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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버몬트-뉴욕 여행 6

2020년에 돌아본 2013년 여행

by Blue Bird
247D8F48524214201D Boston College 기숙사



여행지에서 식당을 찾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식당에는 여러 종류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여러 종류라고 말하는 뜻은 한식, 일식, 양식... 이런 게 아니다. 맛있지만 비싼 식당, 맛도 없으면서 비싼 식당, 맛없고 값싼 식당, 맛있으면서도 값싼 식당.. 현지에 사는 사람들이 잘 아는 식당이 바로 마지막에 언급한, 맛있으면서도 값싼 식당이다. 우리가 여행지에서 찾는 식당도 바로 이런 곳이다. 하지만 그런 식당을 찾기란 매우 어렵다.


우리는 저녁을 먹으러 보스턴까지 멀리 갈 시간도, 에너지도 없었다. 12시간 항공여행에 시달렸고 오늘 먹은 것이라곤 코스코 피자뿐이다. 그래서 저녁은 좀 맛있는 걸로 먹고 싶은데.. 하는 생각으로 주변의 음식점을 찾았다. B&B에서 아주 가까운 곳이 뉴튼센터였다. 가운데 공공 주차장이 크게 있었고 주변에 월그린, 커피숍, 주유소, 그리고 식당이 몇 군데 있었다. '시푸드'라고 요란하게 쓰여있는 중국식당 앞에서 잠시 기웃거리며 메뉴를 살펴봤는데 별로 내키지 않았다. 그리곤 쓱~ 지나가다 Johnny's (johnnysluncheonette)라는 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출입문이 작아서 테이블이 몇 개 없는 아주 작은 식당인 줄 알았는데 들어가 보니 꽤 큰 식당이었다. (아주 작은 식당을 피하는 이유: 우리만 멀쭝하게 밥을 먹고, 주인이 멀쭝하게 우리만 바라보고 있는 불편함 때문)

이런 식당을 무슨 식당이라고 해야 하나.. 로컬식? 미국식? 미국 대중식당으로 분류하는 게 적합하겠다. 프라이드 휘쉬, 치킨, 햄버거와 함께 샐러드, 프랜치 프라이, 매쉬드 포테이토 등이 곁들여져 나오는 평범한 곳이다. 양은 큰 접시에 가득 풍성하게 나왔다, 맛도 괜찮았다. 맛이 아주 놀랄 만큼 뛰어나 반할만한 그런 곳은 아니지만 이 정도의 가격에 이 정도의 질이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저녁을 먹고 바로 옆에 있는 월그린에 들러 세라를 위해 몇 가지를 더 샀다. 아직도 살게 있다! 기숙사에 처음 들어가는 것은 마치 새로운 살림을 나는 것과 마찬가지인 듯하다. 마이크로웨이브, 베딩 셋 같은 덩치 큰 것뿐만이 아니라 휴지통, 물컵, 샤워용품 같은 작은 것들도 필요하다. 이제 다 갖춘 듯하면 또 살 것이 생기고, 또 생긴다. 그래서 차츰 전략을 바꾸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모든 걸 준비해놓고 시작할 수는 없다. 이제부터 필요하면 세라가 그때그때 사도록 해야지...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소피와 세라는 월그린에서 뭔가 하나라도 더 사려고 열심히 돌아다닌다.


세라를 기숙사에 내려놓고 로건 공항으로 향했다. 랜트카를 반납해야 한다. 그리고 대중교통으로 보스턴칼리지까지 다시 와야 한다. 차를 무사히 반납한 후 공항에서 알라모 셔틀로 트레인 타는 곳까지 왔다. 도중에 학교 앞까지 가는 그린라인 B로 갈아탔다. 그린라인은 B, C, D, E 네 가지가 있는데 보스턴 칼리지역이 있는 것은 B라인이다. 그런데 B라인은 중간에 Boston University를 거쳐오느라 그런지 서는 곳이 너무 많다. 한 30분쯤이면 공항에서 Boston College까지 오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한 시간 정도 걸렸다. 노선표를 살펴보니 그린라인 D를 타면 더 빨리 가는 방법이 있을 것 같았다. 그린라인 D에는 보스턴칼리지가 있는 Chestnut Hill 역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이 학교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D라인을 타기는 곤란하다. Chestnut Hill에서 학교까지 가까우면 걸어갈 수도 있겠지만 버스를 타야 한다면 어디서 어떤 버스를 타야 하는지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행자라면 대부분 B라인을 타야 할 것이다. 오래 걸려도 묵묵히, 시간이 두 배 걸려도 인내심을 갖고... 어차피 여행 자니까.


기숙사에 들어오니 세라는 자고 있었다. 피곤하겠지. 소피는 팔을 걷어붙이고 정리를 시작했다. 엄마의 저력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아무리 피곤해도, 아무리 졸려도 아이를 위해서는 초인간적인 힘이 솟는 모양이다. 그렇게 정리하기를 몇 시간, 시간은 밤 11시가 넘었다. 대충 정리하고 이제 B&B로 가야 하는데 정리는 아직도 끝나지 않는다. 차를 반납했기에 걸어가야 하는데... 이국에서의, 아니 외딴곳의 밤은 깊어가는데.... 비록 먼 거리는 아니지만 한 번도 걸어가 본 적이 없는 곳을 밤 12시가 다돼서 걸어가야 한다. 이곳이 위험한 곳은 아니지만 번화한 도심도 아니다. 큰 집들이 띄엄띄엄 있고 나무가 많은 주택가다. 세라의 룸메이트가 아직도 입주하지 않아 세라 방에 침대는 하나 남아있다. 소피는 여차하면 거기서 잘 생각이다. 하지만 싱글 침대라 둘이 자기에는 너무 좁다. 11시 반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소피에게 여기서 자고 싶으면 그러라고 하고 나 혼자라도 B&B로 돌아가겠다고 했더니 소피는 자기도 같이 가겠다고 한다. 밤 12시에 낯선 곳에서 헤매야할 내가 걱정돼서였는지, 아니면 소피 자신도 그곳에서 자는 것이 불편하다고 생각돼서 그랬는지, 그 자세한 내막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지만...


