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 여행 14

2020년에 돌아본 2011년 캠퍼스 투어

by Blue 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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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의 둘째 날이다. 오늘 일정은 칼리지 투어의 마지막인 콜롬비아대학에 갔다가 코리아타운에 들러서 점심을 먹은 후 월스트릿 쪽으로 향하는 일정을 잡았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보스턴 여행 13'을 읽은 사람들 중에 혹시 궁금해하는 독자를 위해 알려줄 것 한 가지: 소피의 지갑은 호텔방에 고이 모셔져 있었다.


미국 대학의 칼리지 투어는 보통 1시간 정도 설명회를 한 다음 각 그룹별로 나눠서 재학생 하나가 가이드를 맡아 학교 건물을 돌면서 설명해주는 식으로 진행된다. 설명회에서는 그 학교의 입학에 관한 전반적인 설명과 장학제도 등을 알려주고 학생이나 학부모의 질문을 받는 식으로 진행된다. 아니 그렇게 진행될 것으로 미루어 짐작한다. 왜 짐작만 하냐면 한 번도 그 설명회에는 제대로 참가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여러 차례 참가해보려고 했지만 항상 학교에 도착한 시간은 캠퍼스 투어가 이제 막 시작하려 하거나, 이미 시작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여행을 하면서 재빠르게 다녀야 할 텐데 점점 게을러져서 큰일이다.


콜롬비아대학에 도착했을 때도 역시 설명회가 끝나고 캠퍼스 투어가 막 시작된 시간이었다. 콜롬비아대학의 분위기는 그리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프린스턴을 보지 않았으면 다른 느낌이었을 수도 있지만, 이미 고성 같은 프린스턴을 본 이후 아닌가. 그냥 대도시에 있는 명문대학이라는 생각, 오바마 대통령이 여기서 공부했었다는 생각. 그런 생각으로 설명하는 학생을 따라다녔다. 여기서는 기숙사까지 들어가 방도 구경했다. 침대 하나, 책상 하나 들어가 꽉 찬 방이다. 정말 좁다. 하긴 뭐 기숙사 방안에서는 잠만 자고, 공부하는 것이 다니 클 필요는 없다. 뉴욕은 비싼 곳이다.


세라는 지금까지 하바드대학의 분위기를 제일 마음에 들어하더니 콜롬비아대학에서 우리를 안내해준 학생의 한마디 말에 마음이 흔들렸다. "학교에서는 브로드웨이에서 하는 뮤지컬을 10달러~ 20달러에 살 기회도 종종 있다"는 말. 다시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으로 나오니 점심시간이다. 코리아타운에 있는 설렁탕집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오랜만에 신발을 벗고 앉는 마루 위 식탁에서 설렁탕, 순대 같은 것을 시켰다. 셋이서 먹었는데, 그렇게 많이 먹지도 않았는데, 70여 달러가 나왔다. 꽤 비싸다.


점심 후엔 계획대로 월 스트릿 쪽으로 걸었다. 뉴욕 지리를 안내해주는 앱이 스마트폰에 있긴 하지만 앱에 나타나는 내비게이션이 아주 정확하지는 않은 것 같다. 지금 서있는 곳을 대강 알려주기는 하지만 결코 정확하다고는 할 수가 없다. 게다가 햇빛 아래서는 스마트폰 화면이 잘 보이지도 않는다. 차라리 큰 지도를 한 장 들고 다니는 게 낫다. 그래서 지도를 들고 뉴욕 맨해튼에서 아래쪽으로 슬슬 걸었다. 뉴욕에서는 의외로 많이 헤맸는데 항상 비슷한 경우다. 예를 들어 5th Avenue에서 4th Avenue로 가려면 오른쪽으로 가야 하느냐 왼쪽으로 가야 하느냐가 항상 헷갈린다. 스트릿이야 거리가 짧아서 일단 가서 아니면 돌아오면 되지만, 애비뉴는 꽤 걸어가야 하기 때문에 잘못 간 경우 간만큼 돌아와야 하는 데다가 다시 반대쪽으로 그만큼 가야 한다. 발 아픈 건 둘째 치고, 시간낭비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차이나타운, 소호, 월스트릿, 증권거래소를 지나 로우어 맨해튼 끝까지 갔다. 거기 와인 전문 가게가 있어서 와인을 한병 사들고 미드 맨해튼으로 다시 서서히 올라갔다. 전에 왔을 때 로우어 맨해튼에서 배를 타고 자유의 여신상, 스탠튼 아일랜드에 갔었던 생각이 난다. 다시 가보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다. 걸어오다가 소피가 브루클린 브릿지를 걸어서 가보고 싶다고 해서 동쪽으로 살짝 빠져 다리까지 갔다. 걸어서 또는 자전거를 타고 브루클린 다리를 건너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 중간쯤 걸어가는데 노을이 서서히 붉어지기 시작한다. 다리 한가운데에서 바라보는 맨해튼의 고층건물이 노을과 어우러져 아름답다. 고층건물을 아름답다고 표현하는 것이 과연 적당한 지는 모르겠지만.


전에 뉴욕에 왔을 때는 세라가 10살이었다. 로우어 맨해튼에서 겨우 월스트릿까지 걸어가는데 세라는 걷기 싫다고 심통을 부렸었다. 야단맞고 부어서 구경하라는 그라운드 제로에서도 전혀 구경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고등학교 주니어다. 브루클린 다리를 걷고, 월스트릿을 걷고, 한참을 걸어도 싱싱하다. 물론 걸으면서 세라의 눈에 보이는 것은 내 눈에 보이는 것과 다를 것이다. 똑같은 것을 보더라도 그것을 해석하는 방식이 다를 것이다. 나중에 세라의 기억에 남는 뉴욕은 어떤 모습일까. 이제 뉴욕에서 보내는 시간도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




인간이란 참 재미있는 동물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인간의 두뇌란 참 재미있는 물질이다. 똑같은 것을 봐도, 똑같은 것을 경험해도 어떻게 분석하고 반응하느냐에 따라 너무나 큰 차이가 난다. 여행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 여행을 하느냐에 따라 여행이 주는 효과는 천차만별이다. 예를 들어 10대가 여행으로 인해 느끼는 것하고, 40대가 느끼는 것은 달라도 너무나 다르다. 이미 뇌 속에 축적된 인생의 경험이 여행하면서 새로 들어오는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여행자의 심리상태나 관심사에 따라 여행에서 받아들이는 것도 많이 다르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가족여행을 할 때는 아이의 눈높이에 맞는 스케줄을 짜는 것이 중요하다.


세라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뉴욕에 갔을 때의 일이 바로 그런 것이다. 그라운드 제로 앞에서 많은 것을 배우기를 기대하고 거기까지 데려갔는데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당장 먹고 싶은 피자에만 관심을 보인 것.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911 사건 자체가 머릿속에 들어가 있지도 않은 초등학생 아이가 그라운드 제로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그보다는 브롱즈 동물원을 훨씬 재미있어하는 것이 당연하다. 아이들에겐 아이들에게 맞는 볼거리가 있는 것이다. 또 어른이라고 해서 모두가 같은 관심사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똑같이 뉴욕에 가서도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찾아다니는 사람도 있는 반면, 뮤지컬을 보고 맛집 순례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유명 관광지만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 지역 사는 사람들의 일상생활 엿보기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보고 싶은 것을 어떻게 잘 찾아다니며 최대한의 만족을 얻느냐 하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여행의 기술이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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