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에 돌아본 2013년 여행
보스턴의 교통수단은 T라고 부른다. Train의 약자일까? Transportation의 약자일까? 아니면 Too much traffic의 약자일까? 보스턴 시내에서부터 보스턴칼리지까지 차로 가는데 기찻길과 도로가 꼬불꼬불 꿀꽈배기처럼 꼬여 있었다. 한참 동안 차선이 기찻길의 오른쪽으로 달리더니 운전하다 보니 어느 틈엔가 왼쪽으로 변해있다. 언제 넘어왔지?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재미있으라고...? 차선이 먼저 생겼든, 기찻길이 먼저 생겼든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꼬이고 또 꼬인 길.... 이것이 바로 보스턴이었다. 나중에 얘기하겠지만 우리는 이 꼬인 길 때문에 무진장 애를 먹었다.
보스턴칼리지에 도착했다. 체크 인하고 카드 키를 받고, 세라가 배정된 방을 열었다. 생각보다 참 작고 허름했다. 이 방에서 두 명이 최소한 1년 동안 살아야 한다. 학교에 대한 기대로 몇 달 동안 잔뜩 꿈에 부푼 세라는 기숙사 방을 보고는 다소 실망한 듯했다. 그래도 기숙사 건물은 세라가 그렇게 오고 싶어 했던 빨간 벽돌로 지어진 오래된 건물이 아닌가. 게다가 방에서 한 발자국만 나가면 하늘을 찌를 듯 높은 건물들이 십자가를 달고 웅장하게 서있지 않은가. 보스턴칼리지의 교정은 중세의 어느 성에 온 듯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건물들이 장엄하고 아름다웠다.
하와이에서 데리고 온 짐, 쇼핑센터에서 사 온 물건들을 하나씩 하나씩 꺼내 방으로 옮겼다. 작은 방이 짐으로 꽉 차서 터져버리는 것은 아닐까 걱정되기도 했다. 여기에다 룸메이트도 또 산더미 만한 짐을 지고 오늘이든 내일이든 들이닥칠 텐데... 일단 짐을 대충 부려놓고 우리가 묵을 숙소로 가서 체크 인 먼저 하기로 했다. 우리가 묵을 곳은 보스턴칼리지에서 걸으면 20분, 차로는 5분 이내의 거리에 있다. 학교 근처에 적당한 호텔이 없어 인터넷으로 예약한 B&B. 학교 오리엔테이션 하는 동안 시내 나갈 일이 별로 없으니 최대한 가까운 곳에 잡았다. 걸어 다닐 생각이었다. 오리엔테이션이 아침 일찍 시작해 5시 이후에 끝나니 걸어갔다 오면 되겠지 생각했다. 천천히 걸으며 뉴튼의 동네, 길, 집들을 구경할 요량이었다.
B&B는 크고 오래된 곳이었다. 하긴 이 동네의 집들은 보통 백 년 이상씩 된 곳이 많으니 이곳도 그중 하나인 듯싶었다. 뒤쪽으로는 3층, 앞쪽으로는 2층 집이었다. 오후 3시. 뒤쪽 주차장에 차를 세우니 젊은 남자 한 명이 허겁지겁 나왔다. 이곳 B&B에서 일하는 직원이었다. B&B도 직원을 두고 하는구나! 언듯 봐서 사람을 잘 알 수는 없지만 첫인상은 친절하고 예의 바른 사람으로 보였다. 인종은 알 수가 없다. 머리는 까만데, 아시안은 아니다... 이렇게 아시안이 아닌 검은 머리의 인종은 도대체 가늠이 잘 안 간다. 나중에 자신을 소개할 때 들어보니 자기는 보스턴대학(Boston University) 학생이라고 했다. 보스턴에 산지는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고 했다.
