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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by 피터팬신드롬

4월1일 AM 10 : 00, 내 방.


‘늦었다!! ’


오늘은 전공 기초과목인 '심리학 개론’ 수업이 아침부터 있는 날인데 지각하게 생겼다.


11시부터 1시까지 2시간 연속 강의인 수업이기도 했지만, 워낙 깐깐한 교수님의 수업이라서 심리적으로도 매우 갑갑한 과목이라고 정평이 나 있었다.


세수도 못 하고 허겁지겁 집을 나서 지하철을 타고, 강남역에 도착했다. 10시 40분.

20분 만에 가는 것은 불가능.


‘대출(대리출석)을 부탁할 수밖에….’


‘삐삐’를 이용해야 했다. 스쿨버스 정류장 앞 공중전화에서 삐삐를 쳤다. 경영학과 같은 과에서 제일 친한 ‘마일두’ 에게 부탁하기 위해 급히 숫자 메시지를 남겼다.


‘129129505’


아이구 아이구 SOS.


몸이 아프니 도와달라는 뜻인데, 대출을 해달라는 뜻으로 일두가 알아들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음성사서함에 음성을 남겨봤자 시간이 20분밖에 남지 않았기에 확인하려고 전화기까지 찾게 하는 건 친구로서 할 짓은 아니었다.


숫자 암호를 남기는 거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알아듣기를 기도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전송 장치가 있다면 바로 갈 수 있을 텐데…. 된장! ’


언젠가 TV 일체형 비디오로 빌려 본 ‘더 플라이’ 에서 봤는데, 거기에서 나오는 ‘전송 장치’로 나를 전세계 어느 곳이고 전송을 할 수 있다면 좋을텐데 생각했다.


‘TV 일체형 비디오’


그 비디오테이프에서 재생된 김현석 공연 실황을 본 이후부터 내게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거라면 깨어나게 되면 낭패였다.


다시 평범한 나, 무색무취 인간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너무나 끔찍한 일이었다.


그래서 어젯밤 늦게까지 잠들 수가 없었던 것.


어제 하제의누리 카페 사장님이 주신 비디오테이프는 집에 잘 있었다. 다시 비디오 플레이어에 넣고 재생하려고 했으나 화면에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고 노이즈만 가득했다.


집에 있는 몇 개 안 되는 비디오테이프를 뒤적거려 봤다. 혹시라도 비디오테이프에 나오는 어떤 사람의 능력이 내게 전이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백투더퓨처, 첩혈쌍웅, 풋루즈, 용쟁호투 그리고 EDS 교육 방송 녹화본 여러 개.


내가 집에 가지고 있었던 비디오테이프 모두 틀어볼 참이었다.


한참 영상을 살펴보다가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건가 싶었다.


백투터퓨처의 폭탄 맞은 것 같은 백발 머리를 한 박사가 나오면 난 핵물리학 박사의 지식을 얻어 천재가 될 테고,


첩혈쌍웅의 주윤발이 나온 걸 보면 여자를 위해 목숨도 버릴수 있는 용자가 될 수 있고,


풋루즈를 보게 되면 케빈 베이컨처럼 춤을 잘 추게 되고,


용쟁호투를 보게 되면 이소룡처럼 쿵푸 고수가 되는 것일까?


EDS 교육 방송 녹화본을 보게 되면…. 더 좋은 대학으로 편입이라도 할 수 있는 만큼 똑똑해지는건가?


‘말도 안 돼!’


잠에 들 수가 없어서 하게 되는 생각이라도 곱씹어 보니 현실성이 전혀 없었다.


그렇게 겨우 잠이 들었었다. 여러 차례 가위에 눌려 깼다가 다시 잠을 청하기를 반복하면서….


어쨌든. 그렇게 다음 날인 오늘 아침에 깨어난 것이었다.


‘가만 있어보자.’


