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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만한 브런치

by 수필버거

흐릿하던 내 글쓰기 욕망은 브런치를 만나 구체화됐다. 시작부터 하고 플랫폼을 찾는 게 일반적이지 싶은데, 플랫폼 때문에 글을 쓰기 시작할 수도 있고 그게 나였다.


브런치를 몰랐을 때에도 아예 안 쓴 건 아니었다. 상황이 답답할 때, 후회에 허우적거릴 때, 갑작스러운 희망가를 부를 때 에버노트에 일기는 간혹 썼다. 작가가 되겠다거나 출간을 하겠다는 마음은 없었다. 오래전부터, 언젠가는 글 쓰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은 막연하게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뚜렷한 욕망으로 인지하지 못해서 '같다'라고 표현한다.


하라 켄야의 무인양품 광고 사진을 처음 봤을 때 느꼈던 것과 같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쁘고 심플했다. 흑백의 여백이 특히 좋았다. 아, 여기엔 뭔가 쓰고 싶다. 브런치와 그렇게 만났다. 브런치팀의 의도가 제대로 먹힌 게 나 같은 케이스겠다. 잘 만든 앱 하나, 훌륭한 기획의 플랫폼 하나가 막연히 꿈만 꾸던 누군가를 쓰게 했다.


브런치 작가 선정이 되어 간간이 글을 쓰기 시작했고, 지금은 책 쓰기 도전도 하고 있다. 노력이 꽤나 들어가는 일을 하고 있자니 알리고 싶어 진다. 야심과 목적이 있는 작가들은 SNS를 활용을 잘한다. 분석해 보자. 성공한 사람 따라 하기도 시간 절약의 좋은 방법이다, 그들의 사례를 눈여겨보고, 내게 맞는 플랫폼과 활용법을 찾기로 했다.

손현 : 각각의 플랫폼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아까 말한 것처럼 모든 콘텐츠가 블로그라는 코어에서 시작하나요?

숭 : 뭔가를 글로 써서 알려야겠다고 생각하면 늘 블로그가 핵심이고요. 글이 아닌 다른 형태의 콘텐츠, 특히 이미지가 메인이면 인스타그램에서 시작해요. 제 콘텐츠가 잘 고여 있을 수 있는 그릇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부터 접근해요. 얼마 가지 않아 증발할 것 같은 플랫폼으로는 시작하지 않아요.

- < 글쓰기의 쓸모, 손현 지음 > 중에서

책의 저자 손현 작가와 숭으로 알려진 마케터 이승희 작가(기록의 쓸모 저자)의 인터뷰에서 발췌했다.


음악 모임을 운영할 때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다. 목적은 공연 정보여서 보기만 하고 포스팅은 하지 않았다.

예전에 미드 CSI에서 살인 사건 피해자의 SNS를 분석하는 에피소드를 본 적이 있다. 드라마 내용은 차치하고, 내가 놀랐던 건 CSI 사무실 벽의 대형 스크린에 피해자의 어릴 때부터 대학생이 될 때까지의 인생이 사진으로 주르륵 나열되는 장면에서였다. SNS로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했지만, 영상으로 한 사람의 생애, 그러니까 아기 때부터 해마다의 생일 파티, 초등, 중등, 고등, 대학교 입학 사진과 여행 기록까지 파노라마처럼 사진으로 일목요연하게 복구해서 볼 수 있다는 데 충격을 받았었다.

구글의 CEO였던 에릭 슈미츠가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어릴 때부터 SNS를 사용하는 아동은 성인이 됐을 때, 법으로 개명을 허용해야 한다는 취지의 내용이었다.(이 인터뷰 기사는 사라졌다. 지금은 구글 검색에 나오지 않는다.) 판단력이 미성숙할 때의 행동은 면죄부를 주자는 뜻이겠다.

실리콘벨리의 많은 CEO들이 미성년 자녀들의 SNS 사용을 엄격히 관리하는 이유도 비슷할 것이다. 중독의 문제도 있겠고.

아무튼 나는 사생활을 SNS에 올리는 게 편치 않다. 생각을 정제하고 다듬은 글은 괜찮다. 페북과 인스타는 빼기로 했다.

손현 : 숭은 저와 블로그 이웃이기도 하죠. 가끔 블로그 글을 읽다 보면, 낙서장처럼 편하게 쓰는 느낌을 받았어요. 플랫폼마다 취하는 태도가 다른가요?

