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에 고마운 것, 한국에 감사한 것
6개월 어학연수도 안 해본 내가 "이제는 나갈 때가 됐다"며 직장과 모든 것을 내려두고 스페인에 온 지도 1년이 훌쩍 지났다. 1년을 채우지 못하고 외로워서든, 아파서든, 다른 이유에서든 돌아오게 되면 어떡하나 걱정하며 출발선을 떠났는데 걱정하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문득 책상 앞에 써붙인 포스트잍의 문구를 한 번 보게 된다
상상할 수 있는 걱정들 때문에 상상할 수 없는 기회를 놓치지 말아라
하지만 그 1년 동안 내 통장 잔고는 빈곤해졌다. '학생 비자'로 스페인에서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여기서 경제활동을 할 수 없다. 직장을 구하려면 학생비자로 3년을 꽉 채워야 취업비자를 위한 구직활동이 가능하다. (학생비자로 아르바이트를 구해볼 수도 있으나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해서 스페인에 오기 전, 이 상황을 고려해서 잔고를 만들어놓고 나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매일, 매월 줄어드는 통장 잔고를 보면서 심장이 쪼들리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나는 오늘을 살고 있고, 그래도 나는 지금 이곳에 있음에 행복을 더 느끼려고 노력하고, 불안함보다는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자고 나 스스로를 격려한다. 글로는 이렇게 한 줄로 쓸 수 있지만 쉬운 일은 아니어서 매일 나를 세뇌시키 듯 되뇌고 있다
그게 나, '스페인 백수'가 여기서 살아가고 있는 방법이다
반복되는 일상에 지루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에 불안할 때가 많지만 주위를 둘러볼 때면 아름다운 파란 하늘과 아름다운 풍경들이 쏟아진다. 여전히 부족한 스페인어지만 처음과 비교하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좋아졌고, 좋은 사람들로부터 좋은 자극을 받고 있다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면서 나는 나 자신을, 내 능력을, 내 감정을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들여다본 나는 생각보다 정말 텅 비어있는 인간이었다. 나름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왔지만 그게 내 속을 온전히 꽉 채워주지는 못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여기서 진짜 홀로서기를 하고 있다
가끔은 사람들이 그립다. 다행히 자주 그렇지는 않다. 해외살이에 도전하는 열 중 아홉은 '외로움'때문에 한국으로 돌아간다던데 정말 다행인 부분이다. 그래도 가끔은 너무 사람이 그립고 친구들이 보고 싶다. 그래서 친구들이 '유럽'으로 여행을 온다고 할 때면 가능한 저가항공을 끊고 그들을 만나러 떠난다
유럽에 살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유럽여행'을 하기 위해 예전처럼 큰돈을 쓰지 않아도 되지만 그렇다고 매달 여행을 하지는 않는다. (사실 처음 1년간은 거의 한 달에 한 번은 여행을 했다. 보통 스페인 내 여행을 했고 분기에 한 번 정도는 스페인 외 유럽 국가에 갔다) '백수'임이 서러우면서도 좋다
그리고 오늘도 나는, 또 친구들이 언제 놀러 오려나 생각해본다. 그러고 보면 내년 5월에 황금연휴가 있다던데
그리고 해외에서 살면서 나는 더욱 분명하게 '나는 한국인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한국에 살고 있을 때는 내 국적에 대해 깊게 생각해볼 일이 없었는데 여기 나와서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과 얘기를 하다 보면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은 더욱 선명하고 깊어진다
그 중에서도 한식을 얘기할 때가 제일 기분이 좋다. 내가 한식 관련자도 아니고 요리를 잘 하는 것도 아닌데, 괜히 한국음식을 얘기할 때면 더 우리나라가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그리고 한국이 뭔가 좋은 업적을 만들었거나 좋은 뉴스가 들려오면 내 어깨는 하늘로 치솟는다. 'BTS 감사합니다', '삼성 감사합니다'라고도 종종 생각한다
나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