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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자 Aug 14. 2022

결혼 5년 차, 방학이 생각나는 시기

결혼 방학 #1

이런, 결혼을 결심한 적도 없는데 정신 차려보니 나는 결혼 5년 차이다.


2016년. 남자 친구와 1년 여행을 떠나겠다고 했더니 엄마는 결혼식을 하고 가라고 했다. 나는 같이 떠남이 같이 돌아옴을 의미하지 않으니 그건 너무 위험한 선택이라고 했고, 엄마는 그 위험을 줄이기 위해 결혼이란 제도가 도움이 될 것이니 혼인신고라도 하고 가라고 했다. 그 무렵 동생이 결혼해서 나는 운 좋게 신고도 하지 않고 한국을 떠날 수 있었다. 여행 중 여러 차례 ‘아, 여기까지인가?’, ‘이게 우리의 끝일까?’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을 경험했지만 나와 그는 2017년 초 함께 한국으로 돌아왔다.


다시 결혼식 이야기가 물망에 올랐고, 나는 내 에너지를 이 아니라 에 쏟겠다고 선포했다. 열심히 축의금을 뿌리셨던 엄마는 아쉬움이 크셨지만, 가진 것도 없으면서 결혼식은커녕 부모님 도움도 안 받겠다, 혼인신고도 안 하겠다. 하지만 이제부터 부모님 말고 남자 친구랑 살겠다는 제 멋대로인 딸내미를 어쩔 수는 없으셨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그 무렵 부모님도, 동생도, 그리고 주변 사람들도 내가 평생 혼자 제멋대로 살 것이라 생각했다는 이야기를 했던 걸 보면 아마도 나의 이미지는 방랑자와 망나니 사이 어디쯤 존재했나 보다.


집을 구하려고 보니 예정에 없던 혼인신고가 다시 화두에 올랐다. 엄마가 이야기할 땐 그 필요성을 귓등으로 들었지만, 대출을 받으려 보니 신혼부부 전세대출의 낮은 이자율은 아직까지 들었던 어떤 혼인신고의 필요성보다 설득력을 가졌다. 그렇게 쉽게, 아무런 미래도 약속하지 않은 채, 단지 다달이 나갈 비용을 줄여보겠다는 실용성에 나와 그는 서류에 도장을 찍고 부모님 도장을 빌려 찍고, 구청에 제출했다. 구청에서는 태극기를 선물로 주었다. 집에 돌아오니 엄마가 좋아했다. 나는 딱히 노력한 바 없이 애국자, 효녀가 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제도에 희생당하지 않고 이용해 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나의 기혼 상태가 시작되었다.


그와 함께 아무 연고도 없는 파주 운정에 자리를 잡았다. 여기저기 기웃대며 이 사람 추천, 저 그룹 잡담, 온라인 소문을 통해 정보를 얻어 살펴보던 집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소위 가성비 갑이라 할 만한 다락 있는 이층 집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대출 때문에 한 혼인신고였으나 양가를 왔다 갔다 하며 부부이자 가족으로 대우받고, 역할이 부여되고, 남들이 그렇게 부르고 보니 나는 정작 그를 생전 여보, 자기, 남편이라는 호칭으로 불러 본 적 없으면서도 5년째 운정에서 유부처럼 살고 있다. 아니 아마도 나는 알게 모르게 단촛물이 배어 유부처럼"이 아니라 유부가 되어버린 듯하다. 가끔 뭔가 이상하고 어색한, 혹은 무언가를 놓친듯한 억울한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후회하진 않는다. 나는 내가 한 선택들을 기꺼이 내 삶으로 받아들였고 만족스럽게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딱 하나, 삼십 대가 가기 전 해 보고 싶은 게 생각났다. 바로 혼자 살기이다. 20대 내내 학교 핑계, 여행 핑계로  집 밖의 삶을 살다 20대 후반 가난한 창업가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부모님이 계신 본가로 돌아와 그와 여행을 떠날 때까지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생각해 보니 나의 30대는 Old에서 New로 구성이 바뀌었을 뿐 늘 가족과 함께하는 삶이었다.


나는 내가 얼마나 독립적이었는지, 독립적일 수 있는지, 그리고 내가 혼자 있을 때와 누군가와 함께 할 때 어떻게 다른지 안다고 생각했는데 불현듯 내가 기억하는 내가 아직 내 안에 남아있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한동안 쓸 일 없던 그 면모들은 어느덧 기억에만 남아있고 실제 기능역량에서는 사라져 버린 것은 아닐까? 그 면모는 20대 내가 가진 가장 큰 자부심이자 차별화 요소였던 것 같은데 말이다. 더 늦기 전에 확인해 봐야 한다. 그러려면 혼자가 되어 보아야 한다.  


내가 혼자 살기를 위해 생각해 낸 개념은 이혼이나 가출이 아니라 방학이었다. 결혼 방학! 예~ 5년쯤 살았으니 5개월쯤 가지면 좋을 것 같았다. 나는 그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 방학이 필요한 시기가 온 것 같으니 바닷가 근처에 세컨드 홈을 얻어 몇 달만 혼자 살아 보고 싶다고 그러다가 바닷가 삶이 괜찮으면 근처에 땅을 사고 집을 지으면 어떻겠냐고. 그가 내 말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 마음 그대로 이해하진 않았으리라는 것이 자명하지만 내 마음 같은 그의 마음으로 이해했는지, 연민의 마음으로 이해했는지, 자선의 마음으로 이해했는지, 포기의 마음으로 이해했는지, 혹은 그저 동상이몽으로 그러자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우리는 세컨드 홈나의 2022년 하반기 독립생활 2022년 하나의 과제로 삼고 진행하기로 했다. 이것이 결혼 방학 프로젝트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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