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에 돌아본 2013년 여행
보스턴에서의 첫날이 밝았다. 보통 여행을 다니거나 해서 잠자리가 바뀌면 잠이 잘 안 온다. 하지만 어제 너무 피곤해서인지 그냥 떨어졌다. 일어났을 때 어? 여기가 어디지 하는 생각도 나지 않았다. 뉴튼에서 어제 하도 헤매어서 내 뇌는 이미 이곳을 집처럼 익숙하게 받아들이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B&B가 호텔과 다른 점은 집주인과의 교류이다. 교류라 해봐야 피상적인 것이긴 하지만 호텔 프런트 데스크 직원과의 관계와 다른 것은 확실하다. 이곳은 영국식 B&B라 아침을 제공한다. 주방이 있는 1층에 내려가니 계단에서부터 커피 냄새가 그득하다. 계단 및 통로 한가운데에는 살찐 검은색 고양이가 길게 몸을 펴며 "Hey, who are you guys?"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그 물음에는 답하지 않고 고양이가 누운 곳을 살짝 피해 주방으로 들어갔다. 고양이가 진짜로 그렇게 물은 건 아니니 내가 대답해야 할 이유는 없다. 대답하면 더 이상할 것이다. 사실 난 고양이를 조금 무서워하는 편이다. 눈 때문에. 그냥 "끼리 끼리끼리..." 그러면서 지나갔다. 언제부터인지 고양이를 보면 나는 그런 소리를 내거나 "미야~~~ 오!"라고 하면서 지나가는 것이 버릇이 됐다.
주방에는 주인 엘렌과 어떤 백인 여자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 백인 여자가 바로 보스턴칼리지에 입학하는 아들을 둔 학부모다. 우리 옆 방에 우리와 마찬가지로 BC 신입생 학부모가 동시에 묵는다고 했던, 바로 그 사람들이다. 6인용 테이블에 접시와 나이프, 포크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옆쪽 보조 테이블에는 토스트, 베이글, 시리얼, 바나나... 같은 것들이 있었다. 엘렌은 냉장고에 요거트, 과일, 우유, 삶은 계란까지 있다며 자리를 권했다. 소피와 나, 엘렌, 그 학부모가 앉아 막 아침을 드는데 백인 남자가 2층에서 내려왔다. 백인 여자 숙박객의 남편이다.
우리보다는 키가 크지만 이들은 백인으로서는 좀 작은 편이었다. 이들은 캘리포니아에서 왔다고 소개했다. 남자는 유대계처럼 보인다. 하지만 백인, 흑인, 아시안 이런 식으로 밖에 인종 구분을 못하는 내 분류체계로는 모두가 백인이다. 키 작은 백인, 키 큰 백인... 남자는 자신이 오래전에 보스턴칼리지 기숙사에서 생활한 적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 학교 출신이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이들은 현재 켈리에 거주하지만 동부에서 만난 것 같다. 남자는 보스턴 근방에서 대학을 나왔고, 여자는 뉴욕에서 대학을 나왔다고 했다. 백인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말이 통하는 사람이 있고, 말이 잘 안 통하는 사람이 있다. 말이란 영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비교적 말이 잘 통하는 사람들이었다. 아마도 이들이 켈리에 살면서 한국인이나 아시안을 접해 봤기 때문이 아닐까. 또한 이들은 아주 젊은 백인들도 아니다. 우리처럼 아이를 대학에 보내는 나이인 것이다. 인종은 달라도 나이가 들면 비슷해지는 점도 생기나 보다. 아이 키우며 사는 일, 다르면 얼마나 다를까. 하긴 우리도 한국에서 막 도착한 한국사람들과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한국 사람들이 보면 우리가 많이 미국화 됐다고 할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전혀 느끼지 못하지만.
보스턴칼리지 오리엔테이션은 3일간 진행된다. 학생과 학부모를 따로 나눠서 학생들은 밤늦게까지 스케줄이 빡빡하다. 학부모는 저녁식사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4시나 8시쯤 끝난다. 가톨릭 학교답게 시작은 학교 내에 있는 성당에서 일요일 오후 미사로 시작한다. 아침을 먹고 일단 세라의 기숙사로 향했다. 예정은 시원한 바람을 쐬며 천천히 걸어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바람은 한점 없고, 아침부터 햇살은 뜨거웠다. 10분 정도 걷다 보니 겨드랑이와 등에서는 땀이 났다. 여기가 하와이 같은 줄 알았던 것이다. 항상 시원한 바람이 부는...
