운 정장의 군대, 깨끗이 정리된 곳에서 누구나 알고 있지 그들의 명령을...>
이대로 살아야 하는 것일까? '꿈'이라는 게 내게도 허락되는 것일까?
아버지의 바람대로 사는 것은 불행은 아니겠거니 하면서도 무엇인가 처음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실타래가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 기분대로 대충 흥얼거리는데 점점 몰입되어 가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있었다. 신선했다.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기분이었다.
<... 준만큼 토해라>
그 흥얼거림에 맞춰 기타를 쳐봤다. 스트로크로는 맛이 나지 않았다. 더 비장하게 하려면 묵직한 베이스 런을 뼈대로 삼아 일일이 음률 한오라기, 한 오라기를 망치로 깨듯 기타 현을 두드리며 전진해야 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녹음되고 있었다.
이제는 그 기타 반주에 맞춰 써두었던 가사로 노래를 읊조려 보았다.
한참 그저 멜로디를 흥얼거리는 게 왜 그리 서러웠을까? 이제는 술에 취한 걸까? 눈물이 핑 돌았다.
그런 내가 신기해서 거울을 본 순간, 그렁그렁 눈물이 일렁이는 것을 보며 머릿속에 순간 떠올랐다.
‘어? 재능 지수가 100? ’
내 평소 능력치가 올라갔다. 그것도 직접적인 음악성과 관계가 있는 재능지수가 20 수치나 올라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감성지수는 더 큰 폭으로 올라가 재능지수를 10 수치 이상 더 높아져 있었다.
‘감성지수가 재능지수를 뛰어넘으면 감정 조절이 안 되는 건가?’
순간 알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능력치 상승의 원인은 ‘술’이었다는 것을. 창작의 고통이 술을 찾게 했고, 그 취기가 내 음악성을 높여주었다는 것을. 더욱이 감정이 북받쳐 올라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게 만든 것은 감성지수가 재능지수를 압도할 때 생기는 현상이라는 것을.
‘김현석이 그래서 술을 많이 마셨던 건가?’
비운의 가객 김현석. 일찍이 마흔도 안 되어 간경화로 세상을 떠난 한국의 천재 보컬리스트. 최근에 도서관에서 읽었었던 ‘김현석 평전’의 한 구절이 생각이 났다.
<김현석은 자신을 잊기 위해 술을 마셨고 술의 힘을 빌려 음악을 했다. 의사가 “더 이상 술을 마시면 죽는다”라고 경고했지만, 그는 자신의 몸을 학대하듯 소주를 들이부었다. “머릿속에는 그가 추구하는 음악이 있는데 마음대로 소리가 안 나오니까 미치는 거지. 술을 마시면 소리가 원하는 대로 나올 것 같으니까. 옆에서 아무리 말려도 마셔대는 거였다.>
김현석은 완벽주의 뮤지션. 너무 음악이 잘하고 싶어서 술의 마력에 온몸을 던진 불나방 같은 뮤지션.
쾅!
‘깜짝이야!’
어머니가 내 방문을 거칠게 열어젖히는 소리만큼 큰소리로 고함치셨다.
정신을 차려 주위를 둘러보니 금두꺼비 소주 3병이 깔끔하게 비워졌다. 깨끗하게 증발해 버린 것 같았다.
“풍이 왔다고 그렇게 불렀는데…. 어휴 술 냄새. 대낮부터 술을 마셔?”
나의 여사님은 교회 어머니회 성가대에서 배우셨다던 복식 호흡을 마스터하신 건지 목소리가 쩌렁쩌렁하셨다.
“아! 간 떨어질 뻔했네! 엄마, 노크 좀 해주세요. 노크.”
엄마도 당신의 행동에 살짝 미안하셨는지 멋쩍어하셨다.
“요즈음 방에서 혼자서 뭐 하길래 도통 알 수가 없네…. 이 녀석아 풍이 왔다고…."
독고풍이 따라 올라왔는지 어머니 등 뒤에서 웃으면서 내 방에 성큼 들어왔다.
“백지수! 선배가 오셨는데 버선발로 뛰어나올 것이지 이러기냐?”
대학에 먼저 들어간 독고풍에게는 유난히 친절하셨던 어머니는 다시 교양이 철철 넘치는 목소리로 돌아오셨다.
“풍이가 오랜만에 왔네. 어머님은 잘 계시지? 시간 참 빠르지, 같은 고3일 때 대입 학부모 면담 때 뵙고 못 뵜네.”
“예, 저희 부모님 모두 잘 계세요. 어머님도 그 간 안녕하셨어요?”
“어쩜 이리 예의도 바르니. 점심은?”
“네 오늘 신촌에 나갈 일이 있어서 나중에 먹으려고요.”
“그래? 아쉽네. 천천히 얘기 나누고 가 그럼. “
어머니는 얼른 자리를 피해 주셨다. 죄송한 마음이 밀려왔다. 이제야 대학에 힘겹게 들어갔는데 공휴일에 대낮부터 술이나 마시고 있는 나도 아무리 힘겨운 작업을 하고 있다지만 한심해 보였다.
“아! 이게 다 모야? 돼지우리가 따로 없네. 게다가 너 술 마셨냐? 진짜로 소주 마시면서 작곡이라도 하는 거야?”
“어. 이거 하나 끝낸 거 같아.”
나는 더블데크에서 공테이프를 꺼내 녹음 방지 탭을 부러뜨리며 독고풍에게 건넸다.
“헐, 이게 뭐야?”
“뭐긴 뭐야 내 노래야.”
“정말로 노래를 만든 거야? 악보를 줘야지. 야 기껏 이거 주려고 바쁜 선배를 오라 가라 한 거냐?”
“키보드 맞고 있는 다영이나 박정운에게 악보 좀 그려달라고 말해줘. 같은 동기보단 선배가 시키면 그려줄 거 아니야. 아니면 네가 그려 주던지.”
“깡패가 따로 없구먼. 일단 알았어. 어디 드러나 보자.”
“지금은 안돼. 미안해 나 좀 자려고. 가면서 들어”
“야, 일단 알았어. 일 보고 집에 가서 드러나 볼게. 나 이제 가야겠다. ”
“응. 어서 가. 고맙다. 선배!”
독고풍도 오늘 급한 일이 있긴 있나 보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 방을 나서 빠른 걸음으로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아 참!. 백지수!”
“어?”
“노래 제목은 뭐야?”
“노래 제목? 음.. '태엽' "
“태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