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프라하에서 랜트카를 해서 오스트리아 키츠부헬까지 가는 날이다. 중간에 체코의 체스키 크룸로프 (Cesky Krumlov)와 잘츠부르크(Salzburg) 도 들릴 예정이다. 승용차 서비스를 왕복으로 예약했기 때문에 교통편 걱정은 없다. 프라하에서 승용차 서비스를 이용하게 된 것은 인터넷이 맺어준 우연이다. 여행을 계획할 때 가고 싶은 곳이 결정되면 호텔과 항공을 가장 먼저 예약한다. 그다음에는 도시 간 이동 교통편과 공항에서 호텔까지의 교통수단을 알아보는 순서로 한다. 공항에서 호텔까지는 캐리어가 있기에 대중교통보다는 대부분 택시나 우버를 사용한다. 그런데 온라인에서 프라하 교통편을 알아보다가 우연히 승용차 서비스 광고를 보게 되었다. 생각보다 가격도 비싸지 않았다.
호텔 조식을 먹은 후 호텔에 도착한 승용차를 타고 프라하 공항 랜트카 섹션에 도착했다. 예약한 차는 스코다 옥타비아다. 유럽에서는 차를 예약할 때 스틱인지 오토매틱인지를 잘 확인해야 한다. 오토매틱의 종류가 더 적은 편이기 때문이다. 풀 보험을 들었고, 오토매틱 옵션, 운전자 한 명을 추가했다. 세라가 운전 배운 지 1년쯤 되는데 자기도 잠깐씩 운전하고 싶다고 해서다. 혹시 몰라 소피도 국제면허증을 만들어 오기는 했다. 오스트리아 여행은 이제 기동력이 생겼다. 랜트카를 하면 좋은 점이 가고 싶은 곳 어디든 쉽게 이동이 가능해지는 점이다. 프라하 여행 중 체스키 크룸로프에 한 번 가보고 싶었는데 거기까지 갔다가 다시 프라하로 돌아가면 하루가 다 소비된다. 이렇게 오스트리아 가는 길에 들리게 되면 시간면에서 훨씬 이득이다.
목적지인 키츠부헬(Kitzbuhel)의 큐리오 호텔(Grand Tirolia Hotel Kitzbuhel, Curio Collection by Hilton) 까지는 구글맵 상으로 6시간 거리다. 우리는 체스키 크룸로프와 잘츠부르크에 들렀다 갈 것이므로 5시간 정도 추가하면 빨리 도착해도 저녁 무렵이 될 것이다. 체스키까지는 두 시간 반 정도 걸린다. 체스키 거의 다 와서 네비가 자꾸만 이상한 길로 안내한다. 큰길로 쭉 가면 될 텐데 가다가 갑자기 길이 없는 듯한 작은 동네가 나온다. 차 한 대 겨우 빠져나갈 정도의 좁은 길로까지 몰아넣는다. 네비 세팅을 뭔가 잘못했나 싶지만 거의 다온 것 같아 그냥 갔다. 겨우 다시 큰길을 만났고 마침내 체스키에 도착했다. 도착해서도 주차장을 찾으려다가 입구를 놓치고 한 바퀴 돌았다. 체스키는 작은 마을이고 마을 안에까지는 차가 들어가기가 어려웠다. 마을 입구에 주차장이 하나 보여서 거기에 주차했다.
체스키 입구에서 보는 마을 풍경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한 폭의 그림이다. 크룸로프 성과 교회, 블타바 강이 마을과 어울리며 동화 속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언덕의 성까지 올라가는 길에는 기념품점과 식당이 이어졌다. 너무 유명해서인지 관광버스에서 관광객이 쏟아져내리고 그들이 또한 하나의 풍경을 만든다. 성 입구까지 올라가면서 구경하고 성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화장실 가기 위해 동전이 필요해서 휴게소에서 과자와 음료 하나 사고 동전을 바꿨다. 내려오는 길에 다시 봐도 역시 멋있었다. 블타바 강변에 있는 음식점 풍경이 마음에 들었다. 음식점의 뒤편 야외에 한 줄로 정렬된 식탁, 파라솔, 노란색 꽃, 블타바 강물, 주황색 지붕이 만들어내는 조화가 참으로 멋지다. 전에 넷플릭스로 봤던 영국 드라마 닥터 마틴 (Doc Martin) 이 연상됐다. 물론 드라마에 나왔던 거긴 영국이지만 분위기가 비슷했다. 좀 더 있고 싶지만 갈 길이 아직 멀다.
