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버리네.
설마, 아직 잠이 덜 깬 눈을 비비며 처음에 나는 내 눈을 믿지 않았다.
설마, 산에 사는 개라니. 설마.
늘 그랬다. 회사를 쉬는 날 아침이면 나는 늘 아침산책을 했다. 장소는 우리 집 근처 산이고, 산 입구까지 걸어서 10분도 채 안 걸린다. 산은 동네 동산이 아니라 꽤 크다. 내가 사는 서울에서 경기도에 있는 지역까지 이어져 있다니까.
그날도 나는 어김없이 아침에 산책을 나갔다. 이제 막 떠오른 지 얼마 안 된 반가운 해, 싸늘한 겨울공기.
산은 눈에 보이는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온갖 것들을 품고 있다. 뺨에 닿는 공기는 차갑고, 바람에서는 풀 냄새가 난다. 들려오는 물소리에 나는 눈을 감고 크게 심호흡을 한다. 양달, 응달, 잎이 있거나 없는 나뭇가지, 거미줄, 청설모, 딱따구리, 오리. 날 것의, 단순하고 자유로우며 모두 각자 살아가고 있다.
나의 산책길은 갈 때마다 똑같다. 호수가 있는 지점까지 갔다가 호수 한 바퀴를 돈 다음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되돌아가는 길 중간에 좋아하는 물가에 들러 잠시 앉아 쉰다. 출발할 때 따끈따끈했던 캔 커피는 이미 식어버렸지만 맛있게 마신다. 빈 캔은 쓰레기장에 가서 버려야하니까 작은 화원을 지나가야한다. 지금은 꽃은 다 져서 몇 송이 없고 땅에 흙이 안보일정도로 낙엽이 잔뜩 깔려있는데, 거기를 지나가다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개?!
저쪽에 개 두 마리가 킁킁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개는 둘 다 같은 품종이었는데 하얀색이었을 털 색깔이 씻지를 못해 꾀죄죄했다. 몇 살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덜 자란 개가 분명했다. 딱 봐도 어린애들이다. 똥개인가? 산에서 종종 길고양이는 봤지만 개는 또 처음이라 나는 가던 걸음을 멈췄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 같은 시대에 ‘길고양이’는 있어도 ‘길개’는 없지 않은 가. 여기 근처 어딘가에 주인이 있나 싶어 주위를 살폈지만 누구 하나 없었다. 개 두 마리 다 목줄도 없었고. 야! 야! 부르니, 돌아보기는커녕 먹이를 찾는지 흙냄새를 맡는지 내 알바 아니지만 저들 일 하기에 바쁘다. 동네 개가 마실 나왔나? 나한테 별 관심을 안보여주니까 나도 내 갈길 갔다.
그런데.
그런데 그날 봤던 얘들을 다른 날 또 보고, 또 보고, 참 별일이다 싶었다. 가까이 다가가 만져보고 싶었지만 살짝 무섭기도 하거니와 걔들도 나를 경계하는 눈치라 다가가지는 않았다. 그래도 나를 빤히 보기에, 배고픈 가? 다음에 오면 집에 있는 찐 고구마라도 줄까? 주면 먹을라나? 개는 고구마 먹어도 되나? 돌아가면서 이런저런 고민도 했었다. 그러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산에 사는 야생 개라니 믿을 수가 없어서, 혹시 나한테만 보이나? 죽은 개 영혼, 뭐, 그런 거 아니야? 잠깐 머리가 고장 날 뻔도 했다.
오늘은 집에 있는 찐 고구마를 가져가야지 했다가, 잠이 덜 깼는지 깜빡하고 빈손으로 나와 버렸다. 산 출입구에 도착해서야 생각났고, 오늘도 볼 수 있을까? 그래도 내심 기대를 했다. 똑같은 산책길, 똑같은 행위, 나는 다 마시고 없는 커피 캔을 손에 들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일어나 그 길을 따라 쭉 걷는데 누군가 버린 빈 소주병이 눈에 띄었다. 뚜껑 닫힌 소주병 두 병이 나란히 참 가지런하게도 버려져있는데 절로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누가 이런 짓을, 툴툴대며 줍고는 허리를 펴니까 저쪽에 비닐봉지가 또 버려져있다.
진짜 너무하네.
