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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SJ Jul 08. 2021

열이 38.8도로 올랐고, 스페인 구급차에 실려갔다

어디에도 말하지 못했던 코로나 일지 (3)


한국에서 코로나에 걸렸으면 경증이어도 센터에 입원했겠지만 여기는 스페인이다. 나에게 내려진 지시사항은 간단명료했다


1. 방에만 있을 것

2. 아플 때는 파라세타몰 복용

3. 열이 38도 이상으로 오르거나 숨 쉬기가 어려울 때는 병원으로 올 것 (20시 이후에는 보건소 문이 닫으니 앰뷸런스로 연락할 것)


2-3일간 독한 몸살과 오한, 열에 시달린 이후에는 37도대의 미열과 조금의 오한, 몸살이 있던 뿐이라 나는 그저 1,2번 지침을 지켜가고 있었다. 양성 확진을 받고 이틀 후, 자가격리 2일 차의 밤 갑자기 열이 올랐다. 저녁을 먹을 때까지만 해도-1~2시간에 한 번 씩은 열을 쟀다- 37.5도 정도였는데 몸이 조금 뜨거운 것 같아 열을 재보니 37.8도다. 순간 불안감이 나를 휘두르면서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갑자기 심장이 왜 이렇게 뛰지!? 진정하자 진정해' 숨을 쉬기 어려운지 확인해봤지만 호흡에는 별 문제가 없는 것 같았다.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으며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했지만 심장은 계속 엄청난 속도로 뛰었고, 10분 뒤 다시 열을 제보자 38.3도로 올라 있었다


우리나라는 소방서는 119, 경찰서가 112이지만 스페인에서는 112로 번호가 통일되어 있다. 내 상황에 따라 담당자가 경찰차를 보내거나 앰뷸런스, 소방차를 보내는 방식. 112에 전화해 상황을 설명하자 담당자는 지역을 확인하고 내가 살고 있는 지역 담당자로 전화를 돌려줬다. 이걸 두 번 더 반복하고 나서야 "지금은 앰뷸런스가 모두 나가 있으니 시간이 조금 걸릴 거예요. 집에서 기다려주세요"라는 답을 받을 수 있었다. 전화를 마치고 다시 열을 재보니 38.8도였다






구급차가 언제 도착할지도 모르고, 병원에 가서 어떤 검사를 받게 될지, 입원을 하게 될지 등 내가 예측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앰뷸런스가 오면 바로 떠날 수 있게 일단 짐을 싸두기로 했다. 어제 그제 아파서-정확히는 확진 판정받고 너무 우울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씻지 않았는데 병원에 들어가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르니 짐을 싼 후에는 빨리 샤워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배낭에 온갖 물건을 챙겨 넣었다. 수업을 듣기 위해 필요한 노트북과 필기구, 아이패드와 충전기, 혹시 입원기간이 길어지면 읽을 책, 속옷과 양말, 뜨거운 물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티백, 기타 등등... 후다닥 짐을 싸고 씻으러 가려던 차 누군가가 현관문을 두드렸다. 구급대원들이었다






방역복을 입은 구급대원들을 몇 번이나 거리에서 봤었다. 하지만 눈앞에서 그들을 볼 때도 마치 TV 속 화면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었다. 그런데 내 눈앞에 구급대원들이 지금 내 눈앞에 서있다. 내게 증상을 물어보고 열과 혈압 등을 잰다. 사람 일 참 알 수가 없는 거다





약을 한 알 먹은 덕분인지 다행히 열은 38.8도에서 더 오르지 않았다. 그래도 38도가 넘으니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가기로 했다. "심장이 엄청 빠르게 뛰었어요. 왜 그런 걸까요" 불안감에 가득 찬 내 목소리는 옅게 떨리고 있었다. 내 마음속에 가득 찬 불안감이 그들에게도 보였는지 하얀 옷을 입은 천사들은 나를 다독이며 "원래 열이 높으면 잘 발생하는 현상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라며 다독였다. 상냥한 눈빛과 목소리로 나를 다독여주던 대원 덕분에 금세 안심이 되었고, 그녀는 내가 병원 의사에게 인계될 때까지 쭈욱 옆에 있어주었다