숭 : 블로그에서는 솔직하게 쓰는 편이에요. 약간 폐쇄적인 느낌이랄까요?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이 보고 있을 텐데 저 혼자 쓰는 공간 같아서 편해요. 가끔 강연이나 북 토크 자리에서 블로그 독자를 만나면, 그분들이 힘내라고 계란을 주고 가기도 해요. 인스타그램만 팔로우하는 분은 제가 늘 밝은 사람인 줄 알고요. 브런치는 잘 써야 한다는 마음 때문에 별생각 없이 빠르게 쓰기가 왠지 어렵더라고요. 글을 발행하면 브런치 독자에게 알림이 가니까 약간 부담스러워요. 대신 브런치에 올린 글이 쌓이면, 그걸 엮어 책으로 낼 수 있으니까 그곳에는 글을 신중히 올리고 있어요.

- < 글쓰기의 쓸모, 손현 지음 > 중에서


브런치에 글을 쓰려면 작가 신청을 하라고 했다. '내가 안 써서 그렇지, 쓰기만 쓰면...' 이란 같잖은 생각으로 영화 리뷰 하나 써서 신청하고 툭 떨어졌다. 2개 쓰고 두 번째 탈락, 세 개 쓰고 세 번째 탈락. 연이은 탈락 후 내가 브런치팀이라면 어떤 사람을 통과시킬지 생각했다. 글쓰기의 ABC는 '일단 쓰고, 자주 쓰고, 많이 써라'이다. 심사팀이든, 심사 알고리즘이든 일단 양과 빈도를 볼 것 같았다. 신청서에 참고 SNS 링크를 걸게 만든 이유도 그래서이지 아닐까. 그래, 그럼 쓰지 뭐.


한 달 걸려 스물댓 개의 글을 써서 블로그에 모으고, 신청하고, 선정됐다.

방치했던 블로그 청소를 하고 글을 쓰면서 느낀 건 '이거 참 불편하구나'였다. 뭘 좋아할지 몰라서 다 넣어봤어 같은 느낌. 좋은 기능은 많은데 그래서 오히려 불편했다. 물론 이런 블로그를 오랫동안 잘 활용해서 돈도 벌고 출간까지 하는 사람도 많다. 나처럼 초보자에겐 스킨 꾸미기도 부담스럽고 시간낭비 같았고, 앱에서 글 수정 안 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탐탁지 않아하는 이유는 반대로 누군가에겐 좋은 점일 수도 있다.

한 달을 꾸역꾸역 써서 올려도 하루 방문자는 0이기 일쑤였다. 전체 블로그 숫자가 천만 개는 넘는 것 같다. 치열한 경쟁. 누구 보라고 쓰는 글은 아니었지만, 아무도 안 보니 재미도 없고 흥도 나지 않았다. 몇 년 꾸준히 쓰면 이웃도 늘고 그러긴 하겠지만, 까마득해 보였다. 내겐 너무 먼 길이고 신나지 않은 일이다. 블로그도 탈락.


브런치 글에서도 블로그용과 브런치용을 따로 쓴다는 내용을 종종 본다. 별도로 쓰지 않으면 블로그에 쓴 글 중 반응 좋은 것을 골라 브런치에 올리는 사람이 많아 보인다.

나도 브런치에 올릴 글을 쓸 땐 나름 신중하다. 내용 검열도 하고 고쳐쓰기도 해서 발행한다. 약간의 긴장감 같은 게 있다.


정리하자면, 글이든 사진이든 페북과 인스타에 올리긴 좀 거시기하다. 올려도 볼 사람도 없다. 유튜브아직은 시청자가 편하다. 블로그도 지금 마음으론 그닥이다.


연극배우에 비유하면 이렇다.

에버노트, 노션은 혼자 대본을 외우고 연습을 하는 내 집, 내 방 같다. 정말 개인 공간이다. 메모 앱은 나만 본다.

블로그는 극단 연습실 같다. 혼자라도 실전처럼 연습을 하고 상대 배우와 합을 맞춰보는 공간. 리허설을 하는 장소.

브런치는 준비한 공연을 펼치는 초연 무대 같다. 오래 연습을 했지만 막상 무대에선 또 고쳐야 할 것들이 보이는 첫 공연. 배우는 회차를 거듭하며 점점 발전할 것이고 새롭고 많은 기회를 만날 것이다.


나는 브런치만 쓴다. 브런치에만 쓴다. 당분간 다른 SNS는 쓰지 않을 생각이다.

브런치. 쓸만하고 쓸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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