그간의 일들이 분명히 꿈같지는 않았다. 며칠 전 하제의 누리라는 까페에서 받은 영상을, 정확히는 비디오클리너의 영상을 보고 난 후 부터 내게 특별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확신이 서진 않았다.

꿈이 아닌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 하더라도 그 능력을 오늘 변함없이 가지고 있는 건지는 모를 일이었다.


먼저 그 능력이 유효한지를 확인하려면 발현된 능력이 어떤 것인지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 김현석의 노래는 모두 알게 된 것 같았다.


설사 예전에 아예 모르는 곡이라도 김현석이 알고 있었다면 지금의 나도 알게 되는 것 같았다. 즉, 그의 지식체계가 나한테 고스란히 옮겨 온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가만히 있는 상태에서 저절로 기억이 떠오르진 않는 것 같았다.


두 번째, 내 노래에 감성이 생겼다.


이 부분은 말로 설명하긴 힘들었다.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사람들앞에서 관객들과 노래로 소통했던 경험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는 그런 경험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이 또한 지식체계가 넘어오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으로 추측했다.


세 번째 능력은 확실하진 않지만 ‘절대음감’이 생긴 것 같다.


어제 독고풍이 내게 문자를 했었다. 숫자암호가 무엇인지 어제 버스 안에서는 쉽게 알 수가 있어서 확인 후에 다시 들여다보진 않았었다. 집에 도착해 흐믓한 마음으로 문자를 다시 보는데 음성사서함에 음성이 한 개 있는 것을 발견했다. 수화기 너머로 독고풍의 목소리가 들렸다.


“백지수! 너가 그 정도로 노래를 잘할 줄은 몰랐어!”


웅성웅성 주위에 사람이 많은 듯하여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다음 말은 똑똑하게 들렸다.


“신기하네, 첫음을 듣지도 않고 김현석 노래의 원키를 그대로 부르다니! 절대음감이라도 생긴거야?”


‘내가? 정말로 절대음감?’


절대음감이란 ‘음’정을 거의 찰나에 기억하거나 알아내는 능력.


피아노에서 ‘가온 다’ 자리의 계이름 ‘도’는 절대적으로 음높이가 같다. 즉 세상에 하나밖에 없다는 소리다. 절대적으로 그 ‘도’가 기준을 잡고 있기에 이 세상 모든 음악에 질서가 생겨 난 것이다.


만명 중 한명꼴로 나온다고 하고 장님 가수 스티비원더가 그 능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니까 튜닝기나 피아노가 없어도 내가 알고 있는 음높이는 정확하게 세계 표준이란 말이었다.


이런 생각들에 골몰해 있는 동안 스쿨버스가 도착했다.


버스에 올라 회수권을 넣고 좌석을 잡으려고 두리번거리고 있었는데, 창가에 앉아있는 누군가가 아는 척을 했다.


“어? 이게 누구야? ‘백지’ 아니냐?”


“응? 강한선? ”


“너 재수한단 소리는 독고풍에게 들었던 것 같은데, 우리 대학교에 합격한 거야? 1년 동안 공부 열심히 했나 보네?”


역시 변하지 않았다. 항상 나를 깔보는 듯한 말투.

나를 ‘백지’라고 부르는 걸 보니 고등학교 때 나와 같은 반이었던 그가 맞았다.


강한선. 독고풍과 같이 고등학교 동창인 녀석이다.

이 녀석은 같은 고등학교라도 독고풍과는 완전히 다른 인간이었다. 독고풍은 서로 도와주고 싶은 인간이고, 강한선은 서로 보이지 않는 강한 선이 그어져 있어서 전혀 나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나와는 동떨어져 있는 인간. 이름처럼 말이다.


“응, 운이 좋았나봐. 너는 그동안 잘 지냈어?”


기분이 상했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고등학교 때부터 익숙한 상황이었다.


