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에 되돌아보는 2005년 여행
- 2005년 뉴욕에 처음으로 갔다. 같은 미국에 살고 있지만 뉴욕은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뉴욕을 안 가보고는 미국이 어떻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뉴욕을 여러 차례 다녀온 지금은 과연 미국이 어떻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지 못하다. 미국은 너무나 크고, 너무나 다양한 인종이 섞여서 살고 있어서 한마디로 단정하기는 무리다. 뉴욕뿐이 아니라 동부와 서부, 북부와 남부 등 여러 지역을 경험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알아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뉴욕 여행을 준비하느라 좀 바빴다. 이번 뉴욕 여행은 결정되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다. 처음에는 소피와 세라가 겨울 방학 때 한국에 한 달 정도 가고, 나는 가을에 보스턴에 일주일 정도 다녀오려고 했었다. 소피와 세라가 한국에 가는 주목적은 장모님을 만나는 것인데 차라리 장모님을 하와이로 오시게 하는 게 낫지 않을까. 내가 보스턴에 혼자 가느니 가족과 함께 가는 것이 낫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이 떠돌다가 결국에는 장모님을 겨울에 오시게 하고 가을에 셋이서 일주일간 여행을 가기로 했다.
목적지가 보스턴에서 뉴욕으로 바뀌게 된 사연. 보스턴에 가서 하버드 MIT 등을 둘러보는 것도 좋지만 하와이에서 보스턴까지 가서 뉴욕을 보지 않고 온다는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고, 뉴욕에 먼저 가서 구경하다가 보스턴에 하루 이틀 갔다 와야지 하는 생각이었는데, 항공권을 하와이-뉴욕-보스턴-하와이 이런 식으로 끊으려니까 비용이 만만치 않다. 그래서 목적지는 결국 뉴욕으로 낙찰됐다. 하지만 아직 모른다. 뉴욕에서 볼장 다 봤다 생각되면 보스턴으로 하루정도 다녀오는 것은 여전히 가능하다. 뉴욕에서 보스턴까지는 항공기로 한 시간, 앰트랙으로 4시간, 버스로 4시간 30분, 가격은 항공기> 앰트랙> 버스 순이다. '풍화'라고 중국계 이민자들이 운영하는 버스가 있는데 값은 무척 저렴해서 편도 15달러라고.
보스턴 갈 줄 알고 사다 놓은 <Time Out Boston> 은 책꽂이에 꽃아 둔 채 도서관에서 뉴욕에 관한 책을 몇 권 빌렸다. 일반 여행안내책자보다 아이들을 위해 나온 책이 더 잘되어 있었다. 뉴욕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사실 몇 가지.
- 전에 버펄로 윙을 먹으면서 왜 치킨인데 버펄로 윙이라고 했을까 의문이 들었다. 버펄로 윙은 뉴욕주의 버펄로 지역에서 치킨 윙으로 처음 만든 요리라는 사실.
- 뉴욕주가 생각보다 엄청 크다는 사실. 뉴욕주는 위로 캐나다까지 닿아 있고, 근처 몇 개 주를 합친 것보다 훨씬 크다. 뉴욕시는 아주 작고 그중에서도 모든 것이 맨해튼에 집중되어 있지만 퀸스, 브롱스, 브루클린, (또 하나가 뭐드라...) 등 다섯 개의 지역으로 나뉘어 있다는 사실.
- 맨해튼이 업타운, 미드 타운, 다운타운으로 나뉘어 있는데 다운타운이란 말이 여기서 유래된 것이 아닌가 하는 짐작. (이것은 사실로 밝혀진 것이 아니라 내 짐작임).
- 뉴욕 책에서 읽었나 보스턴 책에서 읽었나 자세한 기억은 안 나지만, 'patriot'라는 단어가 그냥 '애국자'인 줄로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독립전쟁 즈음에 영국의 지배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그렇게 불렀다는 사실. 영국을 숭배하는 측은 royalist라고 한다고. 마지막으로 뉴욕 책을 읽으며 느낀 것 한 가지. 배울 건 많고, 시간을 짧아.
