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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자 Aug 21. 2022

사랑하지만 혼자 살고 싶어

결혼 방학 #2

“속초에 가서 살아보려고요.”

“이사 가시는 거예요?”

“흠.. 이사는 아니고 잠깐 방학 같은 거예요.”

“남편 하고 같이?”

“같이 가긴 할 건데, 그는 곧 올라오고 살긴 혼자 살아보려고요.”

“왜요? 무슨 일 있어요?”

“그냥 혼자 살아보고 싶어서… 방학을 가지고 싶다고 했어요.”

“아니, 그럴 거면 결혼을 왜 했어요?”

“… 같이 살고 싶어서?”


속초에 집 계약을 하고 한동안 내게 다가올 방학을 자랑하고 다녔던 것 같다. 한번 혼자 살아보련다는 말에 누군가는 부럽다고 했고, 누군가는 용감하다고 했고, 누군가는 그럴 거면 결혼을 왜 했냐고 했다.

'으응?'

 말을 들은 순간 내가 결혼을  , 혹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과 혼자 살아 보고 싶은 것이 상충하는 아이디어인가에 어리둥절했지만, 평소 같으면 쉬이 꺼냈을 반박 소명 혹은 말꼬리 잡기를 하지 않았다.  시작되어야  일이 있다는 상황의 이슈도 있었겠지만  말이 묘하게 공격의 말이 아니라 방어의 말로 들렸기 때문이다. 나는 아마도 평소 그녀 자유 시간을 원하지만, , 아이, 가족이라는 소중하지만 가볍지만은 않은 책임으로부터 떨어질 여유가 없어 보인다고 느껴 왔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말은  머릿속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어 나는  혼자 살고 싶은가에 대한 , 타당성을 찾아 헤매는 여정을 시작했다.


과연 나는, 여유가 있는 사람일까? 여유를 만들고 싶은 사람일까? 여유가 중요한 사람일까?

사랑과 독립에는 어떤 관계성이 있을까?


누구라도 자신의 환경을 뛰어넘는 선택을 하기란 쉽지 않다. 그건 꽤 큰 용기와 도전 정신을 요하는 일이니까. 나는 스스로 학습된 소소한 도전 정신과 용기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내 삶에서 환경을 넘을 정도의  용기와 도전 정신을 쓴 적은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그랬다면 당연히 따라왔을 커다란 실패와 좌절, 그럴 통한 성장과 배움이 딱히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즉, 나는 비비고 들어갈 여지가 있는 만큼의 범위에서 선택을 하며 영웅이나 개척자가 아닌, 범인으로 살아왔다. 물론 가끔은 아주 안전한 경계선에서 반보, 한보 정도 어느 쪽으로 더 갔을 수는 있을 것 같다. 그건 나의 반골기질의 반영이기도 하고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인용구에 대한 믿음, 혹은 강박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결혼 생활에는 칼린 지브란이 <예언자>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여백이 있다. 서로 사랑하되 구속하지 않는, 사랑이 각자의 영혼에서 충만하게 자리하고 그로 인해 함께 행복하고 즐겁고 성장의 동력이 되지만, 서로에게 그늘이 되어 성장을 막지는 않을 정도의 거리가 있는 사이이길 바란다.


살다 보니 내가 살고 싶은 삶이 아니라 쉬운 삶을 살고 있다고 느낄 때가 있다. 적당히 서로에게 무언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상대의 일상을 관리하며, 머리로는 바람직하거나 최선이라고 느끼지 않는 관습을 따르고 있음이 인지되는 순간들 말이다. 나는 결혼 제도에 대한 겸허하게 수용하는 자세 없이 그저 삶의 편의, 나의 욕망에 따라 혼인 신고를 하고 그와 함께 하는 삶을 시작했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에 따라 어느덧 자연스럽게 세상이 요구하는 부부의 프레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삶을 살게 된 듯하다. 나는 내가 어디 하나 잘못된 선택을 했다거나 후회한다거나 하진 않는다. 그저 정신 차려보니 약간은 나의 이상에서 멀어져 있구나 느낀 일상을 가능하다면 그 가까이에 가져다 놓고 싶은 것뿐이다. 익숙함을 낯설게 보고, 편한 맛에 그에게 기댄 어깨를 들어 다시 한번 그와 그저 한 방향을 보는 것이 아닌 마주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말이다.


이것이 나의 사랑의 방식이다. 방랑 여행자의 부캐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랑하는 나를 위하여, 그리고 자유롭고 재주 많은 상상 속의 친구의 부캐를 가지고 살아가는 나만큼 사랑하는 그를 위하여. 각자가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하여 잠시 정비하고, 설렘을 가지고 서로를 볼 수 있게 할 기회를 만들기 위한 작은 도전을 해 보는 것 말이다. 물론 이 프로젝트의 결말이 나의 이상에 가까워질지, 혹은 누군가의 우려에 가까워질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어디에 이르든 그 결과가 만들어지는데 적어도 절반은 나의 선택에 의한 영향이고 나의 책임임을 인지하고는 있으니 지금은 그 정도면 된 듯하다.  


집을 구했고, 취향을 담아 공간을 꾸몄다. 그리고, 우리의 준비를 여유로운 마음으로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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