“운이 좋았다고? 넌 수능 보고 들어온 게 맞나 보구나. 우리 땐 학력고사로 주관식이 많았는데, 수능 특성상 찍은게 많이 맞았나 보네.…. 내가 운만 좋았더라도 서울대는 갈 수 있었을 텐데.”


“하하하 그러게….나 재수할 때 학력고사에서 수능으로 바뀌었지.”


“고생했어. 이리와 옆에 앉아라. 서서 더 고생하지 말고.”


“어, 그래. 고마워.”


옆에 앉고 보니 그는 슬림한 체구에 라이더 가죽 재킷에 말 구두를 신고, 하지만 선배의 것과 비슷한 전자기타 가방을 다리 사이에 끼고 있었다.


“너도 음악동아리인가 봐? ”


어색한 건 질색인 나는 눈에 보이는 걸 유추해 일단 아무말이나 물어봤다.


“응. 스파이크스. 록밴드 동아리야. '너도'라고 하는 걸 보니 백지도 음악동아리 하니? ”


“응. ‘메아리’에 들어갔어.”


“응? 아 그 학예회 동아리? 거긴 아무나 뽑지 않나? 열정만 있다면….”


‘이 새끼가…. ’


대놓고 무시하고 있었다. 나를 비웃을 뿐 아니라 동아리 전체를 깔보고 있었다. 그의 도발에 이번엔 참지 못하고 굳이 고개를 돌려 그의 눈을 들여다보는데, 그때였다.


1~2초도 걸리지 않고 순식간에 뇌리에 각인되고 있는 수치들. 눈에 보인다고 말할 순 없지만 뇌에서부터 내게 어떤 결과물들이 수치로 출력되고 있었다.


예전 고등학교 때라면 그가 무슨 말을 해도 관심도 없었을텐데, 찰나의 시간에 일어난 일이지만 강한선과 나의 공통된 주제가 ‘음악’ 이라는 게 인식되는 순간, 경쟁 심리가 강하게 나를 자극했고 나도 모르게 나 자신에게 어떤 명령을 내려 이러한 수치를 떠오르게 하는 것 같았다.


“백지! 기타는 칠줄 아는거야? 노래는 너 못하잖아….”


무시당하고 싶지 않았다. 더는 참지 않았다.


“실력이 되니까 뽑혔겠지? 그리고… 내 이름은 백지가 아니라 백지수야. 깡선.”


“어? ”


“….”


이후에는 한마디도 서로 하지 않았다. 내 눈빛과 말투에 불편한 심정이 느껴졌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강한선의 별명을 나도 얄궂게 되내여 불렀으니 강한선도 열 좀 받았을 것이다. 그동안 멀쩡한 이름을 멋대로 축약했으니 나도 응당 거기에 복수를 한 것이다.


‘속이 다 시원하네.’


어색하긴 했지만 불편하단 생각을 할 틈은 없었다. 이미 난 머릿속에 떠오른 그 수치에 대해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머리가 복잡해져있었다.


어느덧 버스는 학교에 도착했다.


내리기 전에 강한선에게 그래도 인사는 해야겠다는 생각에 꺼림직했지만 말을 걸었다.


“이번 우리 동아리 10주년이야. 기념 공연이 있을 텐데 초대를 하게 되면 꼭 와라.”


이 얼마나 대인배다운 행동인가, 내 스스로 대견하단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심정 같아서는 그냥 모른 척 쌩하고 무시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아 너네 10주년이구나? 근데 어떡하지? 우리도 록페스티발 준비해야 해서. 초대장이 나오면 보내기는 해봐 봐. 여러 장으로….”


“어, 어…. 그래 알았어. 또 보자. 깡선.”


얄미운 강한선에게 나만의 대응 방법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아무리 나를 무시하는 말을 해도 나는 그 답으로 끝에 ‘깡선’을 넣으니 즉각즉각 내 참을성에 대한 보상을 받는 것 같았다. 이제는 음악에 대한 것이라면 자존심이란게 생긴 것 같았다.