기숙사에 도착하니 세라는 침대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일찍 일어나 캠퍼스를 한 바퀴 둘러봤다고 했다. 앞으로 4년간 살 캠퍼스. 고스란히 자신의 청춘으로 묻어날 이 아름다운 캠퍼스. 어땠을까? 소피가 세라 방을 좀 더 챙기고 있는데 세라는 누군가와 만나야 한다며 먼저 나갔다. 하와이에서 함께 온 신입생 푸나호우 졸업생 남학생 둘이다. 우리도 하와이에서 이들을 만난 적이 있다. 동양계 남자애들이라 그런지 같은 나이인 세라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애들이다. 하나는 일본계, 또 하나는 중국계다. 보기엔 어리숙해 보이는 아이들이다. 하지만 푸나호우를 나오고 보스턴칼리지에 왔으니 이들도 참 똑똑한 아이들일 것이다. 미국에서는 그런 경우가 참 많다. 보기에는 상당히 어리숙해 보이는 아이들이 말하는 것을 들으면 상당히 논리 정연하다. 자신의 생각이 확실하다. "don't judge a book by its cover"는 역시 명언이다. 표지만 보고 내용을 평가하지 말라. 그래, 표지를 보고는 표지만 평가하면 된다.
방 정리를 대출 마친 소피와 나는 캠퍼스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앞으로 여기서 살 세라의 4년을 그려보면서. 그런데...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공부가 될까? 부럽다. 다시 17살로 돌아가 내가 이곳에서 공부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미국에 온 것은 서른을 갓 넘기고 였다. 미국의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긴 했지만 대학원은 대학과는 또 많이 다르다. 대학생은 청춘이지만 대학원생은 이미 쩐춘이다. 게다가 나는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7년이나 하고서 왔으니 대학원생이면서 학생 행세를 하기에는 너무 늙어버렸다. 미국에 오려면 좀 더 일찍 왔어야 했다. 고등학생 때 오는 것도 늦은 것이다. 중학교 저학년이나 초등학교 고학년 때가 가장 적절하다. 이때 미국에 오면 한국과 미국의 문화를 동시에 갖게 되는 듯하다. 이보다 더 일찍 오면 미국 쪽으로 기울고, 이보다 늦게 오면 한국 쪽으로 기울게 된다. 그러고 보면 서른을 갓 넘기고 온 나나 20대 후반에 온 소피는 아무리 미국에 오래 살아도 한국 정서를 간직한 채 살게 된다. 한 살 때 온 세라는 아무리 부모가 한국의 뿌리를 강조해도 미국 쪽 정서를 습득하게 된다. 물론 백인 부모를 둔 순수한 백인 아이들과 세라의 정서가 다른 것은 확실하다. 문화는 세대를 거치면서 서서히 변하게 된다. 그만큼 강한 것이 문화다. 그만큼 독한 것이 문화다.
학부모 오리엔테이션 체크인을 위해 해당 건물로 들어갔다. 건물 앞에는 재학생들이 노란색 셔츠를 입고 나와 기묘하고 우스운 제스처를 써가며 (표현할 방법이 없다) 학부모와 신입생들을 맞고 있었다. 대학가 특유의 생동감이 싸~ 하고 뇌리를 때렸다.
7년 전으로 다시 돌아가서 보스턴에 가고 싶다. 대학가의 생동감을 그대로 느끼고 싶다. 낯선 집에서의 하룻밤을 보내고 싶다. 몸은 피곤하더라도 학부모 오리엔테이션에 다시 참가해서 하나하나의 내용을 온 정신을 집중해서 듣고 싶다. 그러나 나는 이제 그런 세월이 이미 지난 것이다. 때가 있는 법이어서 아무리 다시 돌이키려 해도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당시에는 그다지 느끼지 못했지만 지나고 나서 돌이켜보면 그때가 좋았음을 알 수 있다. 그때 당시에는 고생이 좀 되었던 일도 지나고 나니 그 시절이 오히려 그립다.
이러한 일이 사실이라면 지금도 참 소중히 시간을 보내야 할 듯싶다. 앞으로 5년 후, 10년 후에는 지금 시절을 그리워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현재를 잘 사는 것이 인생을 잘 사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곰곰이 생각해서 그 일들을 하나씩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나중으로 미루면 반드시 후회한다. 나중에는 하고 싶어도 못할 수가 있다. 시간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여유가 생기지 않아서... 모두 핑계일 뿐이다. 시간을 내고, 돈을 아끼고, 여유를 만들어서 실행해야 후회가 없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