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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필버거 Jul 29. 2022

그 여름, 저녁엔

쉰, 삶은 여전하다

오래 살았던 아파트 우리 동 바로 앞에는 놀이터가 있었다.


일찍 퇴근 한 날은 찬 물에 땀을 씻고 뽀송한 츄리닝 차림으로 마루에 앉아 아이들의 높고 맑은 목소리와 웃음소리를 들었다. 티브이는 틀지 않는다. 세상 어느 프로그램이 그토록 생기 찬 소리를 들려줄까.


우리 집 삼 형제의 소리가 제일 크다. 친구 이름을 부르는 소리, 아이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과장된 하이톤의 웃음소리, 타다다닥 뛰는 소리.


슬리퍼를 신고 어슬렁 나가면 아빠~~ 하며 달려오는 막내, 이거 좀 봐봐 소리치며 손을 잡아 끄는 둘째, 이제 제법 컸다고 동네 아이들 틈에서 대장노릇하려고 소리 지르고 있는 큰애를 본다.


해거름 무렵 된장찌개와 구운 생선 냄새가 물안개처럼 아파트 넓은 주차장에 오르면, 젊은 엄마들이 모여든다. 승우야, 혜민아, 창선아, 밥 먹자 하다가, 안녕하세요 정인이 아빠, 오늘 일찍 들어오셨네요, 네 그러네요, 잘 계시죠, 인사를 주고받는다.


더 놀겠다고 떼를 쓰는 아이들을 억지로 끌고 들어다. 욕실에 우르르 몰아넣고 한 놈씩 비누칠을 해서 세워놓고 샤워기로 세 녀석에게 물을 쏜다. 꺄악, 으하하하. 한바탕 물세례를 맞은 녀석들을 아내와 둘이 순서대로 큰 타월로 닦아 마루로 후처 낸다. 에어컨으로 시원해진 마루를 발가벗고 뛰어다닌다.  큰 놈이나 막내나 똑같다. 1층이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을까.


과일을 먹으며 티브이를 보는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슬며시 밖으로 나간다.

밖은 어둡다. 가로등이 비추는 놀이터는 텅 비어 고요하다.  




일찍 마감을 하고 동네 목욕탕에 들러 땀을 씻고 빵과 우유를 먹었다.

그 아파트에는 유치원이 있었다. 유치원은 커피숍이 됐다. 이젠, 아이들이 없어서.

오래된 아파트는 나무 울창하다.


유치원, 아니 커피숍 앞에 차를 세우고 뒷좌석의 백팩을 꺼내 멘다.

숍에 들어가며 매미 소리를 들었다.

올해 처음인가? 아니겠지?

매미 소리가 유난스럽다.

매애~~~~~ 떼창.

 

노트북을 고, 사장님과 인사를 하며 커피를 받았다.

에어컨이 유난히 시원한 집. 설정 온도가 18도쯤 되는 것 같다.

노트북 화면을 보며 잠시 앉았다가 슬그머니 밖으로 나왔다.

 

유치원이 있던 건물이라 작은 잔디 마당이 있다. 출입구 옆 벤치에 앉아 우렁찬 매미 소리를 들었다.

짙은 나무 그늘이 연한 여름 바람도 시원하게 느끼게 돕는다.


매미 소리가 일순 그친다. 잠시 뒤 또 요란스레 울겠지.

짧은 적막 속에 나뭇잎이 살랑거린다.


오래전 그 여름의 저녁을 생각했다.

그때는 키가 작았을 나무 사이로 작은 하늘이 보인다.


오래 앉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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