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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필버거 Oct 17. 2023

쉬는 마음


하루 종일 책만 읽는, 그런 날이 있다.  
어떤 책에 꽂혀서 왼종일 뻐근한 눈을 비비며 책만 들고 앉아 있는 날.


하루 종일 한 달 자금 지출 목록을 정리하고, 그걸 바탕으로 결산서를 만들고, 또 그걸 바탕으로 삼 개월 예상 자금 발란스 표를 만드는 날이 있다. 왼종일 엑셀만 눈 빨개지게 쳐다보고 숫자를 두드려 넣는 날.

소설만 읽은 날과 숫자와 씨름한 날은 뭔가를 한 것 같아서 기분이 약간 뿌듯하다. 피로는 보람으로 조금 상쇄된다.

하루 종일 드라마를 보는 날도 있다. 밥 먹고, 화장실 가고, 걷는 시간을 뺀 나머지 시간 대부분을 화면 앞에 앉아 있은 날.
 
일요일이자 연휴 중간에 낀 휴일이었던 엊그제 그랬다. 아내는 장모와 볼일이 있다고 친정으로 가고 나는 빈 시간이 생겼다. 하려고 들면 할 일이야 없겠냐만, 그냥 어쩌다 보기 시작한 드라마에 꽂혀버렸고 내리 다섯 편을 몰아봤다.


죙일 논 기분.
하루를 날려버린 기분.
여릿한 죄책감이 스멀거리는 날.

뭐가 다를까.
책도 드라마도 모두 작가와 감독, 스태프들이 갖은 애를 써서 만든 창작물인데.
활자를 읽거나 엑셀을 두드리는 일만 보람 있는 일일까.
아니, 일만 보람일까.  

나는, 쉬는 마음을 잃어버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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