자정이 가까운 시각, 기숙사를 나왔다. 구글 지도 덕분에 가는 길은 봐 둬서 처음이지만 찾아갈 자신은 있었다. 비록 깜깜한 밤, 낯선 곳이지만, 그리고 길이 상당히 꼬여있지만... 여행기 서두에 보스턴의 길이 꿀꽈배기처럼 꼬여있더라고 말했다. 그 꿀꽈배기의 진한 맛을 이날 밤 톡톡히 본 것이다. 만약 이날 운이 조금만 더 나빴더라면 아마 밤새도록 뉴튼의 주택가를 '떠도는 영혼'처럼 헤매고 있었을지 도 모른다.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은 기숙사를 막 나오면서부터였다. 기숙사에서 나와서 아주 깜깜한 뒷길로 가야 Beacon Street이라는 큰길을 만나고 거기서부터 그냥 쭉 걸어가다 보면 B&B가 위치한 작은 골목을 만난다. 구글 지도에서도 그렇게 봤다. 소피에게도 아주 간단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기숙사를 나오면서 깜깜한 길은 길처럼 보이지도 않았으니 반대쪽으로 나간 것이다. 그 길도 지도에서 본 적이 있다. 그 길은 내가 가려던 Beacon Street와 나란히 뻗은 큰길이다. 따라서 머릿속으로는 "이 길로 쭉 가다가 중간에 가로지르면 되겠군..." 하는 그림이 그려졌다. 그래서 그냥 그 길로 쭉 걸어갔다. 아무것도 모르는 소피는 이 길이 맞냐고 물으면서 따라오고 있었다. "응. 이쪽으로 가다가 한 번 꺾어지면 돼"라고 말하며 가다가 꺾어졌다. 하지만 뉴튼의 이 길은 바둑판이 아니라 실타래였다. 그것도 제대로 엉킨.


돌고, 돌고, 돌고, 돌았다. 셀폰의 GPS를 켰다. 그런데 방향을 잡아가던 셀폰 GPS는 가다가 방향을 잊어버리고 나처럼 헤맨다. 셀폰 배터리도 빨간불이다. 아직도 길은 오리무중이다. 혹시 경찰차가 보이면 도움을 청할까 했는데 이럴 땐 경찰도 안 보인다. 음~ 역시 안전한 도시라 경찰이 잘 안 다닌다. 그러다 낮에 갔던 뉴튼센터가 나왔다. 하지만 거기서도 어떻게 가야 할지 막막했다. 상점들은 모두 문을 닫았다. 그렇게 조금 걷고 있는데 낮에 B&B에서 우리를 맞아주었던 그 학생 직원이 우리와 길 건너 맞은편에서 짠하고 걸어오는 것 아닌가? 구세주가 따로 없었다. 새벽 1시가 가까운 시간에. 이렇게 길에서 그를 만나다니. 그는 막 퇴근하는 길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를 B&B로 안내했다. 우리가 있던 곳에서 1분도 안 되는 곳이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코앞에서 헤매고 있던 것이다. 누가 우리가 헤매는 모습을 하늘에서 지켜봤다면 "아니 재네들은 왜 빨리 집에 안 들어가고 집 앞에서 저렇게 맴돌고 있지?"라고 하지 않았을까? 살금살금 2층으로 올라가 살금살금 샤워를 하고 잠 속으로 푹 빠졌다. 보스턴에서의 첫날밤이었다.




밤 12시에 낯선 도시에서 헤매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GPS만 철석같이 믿었는데 이 GPS가 어느 정도 안내하다가는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을 반복했다. 지금도 그 지역이 그럴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그때는 그랬다. 게다가 길이 옛날 길이라 골목이 엄청 많고 바둑판 모양으로 되어있는 게 아니라서 집 찾기가 정말 어려웠다. 만약 그 B&B 직원을 만나지 않았더라 밤새도록 헤맸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고생하며 길을 헤매던 지역이라 그런지 마치 내가 사는 곳처럼 정이 푹 들었다. 4년 후 세라가 졸업할 때 그곳을 다시 찾아가기까지 했다. 기숙사에서 짐을 정리한 후 (이번에는 기숙사에서 나가는 짐 정리) 쉬고 있을 때 그곳을 다시 가봤다. 이번에 환한 대낮에 갔다. 오래된 큰 집들이 이어진 주택가가 정겨웠다. 4년 전 밤에는 을씨년스러웠는데 4년 후 낮에 보니 싱그러운 모습이었다. 우리가 묵었던 그 B&B도 그대로 있었다. 그때 갔었던 음식점 Jonney's 도 그대로 있었다. 미국은 참 변하지 않는다. 그냥 세월만 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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