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서 마지막 날은 뭐할까 하다가 갑자기 폼페이로 가기로 했다. 로마 테르미니역에서 나폴리까지 가는 트랜 이탈리아를 하루 전에 예매했다. 1시간 8분 거리인데 $114이나 했다. 바로 전날 예매하니 예상대로 비쌌다. 나폴리에서 폼페이까지는 다시 국철을 타고 30분 정도 가야 한다. 아침을 호텔에서 먹고 느긋하게 출발하니 막상 목적지인 폼페이에서 머물 시간은 채 2시간도 되지 않았다. 그래도 안 가는 것보다는 갔다 오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 들어가기로 한 것이다. 언제 또 이태리에 올 것이며, 언제 또 폼페이에 올 것인지 기약이 없기 때문이다. 갈 수 있을 때 가야 하고, 가까이 있을 때 가야 한다.
테르미니역에서 나폴리까지는 편안하게 갔다. 그런데 나폴리에서 폼페이까지 가는 기차는 아주 낡은 기차였고 자리도 많지 않았다. 우리도 자리를 차지하지 못해 절반 정도는 서서 갔다. 로마 아래로 내려갈수록 기차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점점 허름해져 간다. 다 낡은 건물들, 낙서가 많은 건물벽이 이어진다. 낡은 거리를 낡은 기차가 전 세계에서 몰려온 수많은 관광객을 태우고 지나간다. 하루에도 수십 차례 지나가는 관광객을 잔뜩 태운 기차를 보며 이곳 주민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기차를 타고 이 거리를 처음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은 또 무슨 생각을 할까?
폼페이로 가는 이유는 베수비오 화산 (Vesbuio Volcan)으로 묻혔다가 발굴된 로마 옛 도시의 모습을 보려는 것이 이유다. 베수비오 화산은 서기 79년에 갑작스럽게 폭발한 것으로 2천 명 이상이 살던 모습 그대로 화산재를 덮어쓴 곳으로 알려졌다. 폼페이는 로마 귀족들의 휴양지로 유명했는데, 화산으로 인해 도시 자체가 묻혀버리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다가 1860년대 운하 건설 과정에서 발굴이 시작되었다. 발굴 시 유적이 쌓여있는 곳곳에 빈 공간이 있음을 이상히 여기다가 이 공간에 석고를 채워 넣으면서 사람의 형상이 나와 비로소 이곳이 사람들이 파묻혔던 곳임을 알게 된 곳이다. 폼페이 유적지에 가면 발굴된 도시의 유적지와 함께 빈 공간에 석고를 부어 본을 뜬 당시 사람들의 고통스러웠던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 머리를 감싸 쥐고 앉아 있는 모습, 누워서 웅크린 모습, 몸부림치는 개의 모습까지 생생하다. 지금처럼 대피하라는 경고조차 없이 어느 날 갑자가 화산 폭발을 직접 당한 사람들은 얼마나 무섭고 놀랐을까. 만약, 폼페이를 구경하러 가는 이 시간에 폼페이 화산이 폭발해 이대로 화산재에 묻혀 버린다면. 이 많은 서양인들 사이에서 발견된 소피와 나를 발굴한 사람들은 참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얘네들은 어디서 왔을까?"
조금 더 시간이 있었으면 천천히 둘러보고 싶었지만 기차 시간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나폴리의 박물관에 가면 당시 상황을 좀 더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그럴만한 시간이 없다. 우리에게 나폴리는 그냥 폼페이로 가기 위해 거쳐가는 갈아타는 역에 불과했다. 겨우 시간 맞춰 돌아오는 기차를 탔고 어스름 녘 테르미니 역에 도착했다. 오늘 갔다 온 것은 그냥 즉흥적으로 갔다 온 것인데 이런 여행도 재미있다. 여행 중에 떠나는 또 하나의 작은 여행이라고 할까. 물론 폼페이에도 시간이 있으면 가보면 좋겠다는 생각은 이태리에 오기 전에 이미 했었다. 하지만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 않고 있다가 로마에서 아래쪽으로 좀 더 내려가 볼까 하는 생각으로 하루 전에 기차표를 예매하고 갔다 온 것이다.
내일은 이태리를 떠나는 날이다. 하와이까지 너무 멀어 뉴욕에서 2박을 하면서 좀 쉰 후 다시 비행기를 타려고 일정을 정했었다. 아니 그것보다는 애초에 보스턴에 있는 세라가 이태리 여행에 동행할 줄 모르고 오는 길에 뉴욕에서 이틀 정도 함께 시간을 보낼 생각으로 그런 일정을 정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세라는 이미 이태리 여행을 우리와 함께 한 후 이미 보스턴으로 간 상태다. 그래서 딱히 세라를 다시 뉴욕으로 오라고 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냥 이틀간 소피와 뉴욕에서 쉬다가 가도 된다.
소피는 이태리를 떠나기 전에 동료들에게 줄 작은 선물을 사야 한다며 뭔가를 사러 가자고 한다. 이미 땅거미가 내려앉은 시간에 어디 가서 선물을 살 것인가. 테르미니역에서 일단 바르베리니 쪽으로 갔다. 많은 가게들이 이미 문 닫은 상태다. 길거리에서 파는 싸구려 선물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한 군데 선물가게가 아직 문연 것을 발견하고 얼른 들어갔다. 이태리 가죽제품을 주로 파는 곳이었다. 여기서 이것저것 한꺼번에 선물을 해결했다. 못 산 것은 내일 공항에 가면 뭔가 또 있겠지. 아직도 해외여행 가면 주변 사람 선물을 챙겨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받아서 기분이 나 쁘지야 않겠지만 그보다는 그 선물 사러 다니는 시간에 차라리 좀 더 많은 것을 보고 오는 것이 낫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