사실 ‘스파이크스’ 는 메아리동아리 보다 역사는 더 길다고 들었다. 가수도 배출한 동아리여서 그런지 학교에서 지원도 많이 받는다고 들었다. 그 가수가 누군지는 아직 확실하게는 모르겠지만.


심리학 수업은 이미 늦었고, 대출을 친구에게 부탁도 했으니, 나는 무작정 도서관에 있는 시청각 자료실로 향했다.


나에게 있어 절대음감은 그 능력만 있는 게 아닌 것 같았다. 강한선에게서 본 건, 그가 가지고 있는 능력치에 관한 것 같았으니까.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유명한 뮤지션들의 공연영상을 보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팝의 황제, 마이클잭슨 비디오 자료를 찾아냈다.


그의 2년 전 루마니아 공연 실황 자료를 열람 중.

하얀색 셔츠에 딱 달라붙는 검은 기지바지를 입고 수만 관중 앞에서 압도적인 퍼포먼스가 눈을 떼지 못하게 했다.

이 공연 영상 중 30분은 팬들이 실신, 기절해서 경호원의 손에 실려 나가는 장면이었다.


‘어? 헐 환장하겠네…. 또 보이기 시작하는군.’



내 능력은 진짜였다. 꿈도 아니었다.


‘재능 지수 200? 이게 지구 최고 뮤지션의 재능에 관한 수치군.’


마이클잭슨은 재능지수 외에 무대지수도 200을 찍었다. 팬들이 실신해서 실려 나가는 정도의 무대를 보여준다면 200이란 수치가 나오는가 보다.


‘대체 얼마나 카리스마가 있었길래….’


그 외에 감성, 역동, 영감 지수는 다른 뮤지션들의 시청각 자료를 보면서 대략 어떤 의미인지 파악이 되었다.


감성 지수는 재능에 자신의 진심을 잘 담아내느냐, 역동 지수는 전개되는 음악이 지루하지 않게 하는 강약 수치였고, 영감 지수는 같이 공연하는 세션이나 스테프들과의 교감에 관한 수치였다.


아까 버스에서 본 강한선의 수치는 마이클잭슨과 비교해보면 대략 3분의 1정도 밖에 안되었다.



‘그렇다면 나는?’


한참 생각을 했지만 강한선과 마이클잭슨 때처럼 수치가 보이지 않았다.


‘왜 안돼지?’


그 궁금증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래 맞아, 능력치를 알고 싶은 상대의 눈을 봐야해.’


나는 주위에 거울을 찾았다. 도서관 입구에 커다란 거울이 있었다. 비쳐진 나의 모습을 똑바로 응시했다.



강한선보다는 확실히 높았다. 모든 면에서…


이 정도면 만족해도 돼진 않나 싶다가도, 가슴 아래쪽이 뻐근해지는 느낌이었다. 마이클잭슨에 절반 수준도 못미쳤으니….


‘말도 안돼지, 팝의 황제를 아무리 김현석이라도 어떻게 따라가겠어….’


그리고는 생기는 감정은 ‘오기’였다.


‘김현석이 말했던 그 노력으로 나 또한 '뮤지션'이 되는거야!’


확실히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비디오테이프를 본 이후,


첫 번째, 김현석의 음악적 능력을 일부 갖게 되었으며,


두 번째, 나의 노래에 사람들을 홀릴 수 있는 감성을 실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다음이 가장 Show me the money 치트 키에 해당하는데, 내게 ‘절대음감’ 이 있다는 것, 그리고 나에게 그 절대음감은 내가 집중해서 본 대상의 음악적인 능력치가 구체적인 값으로 계산이 되어 모니터링되어 나타나기도 한다는 것.


난 비로서 안심할 수 있었다.


이 모든 능력은 오늘도 내일도 주욱, 계속 발휘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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