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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자 Oct 09. 2022

혼자만의 순간들

결혼 방학 #12

하나. 떨어져 살면서 외로운 순간


그를 파주에 두고 홀로 속초로 돌아와 한 밤을 자고 일어나니 그에게 메일이 와 있었다. 그의 메일은 “만약 누군가가 떨어져 살면서 가장 외로운 순간을 꼽아보라고 하면 같이 있다가 떨어진 첫날이라고 말할 것 같아.”로 시작해 나를 버스 정류장에 데려다준 후 그가 보낸 하루의 감정에 대해 적혀 있었다. 그의 메일 덕에 나도 속초로 돌아와 내가 느낀 선명한 적적함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떨어져 살면서 두 번째로 외로운 순간이 무엇인지 경험하게 되었다. 인후통이었다. 수영장에서 귀에 물이 들어간 게 원인 일 수도 혹은 피로 같은 다른 이유가 존재할 듯도 했다. 처음에는 귀 속이 아펐는데 이후 두통이 이어지더니, 밤이 되자 귀 밑에 열이 나기 시작했다. 이틀을 통증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할 만큼 아팠다. 이 고통과 관련해서 사실 그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없다. 그것은 그가 파주가 아니라 속초에 있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저 야밤에 혼자 진통제를 사러 나가는 일을 대신해 주거나, 위로의 말을 건네는 정도였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혼자인 게 서글펐다. 고통을 같이 겪어 주는 것 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내 어려움을 알아줄 사람이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내가 이렇게 괴로워하고 있음에도 내 고통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라는 사실에 대한 인지가 참으로 외롭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굳이 외로움을 줄이고자 그에게 카톡 이모티콘으로 아프다고 우는 소릴했다. 그것만으로도 퍽 효과가 있었다.


둘. 혼자여서 좋지만 아쉬운 순간

 

놀기로 한 수요일. 놀자고 마음은 먹었지만 함께 일하는 S사의 참여자 선발 건, D사의 행정처리 건으로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은 날이었던지라 새벽부터 눈이 떠졌다. 머릿속에는 처리해야 할 일들이 돌아다녔고, 시계를 보니 5시 반이었다. 핸드폰을 열어보니 오전 5시 15분에 그에게 메일이 와 있다. 간만이 일찍 잠들었다가 중간에 깨 방황하는 새벽을 보내고 있는 모양이다. 어쩌면 메일로 하고 싶은 말들을 모아놓고는 그새 편히 잠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따로 떨어져 지내는 삶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이런 것이다. 온전히 자신의 뜻대로 편집한 나의 세상, 인식, 하루를 일방적으로 상대에게 보내는 메일이라는 방식으로 소통하는 것 말이다. 그의 하루, 생각이 담긴 메일은 이른 새벽부터 내게 에너지를 주는 듯 했다. 그가 보내고자 한 것이 무엇이든 나는 그것을 사랑으로 받은 것이다. 그래서 일찍 일어난 김에 일출을 보러 다녀오기로 했다. 20분을 걸어 속초 해변에 이르러 해가 수면 위로 올라서는 것을 보고 섰다가 다시 돌아왔다. 하늘이 파스텔톤이었다. 청명한 새파란 하늘로 해가 뜨는 것도 멋있지만 파스텔톤으로 이렇게 하늘을 물들이며 떠오르는 날은 왠지 날씨에서 갓 여인의 향을 내는 해맑은 소녀의 느낌을 받는다. 바닷가 앞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일출을 기다리며 쑥덕이는 파자마 차림의 커플이 잠깐 부러웠다. 그에게 일출 사진을 보낼까 하다 그만두었다. 왠지 지금 쯤은 정말 잠이 들었을 것 같으니 오늘 하루를 모아 메일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낮 12시, 나는 설악산 권금성에 바위에 걸터앉아 그곳에 온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아기들을 데려온 젊은 부부, 부모님을 모시고 온 사람들, 회사나 동아리 모임으로 보이는 그룹의 사람들, 관광 온 어르신들, 서넛 정도의 그룹을 이룬 외국인들. 사진을 찍거나 풍광을 구경하거나 둘러앉아 수다를 떨거나 간식을 먹거나 하고 있었다. 설악산은 여전히 푸르렀지만 사람들은 단풍의 기미를 느끼는지 2~3주 후면 아주 이뻐질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고, 내려가서는 중앙시장에 가서 닭강정을 사 먹자는 소리를 했다. 멋진 풍광도 좋았지만 사람들이 하는 말에서 더 큰 흥미를 느꼈다. 한참은 앉아 귓동냥을 하다 소공원으로 내려왔다. 이리저리 그 주변을 방황하다 봐 둔 제일 마음에 드는 한 카페에 들어가 앉았다. 오전에 말만 하고 처리하지 못한 일 몇 개를 처리하고, 그에게 메일을 쓰기 시작했다. 혼자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행동이었지만, 이 햇살을, 여유를, 행복함을 누군가는 알아주고 같이 경험했으면 하는 갈증이 일었다. 나는 그것들들을 멋대로 편집해 메일이 담아 그에게 보냈다. 그가 받은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저녁 6시 무렵. 집으로 돌아가기 전 커피콩을 사러 영랑호 근처 카페에 들렀다. 속초에서 시도했던 중 이곳이 가장 마음에 드는 커피콩과 더치를 구매할 수 있는 곳이지만, 집에서 가깝지 않아 쉬이 들리지 못하고 일주일 넘게 밖에서 마시는 커피로 카페인 섭취를 하던 참이었다. 커피콩을 사서 나오니 영랑호 뒤편으로 병풍처럼 들어선 설악산을 넘어가는 해가 보였다. 아침에는 해돋이 바다 금물결을 보고, 이렇게 저녁에는 해넘이 호수 금물결을 보다니, 게다가 하루새 산에도 다녀오고 틈틈이 해야 할 일처리도 다 했다니 오늘 참 여유로우면서 부지런했지 싶다. 혼자였기에 가능했겠지만 내 여유와 부지런을 나만 아는 게 조금은 아쉬웠다. 나는 자유로운 행동과 감정의 모순 속에서 퍽 Essay적인 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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