가방을 우리가 예약한 2층 방으로 옮기려 하는데 주인이 어디선가에서 나타났다. 엘렌이라는 이름의 전형적인 백인 여자였다. 언듯 봐서는 별로 나이 들어 보이지 않았지만 50대 이상인 것은 확실하다. 벽에 걸린 액자에는 남편과 딸 둘의 사진이 있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딸들이 이미 대학을 다 졸업하고 유럽에 있다고 그랬다. 다음날 아침을 먹으며 잠시 이야기를 하는 중에 들은 것이지만, 이 주인 여자는 자신을 acupunturist라고 소개했다. 미국에서 acupunturist 라면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보통은 한국의 한의사와 같이 침을 포함해 한약조제, 기타 물리치료 등을 하는 경우가 많지만, 침만 놓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자신의 집 1층에 한의원이든 침술원이든 차려놓고 어쨌든 한의사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백인이 이미 20년 전부터 그런 일을 했다니 놀랍다.
방은 아주 넓지는 않았지만 괜찮았다. 보스턴에서 하루 140불을 주고 이만한 호텔을 구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예약할 때 엘렌은 다른 방에도 보스턴 칼리지에 입학하는 자녀를 둔 부모가 묵게 된다고 말했는데 그들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오늘 서둘러야 했다. 저녁을 먹고, 세라를 기숙사에 내려놓고, 랜트한 차를 공항에 다시 반납한 다음, 다시 기숙사에 들러 방 정리를 해놓고, 이곳으로 와야 하는 스케줄이다. 공항에는 다음날 아침에 차를 반납해도 되지만 어차피 반납하고 와야 한다면 오늘 저녁에 여유 있게 다녀오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세라는 오늘부터 기숙사에서 잘 계획이었다. 그런데 세라는 방을 보더니 즉흥적으로 자기도 여기서 자면 안 되겠냐고 했다. 그래서 우리도 즉흥적으로 엘렌에게 물었더니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침대를 하나 더 마련해야 하고.. 어쨌든 힘들다는 뜻. 세라는 그냥 "That's okey" 라며 즉시 포기한다. 그냥 그랬으면 좋겠다고 잠시 생각해본 것이지 굳이 여기서 자고야 말겠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이다. 가방을 놓고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보스턴칼리지는 보스턴 시내에서 차로 20분 정도 걸리는 곳에 위치해 있다. 시내에는 호텔이 많지만 보스턴칼리지에서 가까운 곳에는 호텔이 없어 어디에 숙박할까 고민했었다. 학부모도 오리엔테이션에 3일간 참가해야 하므로 매일 호텔에서 다니기가 불편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학교에서 걸어 다닐 수 있는 곳에 B&B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예약한 것이다. 보스턴의 가정집을 구경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100년이 넘은 집이지만 생각보다 깨끗하고 자리가 잘 잡힌 집이다. 이 집에서 아침도 주는데 넓은 식탁에서 다른 사람들 (모두 백인들)과 같이 먹어야 하는 점이 좀 불편해서 첫날만 먹었다. 둘째 날부터는 보스턴칼리지에서 학부모를 위해 마련해놓은 간단한 빵과 커피로 아침을 때웠다. 그쪽이 훨씬 더 편했다.
대학에 학부모 오리엔테이션이란 게 있을 줄은 몰랐다. 부모가 아이들에 대한 기대가 크기 때문인지 학교 측이 그런 점을 배려해 이러한 프로그램을 만들어놓은 것 같다. 엄청난 수의 학부모들이 여러 조로 나뉘어 참가한다. 우리도 3일간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꼬박 참석했다. 피곤하니 꼬박꼬박 졸기까지도 했다. 우리가 학생 당사자도 아닌데 이게 웬 강행군인가 싶었다. 당시 우리는 꼭 참석해야 하는 줄로만 알았지만 사실은 그렇지는 않다. 우리가 그렇듯 미국의 학부모들도 앞으로 4년간 아이를 맡아줄 이 학교가 어떤가를 알고 싶어서 참가하는 것이다. 아이가 하나였으니 망정이지 둘째였으면 굳이 학부모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하지는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