체스키에 찾아갈 때 세라가 1시간 정도 운전했다. 또 하겠냐고 했더니 싫다고 한다. 올 때 운전할 때 너무 피곤했다는 거다. 그래 운전이 그렇게 피곤한 거다. 내가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오스트리아에 들어갈 때는 비넷(Vignette)을 잊지 말아야 한다. 비넷은 고속도로 통행증으로 간이 휴게소나 주유소 등에서 살 수 있다. 그런데 어느새 오스트리아로 들어와 버렸다. 국경이 따로 있는 게 아니어서 운전하다 보니 어느새 오스트리아 영토다. 비넷을 사기 위해 주변을 유심히 살폈지만 아무것도 없다. 개스도 넣어야 하니까 아무래도 주유소에 들러서 사야 할 것 같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주유소를 찾았는데 하필 거기서는 지금 비넷을 팔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른 주유소를 알려주었다. 어느 마을로 한참 들어간 곳에 위치한 주유소에서 비로소 비넷을 사서 차에 붙이니 안심이 됐다. 근처 슈퍼마켓에 들러 과일과 음료, 간단한 먹을 것을 좀 샀다. 해외여행 중에 들르는 슈퍼마켓은 관광지만큼이나 재미있다. 아, 여기서 사람들이 또 이렇게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낀다. 호텔에서 마실 와인도 한 병 샀다.
슈퍼에서 나오니 세라가 피곤이 풀렸는지 자기가 운전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슈퍼를 빠져나가자마자 좁은 2차선 도로에서 갑자기 차가 멈춰서 버렸다. 아무런 전기신호가 들어오지 않았다. 마일리지로 봐서 거의 새 차나 다름없는데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 게다가 비까지 오기 시작한다. 날도 벌써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매뉴얼을 읽어보고 인터넷을 찾아보고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도 차는 꼼짝하지 않는다. 뒤쪽에서 차들이 빵빵 거린다. 손으로 X자를 표시하니 기다리던 차들이 후진해서 제갈길을 간다. 버스 한 대가 우리 뒤쪽에 서있다가 우리가 못 가니 버스에 탄 한 남자가 내려서 자가기 해보겠다고 한참 만지작거리더니 안 되겠다고 가버린다.
남자 한 명, 여자 한 명으로 구성된 오스트리아 경찰이 왔다. 사정 얘기를 하니 자기들이 일단 뒤쪽의 차를 돌려보내 주겠다고 한다. 세라가 프라하의 랜트카 회사에 전화를 하고 그들이 시키는 대로 응급조치를 여러 가지 해도 차는 꼼짝 않는다. 비는 점점 세차게 온다. 경찰 둘은 그 비를 맞고 그대로 서있다. 랜트카 회사에서는 인근에 가능한 수리공이나 토잉카를 알아봐서 보내주겠다고 한다. 위치를 묻는데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참 당황스럽다. 영어가 아니라 독일어다. 세라가 주변의 교차점 도로명 표지판을 보고 그대로 문자로 보내주었다. 그러고도 한참을 기다렸다. 비는 계속 오고 경찰은 더 이상 있을 수가 없었던지 철수하겠다고 한다. 지금 여기 위치가 어디쯤 되느냐고 하니까 잘츠부르크 위쪽이라고 한다. 우리를 이렇게 놔두고 경찰도 가버렸다.
인터넷에서 유튜브로 이것저것 다 찾아보며 하라는 대로 다 해봐도 소용없었다. 잠시 후 토잉카가 왔다. 그래도 용케 우리를 찾아왔다. 한 젊은 남자가 내렸다. 아무런 전기장치가 들어오지 않는 것을 보면 아마도 배터리 문제인 것 같다고 내가 말했다. 그는 어디 한번 보자고 했다. 우리 차의 후드를 열자마자 그는 '아하'라며 뭔가 알았다는 기쁜 탄성을 냈다. 그러고 바로 전기가 들어왔다. 배터리 연결선이 빠졌었던 것이다. 그냥 이대로 가면 또 서지 않겠지 물어보니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다시 서면 또 너를 불러야 할 것 같다고 하니 제발 자기를 부르지는 말라고 한다. 나도 그러고 싶다고 했다. 비 오는 깜깜한 밤에 나오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으랴. 그는 웃는 얼굴로 잘 가라고 말한 후 큰 토잉카를 타고 우렁찬 소리를 내며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