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도 말하지 못했던 코로나 일지 (1)
5월의 평화로운 일상을 지내던 어느 날, 두통이 느껴졌다. '아 또 두통인가... 하루 푹 쉬면 괜찮겠지'라고 생각했지만 다음 날 아침 일어났을 때 두통은 더 심해져있었다. 최근 수업을 들으면서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발생한 편두통이라 생각하고 그날도 조금 더 쉬기로 했다. 그런데 몇 시간이 지나자 열과 몸살이 시작됐다
"아... 감기인가"
2-3년에 한 번씩은 꼭 오뉴월 감기에 걸리는 나는 열과 몸살이 감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후각과 미각에는 전혀 이상이 없었고 피로감이나 다른 의심 증상도 없었기 때문. 고열과 몸살을 버티기 힘들 때면 기어가서 해열제를 먹었다. 30분에서 한 시간 정도 지나면 살만했다
그렇게 이틀 밤을 뒤척이며 앓고 나니 열이 좀 떨어진 게 느껴졌다. 몸살도 어제, 그제보다 많이 줄었다. '역시 오뉴월 감기였군...'라고 나 혼자 정의를 내렸다. 한국처럼 PCR 검사가 공짜였다면 '시국도 시국이니 한 번 받아보자'라고 생각했겠지만 여기서는 보통 코로나 검사 비용이 100유로(한화 약 14만 원)이다. 학생에게는 다소 부담이 가는 금액.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세뇌시키듯 '오뉴월 감기야'라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하지만
시국이 시국이라.... 마음속 한 켠에는 계속 찜찜함이 남아있었다. 그렇게 며칠간 그 찜찜함을 마음에 품고 있다가 결국 종합병원에 예약을 잡았다. -스페인은 예약의 나라다. 뭐 소소한 거 하나를 하려고 해도 예약부터 잡아야 한다- 날 좋은 일요일, '어쩌피 음성 나오겠지만, 그래도 검사 결과받으면 마음이 더 놓일 테니~'라고 생각하며 병원으로 갔다. 검사는 정말 금방 끝났다. 마스크를 내리고, 양쪽 콧구멍에 한 번씩 기이이인 면봉을 넣었다 빼면 끝
스페인에는 두 가지 검사가 있다. PCR 검사는 24시간 정도 후에 결과가 나오고, 그보다 저렴한 항원 검사(test de antigenos)는 한 시간이면 결과가 나온다. 저렴한데도 검사가 더 빨리 나오는 이유는 조금 더 간략한 검사이기 때문. 그래서인지 항원 검사에서는 음성을 받았는데, PCR 검사를 받으면 양성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반대 경우는 없다
집으로 돌아가 바로 샤워를 하러 화장실로 직행했다. 한 시간 안에 검사 결과가 나온다고 했으니 샤워하고 나오면 그쯤 문자가 오겠구나 싶었다. 양성이면 전화, 음성이면 문자가 오는 데 이때까지 나는 내가 당연히 음성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늘 마스크를 썼고, 손을 잘 씻었고, 사람이 많은 곳은 가지도 않았으니깐
하지만 내 기대와는 달리, 샤워를 마치고 방에 돌아왔을 때 내 핸드폰에는 부재중 전화가 하나 와 있었다.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조심히 다녔는데, 그렇게 신경 썼는데! 억울했다.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은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확진자라고. 부들거리는 손과 마음을 다잡으며 부재중 전화로 남은 번호에 전화를 걸었고 나는 다시 한번 내가 확진자라는 선고를 받았다
"제가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하나요" 들려오는 답변은 조금 황당했다. "일요일이라 담당 직원이 출근을 안 했고, 자신을 잘 모른다"라는 것. 내가 보통의 스페인 사람이었다면 이 사람이 나한테 얘기해줄 수 있는 내용이 달랐겠지만 나는 철저히 외국인이다. 스페인에 세금을 내지 않으니 공보험이 없고, 공공의료를 이용할 수 있는 자격이 없다. "아마 내일 담당기관에서 전화가 갈 거다. 일단 방에서 나가지 말고 자가격리를 하고 있어라"라는 말을 덧붙였다
얼이 빠졌다
나는 스페인 공보험도 없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하지. 아 일단은 같이 사는 플랫 메이트에게 얘기를 해야겠구나. 정말 말 그대로 얼이 빠졌지만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얘기를 전했다. 밀접접촉자로 PCR검사를 받아야 할 사람은 딱 4명 있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두 음성이었다
부모님에게는 말할 수 없었다. 선천적으로 몸이 그렇게 튼튼한 편은 아니기 때문에 코로나가 터질 때부터 하루하루 엄청나게 걱정하신 걸 뻔히 아는데, 이 사실을 아시면 억장이 무너질 게 뻔했다. 다음 주 영상통화를 할 때는 조금 더 뻔뻔하게 표정연기를 해야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도 얘기하지 않기로 했다. "어떡해. 괜찮아?"라고 물어봤을 때 "걱정 마. 괜찮아"라고 답할 자신이 없었다. 나는 전혀 괜찮지 않았다
확진을 받고 나니 남아있는 미열이 더 뜨끈해진 느낌이 들었다. 오한도 더 심해지는 것만 같았다. 숨 쉬는 데에 문제는 없었지만 가슴이 더 갑갑하게 느껴졌다. 식욕도 사라졌다
그렇게 10일간의 자가격리, 방콕 생활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