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에 돌아본 2013년 여행
예정대로 2013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시작되었다. 학교 입구 쪽에 있는 세인트 이냐시오 성당에서 미사로 시작됐다. 성당은 아름다웠다. 특히 햇살을 가득 머금은 스테인드글라스가 멋졌다. 이 학교 졸업생들 가운데 더러는 이 성당에서 결혼식을 하기도 할 것이다. 4년간의 젊음이 고스란히 스며있는 캠퍼스. 혹시 세라도 나중에 여기서 결혼식을 하겠다고 하지 않을까. 그러면 보스턴까지 와야 하는데... 하는 가능성이 그리 크지도 않은 상상을 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서강대학교 안에 있는 성 이냐시오 성당에서 결혼을 했다. 이것도 인연인 듯싶다. 내가 대학원을 다닌 서강대와 세라가 지금 공부를 시작하는 보스턴칼리지가 같은 가톨릭, 그것도 예수회가 설립한 학교다. 지금 우리가 오리엔테이션을 위해 들어와 있는 이 성당의 이름이 소피와 내가 결혼한 성당의 이름과 같다. 인연... 예측할 수 없지만 이렇게 맺어진다. 일부러 만들려고 한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연이다. 우연을 가장한 신의 계획이다.
미사가 끝나고 연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성당에서 연회장까지는 한참 걸어야 했다. 언덕으로, 계단으로, 아름다운 캠퍼스 건물들 사이로 걸었다. 신입생과 학부모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연회장에서는 앞으로 3일간 오리엔테이션을 이끌 학생 리더들과 교직원들의 소개가 있었다. 오리엔테이션 프로그램은 이 학교의 신부님이 주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재학생들이 이들을 돕고 있었다. 신부님이 오리엔테이션 리더로 일하는 학생들을 하나하나 소개했다. 이름이 불린 학생들은 여러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자신의 의자에 올라가 손을 흔들었다. 2학년부터 4학년까지, 보스턴칼리지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이다. 전공도 다양했고 인종도 다양했다. 출신지도, 생긴 것도 다양했다. 보이진 않지만 생각도 가치관도 다양하겠지. 백인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북동부 출신이 많았다. 여기까지는 학생과 학부모가 같이 움직였는데 이제부터는 각각 다른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식사 후 우리는 자리를 아트 시어터로 옮겼다. 한참 또 걸어서 캠퍼스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Faculty를 만나고 본격적으로 오리엔테이션이 시작됐다.
다음날 아침, 역시 걸어서 학교까지 갔다. 더웠다. 오전 9시부터 어제 마지막에 있었던 아트 시어터에서 오늘 첫 프로그램이 있었다. 세라는 이미 캠퍼스 어디선가에서 오리엔테이션에 한창일 것이다. 학생들은 여러 개의 소그룹으로 나뉘어 리더들을 따라다니며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프로그램이 있다. 때로는 밤 11시, 12시까지 프로그램이 이어진다고 한다. 다행이다. 학부모는 아무리 늦어도 밤 8시쯤이면 끝나니. 이땐 학생보다 학부모인 것이 다행이다 싶었다.
오늘 첫 프로그램은 재학생들을 패널로 앉혀놓고 그들로부터 학교생활의 경험담을 직접 듣고 질문하는 것이다. 남학생 2명, 여학생 2명이 나와 있었다. 남학생은 텍사스 출신 백인 한 명, 남미(나라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에서 유학 온 학생 한 명이다. 여학생은 북동부 출신의 백인 한 명, 아시안 학생 한 명이다. 아시안 여학생은 성으로 보아 한국계인 듯. 텍사스 출신 남학생 하나와 북동부 출신 여학생이 말하는 중에 자꾸 다리를 흔드는 것이 좀 눈에 거슬렸다. 이들이 흔드는 다리는 2년 전 프린스턴 대학 캠퍼스 투어 갔다가 설명하는 학생이 다리를 흔들던 것과 오버랩됐다. 왜 이 학생들은 다리를 흔드는 걸까? 다리를 흔들면 말이 더 잘 나올까? 나도 한 번 흔들어 볼까? 어쨌든 이들은 말을 잘했다. 전 세계에서 온 수백 명의 학부모를 앞에 두고서 거리낌 없이 자신의 생활에 대해 이야기했다. 질문에 대답도 척척 잘했다.
보스턴칼리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은 7개의 그룹으로 나뉘어 실시된다. 이미 한두 달 전부터 시작됐고 우리가 맨 마지막인 7번째 그룹이다. 맨 마지막 그룹은 미국 중부지역보다 더 멀리에서 오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다. 미국 서부와 우리처럼 하와이, 그리고 외국 유학생들이 포함된다. 멀리 사니까 오리엔테이션이 끝난 후 집에 돌아가지 않고 바로 새 학기를 시작할 수 있도록 한 학교 측의 배려다. 학부모의 2/3 이상이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한 미국 서부에서 왔다. 외국 유학생도 많았다. 유럽에서, 중동에서, 중남미에서, 그리고 아시아에서. 그야말로 세계 방방곡곡에서 왔다. 우리처럼 하와이에서 온 학생은 세라를 포함해 7명이다. 우리는 하와이에 거주하고 있는 보스턴칼리지 졸업생들 주최로 와이키키에서 작은 만남을 가진 바 있다. 그래서 일부는 이미 얼굴을 알고 있고 만나면 인사를 나눈다. 이들은 일본계, 중국계여서 하와이에서는 이들도 모두 남처럼 느껴졌지만 이곳에서는 단지 하와이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동질감이 느껴진다.