어떻게 이런 짓을. 욕이 나왔지만 주우러가려면 가던 방향을 틀어야하니 귀찮았고 또 나는 길거리에서 쓰레기를 주울 만큼 도덕적인 사람이 아니다. 아까 그 소주병은 어쩐지 나도 모르게 했고.
내가 왜? 고개를 팩 돌린다. 여기 환경 지킴인지 뭔지 따로 있을 텐데 내가 굳이 왜? 속으로 구시렁구시렁 댔지만 이미 내 손은 비닐봉지를 줍고 있었다.
“누가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다 큰 어른들이. 쯧쯧.”
덜 자랐어. 자라다 말았어. 한 번 줍고 나니 여기저기 쓰레기들이 어째 그리 잘 보이던지 눈에 확확 띄었다. 자주 왔다 갔다 하던 길이었는데 오늘따라 유난히 이런 것인지, 아니면 내가 그동안 모르고 지나갔었는지 참, 나, 원. 어쩐지 열 받는다. 저 앞에 있는 쓰레기장을 노려보며 열 손가락에 힘을 바짝 주었다. 정체모를 빨간 양념이 묻은 휴지며 소주병이 두 병, 비닐봉지에 내가 마신 빈 깡통, 또 뭐가 많기도 많다. 안 그래도 날이 추운데 손가락 열 개로 다 움켜쥐려니 손가락이 다 아프다.
“손가락장갑 하나 사야지.”
벙어리장갑은 있지만, 이제부터는 손가락장갑이 있어야겠다. 쓰레기를 버리고 그 녀석들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화원을 나와 가던 길을 이어 가려는데 컹! 컹! 녀석들이 저쪽 산비탈에 있었다. 한 마리는 나를 빤히 보고만 있었고, 한 마리는 무슨 할 말이 있는지 열심히 짖어대었다. 저긴 어떻게 올라갔대? 방향을 틀어 담장 가까이 가 섰다. 고개를 쳐들고는, 뭔데? 왜 짖어대는데? 짖어대는 꼴을 보니 반가워서는 아니기에 눈을 반만 뜨고 보았다.
내가 그렇게 불러댈 때는 들은 척도 안하더니 오늘은 또 왜 아는 척이야?
여기서 이러고 서로 대치해봤자 더 이상은 시간 낭비라 발걸음을 뗐다. 구름, 구름, 구름, 얼룩무늬 하늘. 아주머니 하나가 열심히 팔다리를 흔들며, 나랑은 반대 방향으로 간다.
“엄마, 산에 개가 산다?”
이제 막 일어난 엄마를 보자마자 개 얘기를 했더니 엄마는 별로 놀라지도 않는다. 그 반응을 보고, 알고 있었어? 물었더니 작년부터 있었단다. 내가 본 얘들은 아직 덜 자란 얘들이었다니까 새끼를 낳았나 보다, 엄마랑 나랑 추측한다.
“버림받은 거야?”
“그런 거지.”
사람들이 키우다가 토끼도 버리는데 개들이 토끼 다 잡아먹었어. 엄마는 그렇게 말한다. 이 아줌마가 아직 잠이 덜 깼나? 무슨 늑대개도 아니고. 토끼를 잡아먹는 개는 난생 처음 들어본다. 보지만,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도 외할머니네 사는 개 ‘메리’가 닭을 잡아먹었다고 했던 사람이기에 그냥 그런가 보다 한다. 툭 하면 다 잡아먹었대.
“다 버리네.”
다들 참 너무하다. 필요 없다고 다 산에 갖다버리다니. 아무리 산이 온갖 것을 품어준다지만 이건 아니다. 아무래도 다음에 가는 산책에는 주머니에 비닐봉지 하나 챙겨가야겠다. 가면, 나는 또 여기저기 있는 쓰레기가 눈에 보일 테고, 투덜투덜 줍고 있을 테니까. 너무하네, 너무하네, 이러면서.
그리고 아는 언니가 동물 미용사인데 동물에 대하여 해박하다. 그래서 질문 하나 해야겠다. 이제 날이 더 추워지면 산에 먹을 게 하나도 없을 텐데 개들이 걱정이다. 산에는 청설모도 있고 오리도 있고 딱따구리도 있지마는 설마 진짜 엄마 말이 맞을까싶다. 정말이지. 나는 걔네들이 서로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다.
“언니, 개한테 찐 고구마 줘도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