앞으로 5일 후 이 시간에는 미대륙 위를 날고 있을 것이다. 새벽에 샌프란시스코에서 비행기를 막 갈아타고, 동쪽으로 날고 있을 시간이니 아마 채 서부를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전날 호놀룰루-샌프란시스코 항공기에서 선잠을 잤을 테니 허리는 아프고, 다리는 뻐근하겠지만, 이제 조금 후면 도착하는 뉴욕 여행에 대한 기대로 마음은 다소 설렐 것이다. 항공기를 타고 가면서 떠나기 전에 들었던 의문 한 가지는 해결됐을 것이다. 그 의문이란 순진한 것이긴 하지만 "서부에서 동부로 갈 때 항공기 아래로 대륙을 볼 수 있느냐" 하는 것. 지금 생각엔 항공 고도가 너무 높기 때문에 볼 수 없을 것이고 다만 이착륙 때만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안 가봤으니 알 수가 있나. 그래서 직접 체험이 중요한 것이리라. 내가 지금은 항공길로 미 대륙을 그냥 스쳐지나지만 나중에는 꼭 지상으로 대륙횡단을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번 여행은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인터넷 여행업체 익스피디아를 통해서 항공권과 호텔, 시티패스를 예약했다. 예약하는 것은 좋았는데, 일정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돌아오는 날 출발 시간이 오전 이른 시간이고 공항이 호텔에서 먼듯해 호텔을 이틀 정도 공항 근처로 옮겼는데, 체인지 요금이 적지 않다. 호텔 가격은 더 싼데 50불을 더 요구했다. 냈다. 또 출발 일정을 금요일 밤으로 당겨보려 했더니, 한 사람당 체인지 요금으로 항공사에서 100불씩, 그리고 엑스피디아에서 30불씩 부과한다고 한다. 세명이니까 390불을 그냥 내라는 것이다. 결국 바꾸는 것을 포기하고 원래대로 두었지만, 찜찜하다. 여행 일정이란 언제든 변경될 수 있는 것이고, 출발이 아직 5일이나 남았는데 바꾸는 요금을 그렇게까지 받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이런 기억은 다음 여행 때 엑스피디아를 이용하기 어렵게 하고, 결국 엑스피디아는 고객을 놓치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드디어 뉴욕으로 떠날 날이 밝았다. 소피는 며칠 전부터 집안 청소며, 냉장고 정리며 한다고 분주하고, 세라는 몇 밤이 남았는지 세면서 왜 날짜가 빨리 안 가냐고, 기다리기 어렵다고 푸념을 했다. 떠날 날이 밝았지만 항공기 시간이 밤 9시 50분이라서 아직도 여유가 있다. 가방을 대충 꾸려놓고, 일정표를 점검했다. <킬 빌>을 다시 한번 보면서 그럭저럭 시간을 때우다 보니 저녁시간이 다 됐다. 낮에 점심으로 메밀국수를 먹어서인지 떠날 때가 다 됐는데 배가 좀 고프다. 공항에서 먹을 생각으로 다이에이 마켓에 가서 도시락을 사 가지고 왔다. 오면서 우리를 공항에 데려다 줄 동료에게 전화해서 시간을 맞추어놓았다.
집에서 7시 35분 출발, 7시 50분쯤 호놀룰루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첫 비행기인 ATA 앞 e-ticket 부스에서 티켓팅을 하려는데 자꾸 에러가 난다. 항공사 직원의 도움으로 티켓팅을 하고 출발 게이트로 들어갔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컨티넨탈로 항공기를 갈아타야 하니까 스카이패스 마일리지를 쌓으려고 컨티넨탈 부스에서 기다렸으나 앞에 있던 사람이 너무 오래 시간을 끌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갈아탈 때 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그냥 출발 게이트로 향했다. 검색 게이트를 통과한 후 스타박스에서 물을 사고 (물이 한 병에 2불 89, 우와~ 너무 비싸다) 커피도 한잔 샀다. (커피 값은 똑같다) ATA 게이트 앞에서 탑승시간이 다됐는데도 탑승 안내가 안 나온다.
불안 초조한 마음으로 이곳저곳 안내판을 둘러보니 항공기 시간이 우리의 출발시간과 다르게 적혀있다. 마침 조종사 인듯한 사람이 있길래 물어봤더니 우리가 탈 비행기가 맞다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도 한 시간 가까이 흘렀는데도 탑승 안내가 없다. 잠시 후 안내방송 내용,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항공시에서 응급환자가 생겨 그 처리 때문에 늦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출발시간보다 한 시간이 조금 더 지난 후 탑승이 시작됐다. 이대로 가면 샌프란시스코에서 갈아탈 비행기를 놓칠 듯... 내 마음은 급한데 항공기는 서서히 출발해 호놀룰루를 벗어나고 있었다. 기내 좌석은 22 A, B, C. 호놀룰루 야경이 아름답다.
뉴욕은 다섯 개의 boroughs로 이루어져 있다. Manhattan, Bronx, Queens, Brooklyn, 그리고 Staten Island 다. Lower Manhattan으로부터 14th St. 까지를 다운타운이라고 한다. 14th St. 위로부터 59th St. 까지가 미드타운, 59th St. 위로부터 96th St. 까지가 업타운이다. 96th St. 위쪽으로는 Upper Manhattan이라고 한다.
전에는 여행 시 익스피디아 (Expedia)를 많이 이용했었다. 언젠가부터 항공사와 호텔, 랜트카 등을 각각 따로 예약한다. 익스피디아를 통해서 한 번에 예약하면 가격 면에서 할인이 좀 되긴 한다. 하지만 일정을 하나로 묶어놓다 보니 변경할 일이 생기면 좀 곤란해진다. 지금은 익스피디아도 일정 변경에 있어서 유동성이 좀 생겼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뭔가에 묶여있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동부에 처음 갈 때만 해도 세라가 그쪽에서 살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뉴욕은 아니고 보스턴에서 7년째 살고 있다. 어렸을 때 뉴욕으로 여행 간 것과 지금 세라가 지금 보스턴에서 살고 있는 것이 어떤 인과관계가 있을까가 궁금하다.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하와이에 살게 되기 이전에 여행으로 하와이를 방문했었던 것처럼. 우연이든 필연이든 사람은 관심이 가는 쪽으로 더 생각하게 되고, 언젠가는 실행으로 옮겨지기도 하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