일정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보스턴칼리지의 역사, 이 학교 교육의 목적, 종교, 학사관리, 의료, 응급상황, 전공선택, 진로, 학비, 재정보조, 교내 파트타임, 취업 등 학부모들이 궁금해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각 전문가들이 나와 설명한 후 질의응답 시간이 있었다. 질문이 끊이지 않았다. 보통 아시안들은 이런 데서 조용한데 중국계 사람들은 좀 달랐다. 영어 발음이 상당히 서툴러도 서슴지 않고 질문하는 것은 중국계 학부모들이었다. 점심은 학교에서 제공했다. 저녁은 학부모 각자 해결하라고 했다. 이 말은 오늘은 저녁시간 이전에 끝난다는 것이다. 5시 조금 넘어 일정이 끝났다. B&B로 바로 들어가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다. 소피와 나는 보스턴 시내로 나가기로 했다. 오리엔테이션이 끝나면 우리는 보스턴 시내를 구경할 시간이 별로 없는 일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 앞에서 트레인을 타고 시내로 향했다. 소피와 내가 나란히 트레인을 타고 보스턴 시내로 가고는 있지만 둘의 속마음은 달랐다. 나는 보스턴 시내를 한 번 둘러보고, 맥주 한잔 해야지... 소피는 아직도 세라가 필요한 것을 더 사기 위해 fenway에 있다는 Bed Bath and Beyond 가야지.... 둘의 생각이 같든 다르든 어쨌든 우리는 보스턴 시내 쪽으로 다가가고 있다. 나의 계획은 유연한 편이다. Bed Bath에 가서 샤핑을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 맥주를 한잔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 일단 fenway 역에서 내렸다. 하지만 Bed Bath를 열심히 찾기보다는 걸어 다니다가 만나면 들어갈 생각이었다. fenway 구장을 한 바퀴 빙 돌았다. 야구장 골목길에는 핫도그, 음료수 파는 곳이 여러 곳 있었다. 게임이 있는 날이면 이곳에 몰려들 인파가 상상이 갔다. 공원과 음식점이 이어진 길을 걸었다. 마치 대학촌 같았다. 걷다 보니 Bed Bath 샤핑백을 들고 걸어가는 학생들이 보였다. 근방에 매장이 있다는 얘기다. 나는 지금 매장에 가면 저렇게 큰 샤핑백을 들고 다녀야 하니 나중에 찾자고 했다. 가도 좋고 안 가도 그만이니. 그렇게 걷다 보니 Prudential센터가 나왔다. 이곳은 우리가 2년 전에 왔을 때 가본 적이 있는 곳이다. 이곳 꼭대기 전망대에 올라가면 찰스강을 낀 보스턴 전경이 보인다. 하지만 이번에는 올라갈 필요가 없다. 센터 안 매장을 구경하다가 푸드코트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먹었다. 밖에는 해가 지고 있었다. 푸드코트 일식 코너에서 저녁으로 먹을 것을 두 개 픽업했다. 맥주도 사고 싶었는데 파는 곳이 없었다. 소피는 맥주를 들고 가느니 B&B근처에 가서 사는 게 낫겠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결국 Bed Bath 매장은 찾지 못하고 B&B로 향하는 트레인에 다시 올랐다.
앞자리에 앉은 20대 초반의 흑인계 남녀가 서로 기대서 이야기하다, 자다, 셀폰에 연결된 이어폰을 나누어 귀에 꽂고 음악을 듣는 모습이 보였다. 역시 같은 인종끼리가 잘 어울리는구나. 그 모습을 보니 앞사람의 얼굴과 차림이 적나라하게 보이는 서울의 지하철 풍경이 생각났다. 픽업한 음식에서는 맛있는 냄새가 솔솔 나고 있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1F15Ji5_1E&feature=youtu.be
2013년 보스턴칼리지 교내에서 연습중인 밴드
어느 도시에 가서 여행하는 방법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아무런 계획 없이 하루를 방랑하는 것이다. 어디를 가야지 하고 나서면 그 의무감이 마음을 지배하기 때문에 완전한 자유를 누리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는 것 같다. 이날 보스턴 여행에서도 Bed Bath and Beyond에서 뭐를 사야지 하는 생각이 내 마음을 지배했더라면 걸어 다니면서 보이는 보스턴 시내 풍경이 100% 자유롭게 다가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매장이 나타나면 가고 안 나타나면 안 가도 된다는 마음으로 걸어 다니니 마음이 훨씬 가벼워지는 것이다. 목표가 있어야 방황하지 않는다는 말은 맞는 말이지만, 때로는 방랑하기 위해 여행을 한다. 그 편이 훨씬 자유롭다는 것은 그렇게 해보면 금세 알 수 있다.
보스턴이란 도시는 매년 이맘때쯤이면 새로운 사람들이 와서 활기를 불어넣는 것 같다. 그것도 인생의 황금기를 맞은 대학 신입생들이 세계 곳곳에서 살다가 대학생활을 위해 모이는 것이므로 그 에너지가 상당하다. 또 매년 5월 말이 되면 싱그러운 4년을 보내고 졸업하는 학생들을 위해 그 학부모들이 미국 전역과 세계 곳곳에서 모여들어 또 한 번 에너지를 발산하는 곳이다. 이런 패턴이 매년 반복되었고 앞으로도 계속 반복될 것이라 생각하니 재미있다. 많은 학생들과 학부모가 몰려왔다 돌아가는 도시, 그중 일부 학생들은 보스턴에 남아 보스토니언이 되기도 하는 도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