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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작가님!

by 수필버거

갓 창업한 서른 살 청년이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어렵게 만난 지역 도매업계 1위 업체 사장님 앞에서 왜 국산 제품이 필요한지 랩 하듯 설명했다. 언제 가라고 할지 모르니까 숨 쉬는 시간도 아까웠다. 구구절절한 내 설명을 묵묵히 듣고만 있던 사장님은 매장 뒤편의 휴게 공간으로 가자고 했다. 손수 봉지 커피 한 잔을 타주며 서울의 누구, 전주, 광주의 누구를 아냐고 물었다. 당연히 나는 아무도 몰랐다. 업계 지형에 무지했으니까. 헛웃음을 짓더니 업체 리스트가 프린트된 A4 용지 한 장을 내밀었다.

"ㅇ 사장, 전국 각 지역 대표 도매업체 명단이요. 아버지 대부터 모임을 같이 하는 사장님들이니, 내가 연락처 줬다 하고 만나보시오."

"저, 사장 아닙니다. 부장인데요." 하는 내게 "허허허, 열심히 잘해봐요." 했다.


창고 빼면 세 평도 안 되는 사무실로 돌아와 전화를 돌렸다.

"대구 아무개 사장님 소개로 전화드립니다. xx라는 회사의 ㅇㅇㅇ부장입니다. 찾아뵙고 상품 소개를 드리고 싶습니다."

"아, 그래요? 한번 와봐요."

엉? 이렇게 쉽게 만나준다고? 어제까지 '아, 됐어요' 란 말만 줄곧 들었었는데.

다음날부터 매일 서울로, 대전으로, 광주, 전주 심지어 제주까지 돌아다녔다. 시장 진입에 속도가 붙었다.


어리숙한 태도는 사장 같지 않았겠지만, 열정으로 초짜 사장임을 들켰다고 생각한다. 처음으로 ㅇ 사장이라고 불린 그날 이후, 점차 입점과 매출 늘면서 '부장' 명함을 버리고 '대표' 명함을 새로 팠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부장 운운은 그만뒀다. 생초보 사장임을 솔직하게 밝히고 도움을 청했다. 그제야 해볼 만하겠다는 희망이 생기면서, 사장으로서의 꿈도 조금씩 자라기 시작했다.


브런치에서는 글을 쓰는 사람을 ‘작가’라고 부른다. 출간 경험이 없어도, 등단을 하지 않아도, 자신만의 시선을 담아 세상을 향해 글을 쓰는 사람이 브런치 작가다.
- < 오늘부터 나는 브랜드가 되기로 했다, 김키미 지음 > 중에서


전혀 새롭지 않지만 이상하게 신선한 느낌을 주는 작가의 정의(定義)를 내세우며 브런치가 출범했다. 2015년 6월 22일 베타 서비스를 시작했다고 한다.


앞의 글에 썼듯이, 작가는 직업을 나타내는 단어지만 특이하고 묘한 로망과 아우라가 있다. 작가는 허가, 등록, 임명으로 획득하는 직업이 아닌데 마치 그런 절차를 통과해야 가질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주는 단어다. 자신을 작가라고 소개할 때나 남이 작가라고 불러줄 때 겸연쩍다면, 등단이나 출간 여부가 작가의 기준이라고 믿는 마음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글쎄요, 감히 제가 작가일까요?' 같은 마음.


브런치의 심플한 에디터에 글을 쓰는 기능은 가입자 모두에게 열려 있지만, 여러 사람이 볼 수 있게 글을 발행하는 기능은 작가에게만 한정된다. 브런치 작가가 되려면 ‘작가 신청’을 하고 심사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작가 심사 제도는 론칭 한 달을 앞두고 내려진 결정이다. 오픈 즉시 서비스 운영 모드가 가동되면 스팸성 글과 싸우느라 멤버 모두가 주의를 빼앗길 수도 있는 상황. 아름다운 디자인과 스마트한 에디터라는 분명한 강점이 있었지만, 초반 골든 타임에 메인 타깃에게 브런치를 알리려면 두 가지가 필요했다. 효율적인 리소스 관리와 보다 강력한 바이럴 포인트.
- < 오늘부터 나는 브랜드가 되기로 했다, 김키미 지음 > 중에서


마케팅 수단이라 하더라도, 작가라고 부르기로 한 브런치의 결정과 심사 제도를 도입하기로 한 결정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다.

쓸까 말까, 내가 글을 써도 되는 사람일까? 쓰고 싶은 마음은 있으나 누가 읽어도 걱정, 아무도 안 읽어도 걱정, 쓰지도 않고 걱정만 늘어진 상태로 지냈었다.


브런치의 작가 신청으로 테스트를 해 보기로 했다. 지난 글에 언급한 대로 여러 번 떨어졌다. 엄한 브런치 욕도 했고, 그러면 그렇지 하는 자조(自嘲)에 빠지기도 했다. 긴 텀을 두고 신청을 몇 번 한 끝에 심사를 통과했다. 그때 받은 '안녕하세요, 작가님!'으로 시작하는 메일이 주는 기쁨은 아주 컸다. 책도 안 썼는데 작가라고 불러주다니. 감격. 당신은 써도 되는 사람입니다란 인정을 받은 느낌이었다. 브런치가 불러준 작가님! 이란 인정(?)이, 나를 삼 년간 쓰는 사람으로 살게 했다.


인정 욕구는 인간 본성이다. 인정은 안과 밖에서 온다. 나를 인정하는 마음인 자신감이 약할 때는 외부의 인정이 용기가 된다. 밖으로부터의 인정으로 힘을 냈다면 이제 내면의 인정으로 단단해져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작가라는 자의식을 갖고 싶었다. 책 한 권 분량을 쓰는 경험을 통해 역량을 검증해보라는 장강명 작가의 주장에 나는 격하게 동의했다.


글쓰기는 고독한 작업이고 인내를 요하는 일이라고 한다. 한번 해 볼까 하고 덤비기도 어렵지만 진득하게 한 주제로 원고지 600매를 쓰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걸, 겨우 이 책의 일곱 번째 글을 쓰면서 깨닫고 있는 중이다. 아무도 읽지 않는 블로그에서 책 쓰기를 시작했다면 지치지 않고 계속 쓸 수 있을까? 내가 하는 짓이 그렇지 뭐 하며 포기하지 않을까? 브런치 작가라는 인정은 힘이 세다.


브런치가 아니었으면 지금 하는 책 쓰기 도전도 아마 10년쯤 후에 겨우 시작하지 않았을까 싶다.

브런치의 인정으로 용기 낸 글쓰기가 셀프 인정까지 더해 오래갈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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