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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령 Oct 29. 2019

요가하는 해파리 16

참 잘 했어요!    

시작은 “코딱지들 안녕~?”이었다. 그러니까, 아침에 출근 준비하면서 틀어 놓은 라디오에서 그랬는데 “코딱지들 안녕?” 이라는 인사를 알면 30대라고 했다. 왜냐하면 우리 어릴 적 종이접기 프로그램으로 인기가 좋았던 김영만 아저씨를 아는 거라면서 말이다. 그래서 그게 뭐? 오늘이 일요일인데도 불구하고 회사에 가야하는 처지라 기분이 별로라 라디오를 째려본다. 요즘 꼭 그렇다. 나이 얘기만 나오면 안 그러고 싶은데 나도 모르게 까칠하게 나오고 만다. 창문 밑, 라디오는 전체가 까맣고 구식이고 아침 햇살을 받아 뽀얀 먼지가 보인다.


이어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얼굴에 파운데이션을 바르는데, 어떤 30대 워킹맘의 사연 하나를 들려준다. 집안일하랴 일하랴 하루하루 사느라 지쳐버린 워킹맘이 김영만 아저씨 종이접기 교실 간 것이다. 거기서 자기 어릴 때를 추억도 할 겸 온전히 자기한테만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한참 종이를 착착 접고 있는데, 아저씨가 다가와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이다.


  “우리 코딱지 이제는 잘 하네?”


여기서 나는 울컥 터지고 만다. 아저씨가 해 주는 칭찬 한마디가 그렇게 위로가 될 수 없었다. 예전에는 서툴러서 잘 못했던 종이접기를, 이제는 척척 해낼 수 있을 만큼 발전했다며 칭찬을 받을 수 있다니 말이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은 화장을 하다 말아 완성이 덜 됐다. 신경 써서 마저 해야 하는 부분이 많은데, 나는 이어서 하지 못하고 멍하니 얼굴을 본다. 곧 출근이라 뭉그적거릴 시간이 없는데. 울면 안 돼. 스스로를 다그치지만 의지에 반대하여 눈에 눈물이 꽉 찬다. 그렁그렁하니.


아저씨 말이 맞다. 아저씨 말대로 나는 이제 스스로 잘 하는 게 많아졌다. 종이접기는 물론이고, 신발 끈도 묶을 줄도 알고, 엄마가 깨워주지 않아도 아침에 알아서 빨딱 일어난다. 양파라면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났었는데 이제는 균형 있고 골고루 식사하려고 늘 관심을 갖는다. 가나다라, 하나둘셋넷, ABCD도 몰랐는데 이제는 책도 읽고 덧셈뺄셈도 하고 유창하게는 아니더라도 영어로 인사정도는 웃으면서 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주변을 정리정돈하고 항상 청결을 유지한다. 화장실에서 큰일을 보고도 뒤처리 하나 제대로 못하던 내가, 점점 엄마 없이도 여러 가지를 할 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데 이렇게 발전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왜 내가 사는 모양이 예전보다 더 찌그러진 것만 같을까? 나는 쓸모가 있는 사람인지 자꾸만 의심하게 된다. 나는 분명 대단해지고 있는데 어쩐지 살아가는 모양은 하나도 멋지지가 않다. 살아평생 하루하루를 버티는 기분이었던 때가 태반이었고 거의 매일이 불안했다. 그럴 때가 많았다. 모든 일이 잘 될 것만 같다가도 언젠가는 와르르 무너질까봐 불쑥 겁이 나는 때가 말이다. 나는 잘 할 수 있는 게 이렇게나 많아졌는데도.


  오늘 하루가 무사히 지나가길.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에 종종 이렇게 속으로 말한다. 바짝 긴장해서는 적어도 나쁜 일만큼은 일어나지 말라고 몸을 사리는 것이다. 그렇게 평소를 보내고, 빨리 자야지, 얼른 하루를 끝내고 머리를 비우고 싶어 한다. 이런 식으로 하루가 가고 또 하루가 가고 닥치는 대로 진행하여 빨리빨리 시간을 소진하려는 셈이다.


  내 인생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어쩌다 이렇게 자랐을까. 피하고, 숨고, 도망가고, 내가 봐도 참 나약하니 볼품없다. 라디오에서는 Elton Jhon이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을 불러주고 있다. 영어라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는데도 나는 왠지 알아들은 기분이다. 눈물이 줄줄 흐른다.


  나, 이대로 괜찮은 걸까?


비련의 여주인공 행세로 관심 받자는 얘기가 아니다. 아니지만, 나는 누가 나를 좀 불쌍하게 봐줬으면 좋겠다. 아주, 아주 조금만 안타깝게 여겨줘서 꼭 안아줬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이렇게나 잘 컸는데 너를 괴롭히는 못된 것들 때문에 네가 움츠러들고 말았구나, 다 걔네들 때문이야, 절대 네 탓이 아니야.” 빈말이라도 나 듣기 좋은 소리 잔뜩 해 주면서.


  “에이 씨.”


울면 화장 다 지워지는데. 휴지로 벌게진 눈을 꾹꾹 누른다. 꾹꾹, 꾹꾹, 몇 번이나. 진짜 아침부터 사람 울리고 난리네. 입이 잔뜩 나와서는 인상이란 인상은 있는 대로 구기고 만다. 라디오를 끄고, 나갈 채비를 다 하고 마지막으로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온다. 오늘은 일요일이라 아침 지하철에는 사람이 적다. 차갑고 딱딱한 은색 의자.


아~ 정말이지 칭찬 받고 싶다. 별 거 아닌 시시한 일일지라도 내가 무언가를 하면 누가 나 좀 칭찬해줬으면 좋겠단 말이다!!!


  “참 잘 했어요!”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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