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필버거 Sep 24. 2023

단지 조금 돌아갈 뿐


사람은 먼 미래에서 희망을 보고 가까운 미래에서 불안을 는 법이다.



월말을 앞두고 며칠 동안 불안이 미열처럼 지속됐다.
마음 바닥까지 흔들릴 정도는 아니지만 땀 흘린 후 샤워를 못한 것처럼 내내 찜찜하다.
원인은 안다. 알지만 어찌할 수는 없는 일처럼 느껴진다.

바라는 대로 되게 하기 위해 내가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운동삼아 앞산을 오르내린 지 사오 년 됐다.
처음엔 가장 큰길, 가장 사람이 많은 길을 걸었다.
갈림길이 있어도 눈길도 주지 못했다.
호흡은 거칠어지고 허벅지 뒷 근육이 땅기고 엉덩이가 팍팍해서 경치나 길을 살필 여력이 없었다.

산책으로 정상까지 오를 일은 없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연신 시계를 보고 돌아가는 시간을 가늠하며 적당한 반환점만 찾았다.

산길이 익숙해질 무렵부터 갈림길이 나오면 가지 않던 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너무 가팔라서 후회한 길도 있고 막혀서 되돌아온 암자 가는 길도 있다.
하산길도 그랬다. 험해서 나무를 잡고 걸음을 디딘 길도 있고, 회사와 너무 먼 장소로 내려가서 예정보다 한참의 시간을 더 들여 돌아온 적도 있다.

지금 가진, 꽤 많은 산책길 조합은 그렇게 얻었다.
이제는 그날의 일정과 컨디션에 맞춰 삼십 분짜리에서 한 시간짜리까지 다양한 선택지에서 골라 걷는다.



시행착오를 겪었어도 길을 잃을 일은 없었다.
어느 길을 택해도 걷는 사람이 있었다.
사람 못 갈 길은 없었다.
조금 돌고 조금 오래 걸을 뿐, 어차피 내 근육과 폐와 그리고 심장에 이로운 일이다.


불안이 조금 가벼워졌다.


이전 07화 가을을 겪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