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혼자 떠나는 여행, 공항 편

by 알깨는 아줌마

불과 1시간 전, 누구도 신나지 않았다고 심란하다고 말한 오만방자함을 사과드립니다!


공항에 도착하고 라운지가 초고속으로 들어왔다. 다들 일하고 학교 다닐 때 떠나니 이렇게 쾌적할 수가 없다. 머신에서 커피를 내려서 활주로가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떠날 때 한 30도 각도로 날아오르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한 3대쯤 보내는 사이 심란함은 신남으로 바뀌었다. 왜 자꾸 입꼬리가 올라가는 지.


아이패드를 꺼내서 여행 중에 무슨 책을 읽을까 밀리의 서재를 열었다. 첫째가 좋아하는 작가의 ‘핍의 살인사건 안내서’? 며칠 전에 등교 전 소파에서 이 작가가 쓴 ‘Not Quiet Dead Yet.’을 읽으면서 엉엉 울던 첫째가 생각난다. “주인공이 일주일 뒤에 죽게 되는데, 누가 자기를 죽이려고 했는지 그 비밀을 파헤치려 하고 서로 좋아하는 애가 있는데 그 친구가 알고 죽게 해 주려고 자기가 그랬다고 거짓말하고, 그런데 그 범인이 그 애 아빠였고, 나중에 편지를 남겼는데 내용이… 흑흑흑 눈물 나서 못 말하겠어.” 무슨 소리지 도통 알아듣지 못하겠는 설명을 하다가 울면서 가버렸다. 그런 류의 소설을 좋아하진 않지만 그날 바로 한국에서 번역본은 주문했다. 첫째가 엄청 신나 했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같이 읽거나 좋아하는 음악을 같이 들을 수 있다는 데서 오는 그.. 뭐랄까. 너와 내가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따뜻함, 내편 같은 든든함, 보이지 감정조차 공유할 수 있을 것 같은,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그 기분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줄 달린 이어폰으로 나눠 끼고 듣던 그 시간이 떠올랐다. 이렇게 아이가 자라는 걸 보면서 나도 다시 한번 그 시간들을 경험하게 되는 게 아닌가 싶다. ‘핍의 살인사건 안내서‘를 읽으면서 말이지.


내가 왜 신이 나는지 생각해 본다. 바로 윗 단락에 답이 있다. 저 어느 날 아침의 장면을 떠올리는데 여유가 충분했다. 천천히 자연스러운 속도대로 떠올리고 생각이 흘러가는대로 써내려갈 수 있었다. 남편이 남친일 때 이어폰 나눠껴고 앉아있던 잔디밭까지 다녀올 수 있었으니 말이다. 뜬금없이 멀리 갔다왔다.


나에게 여행은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어서는 떠나는 것은 아닌 듯 싶다. 우리 동네 사람들이 다들 겨울 여행 계획을 이야기하는 요즘, 나는 아직 계획 없다. 일단 이 동네 가족들의 겨울 방학 계획을 유심히 듣는다. 누가 떠나고 누가 머무는지를 파악한다. 내가 이 마을 안에서 아무런, 정말 아~무런 이벤트 없이 고요하게 지낼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된다면 굳이 떠나야 할 이유가 없어진다. 여행지에 가서 내가 누리고 싶은 경험이 이곳에 이미 있기 때문이다. 평소에 하던 것들을 시간에 쫓기지 않고 할 수 있고 외부의 자극 없이 내 안에서 올라오는 것들로만 채울 수 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나에게는 여행의 이유인 것 같다.


내가 지금 입꼬리가 씩 올라가는 이유도 시간에 끊김이 없어서 인 것 같다. “엄마!”를 시도때도 없이 불리지 않아도 되다니! 컴퓨터 앞에 앉아 있지만 1시간 뒤에는 점심 준비를 시작해야 하고 트레드밀에서 뛰고 있지만 30분 뒤에는 수영픽업을 가야 하고, 그런 일상에서 잠시 벗어났다!


지금부터 3박 4일! 나는 아무런 방해 없이 내 시간을 온전하게 누릴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신이 난다.


너희에게로 돌아갈 땐 더 신이 날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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