스페인에서 구급차를 탈 일이 생기다니. 이런 일은 절대 겪고 싶지 않았는데 말이다. 구급차를 탄 건 이걸로 두 번째다. 20여 년 전 한국에서 탔던 구급차와는 분위기가 꽤 다르다. 하긴 그 긴 시간이 지났으니 한국 구급차도 내부가 많이 바뀌지 않았을까? 그나저나 이제 또 구급차 탈 일 없겠지? 없어야 해! 이게 마지막 경험이 될 테니 사진이나 찍어두자!.... 마음속으로 혼잣말을 끊임없이 하며 사진을 한 장 찍었다






병원에 도착하니 DNI(스페인 주민등록증), TIS(스페인 의료건강보험 번호)를 물어본다. 학생 비자로 스페인에 머물고 있는 나는 그 어느 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 이 상황을 설명하는 건 이미 여러 번 해본 터라 익숙하다. 막힘없이 스페인어 문장을 쏟아냈지만 불안한 마음은 있다. '아, 진료 못 받으면 어떻게 하지. 그냥 집에 돌아가라고 하면 어쩌지' 열심히 컴퓨터로 데이터를 입력하던 직원은 "접수 완료했어. 코로나는 TIS 없어도 무료로 병원에서 케어해줄 거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라고 친절하게 안내해주었다





건물 안쪽으로 쭉 들어가니 복도 양쪽으로 방들이 이어져 있었다. 이게 말로만 듣던 음압병실인가! 또 사진을 찍었다. 생각해보면 사진을 찍던 순간부터는 이미 상태가 많이 괜찮았던 것 같다. 의사가 건네 준 체온계로 온도를 재어보니 37.7도로 떨어져 있었다. 혈압이나 다른 부분도 괜찮았다. 급 멀쩡해진 내 상태를 보며 의사는 '진짜 아팠던 거 맞니...?'라는 눈빛을 보냈지만 혹시 모르니 다른 검사도 조금 더 해보자고 했다


환자 간 공간은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었지만 이곳에 있는 약 3시간 동안-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 다른 방에 있는 환자의 목소리는 뚜렷하게 들렸다. 아니, 정확하게는 목소리가 아니라 끊임없는 기침 소리들이 들렸다





산소포화도 검사 등 추가 검사에서도 내 몸은 정상 범위로 돌아와 있었다. 적어도 하룻밤은 입원하게 될 줄 알았는데 의사는 입원을 할 필요가 전혀 없다며  파라세타몰(해열제) 링겔만 다 맞고 나면 귀가해도 된다고 했다. 링거 덕분인지 몸 상태가 마치 코로나에 걸리기 전처럼 쌩쌩하게 돌아간 것 같았다. 그리고 링겔을 다 맞고 자리를 떠날 준비를 하던 때, 작은 문제가 하나 발생했다.



구급차를 불러줄 수가 없어


올 때는 구급차를 타고 왔지만, 갈 때는 구급차를 불러줄 수가 없다고 한다. 병원에는 지금 구급차가 없고 다른 구급차를 부르기에는 내가 TIS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에 불러줄 수가 없다는 거다. '그럼 난 어떻게 돌아가...?'라는 눈빛을 쏘아붙이자 의사는 "집에서 데리러 올 사람 없니?"라고 묻는다. 한국이라면 가족이 데리러 오겠지만 여기서는 그럴 사람이 있을 리가. 고개를 저으니 "음... 병원 앞에 택시가 있을지도 몰라"라고 한다. 더 이상 의사와 얘기하는 건 도움이 되지 않을 듯하다


택시 기사를 혹시 모를 위험에 노출되게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나는 집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다행히 우리 집은 산세바스티안에서 병원과 가장 가까운 동네에 위치해 있으니 병원에서 쭉 걸어가도 30분이면 도착할 듯하다. 지금 시간이 새벽 2시라는 것과 병원이 조금 외진 곳에 있다는 조건만 빼고 보면 그다지 나쁘지 않은 상황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수밖에 없었다



20분 걸은 뒤, 산에서 벗어나 드디어 도시



어제 CT를 찍으러 보건소에 갈 때는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고 옆구리가 아팠는데, 지금은 링겔을 맞은 덕분인지 전혀 힘들지 않다. (링겔 짱) 열흘간 정말 방에만 갇혀있을 줄 알았는데 어제는 보건소에 다녀오느라 잠깐 밖을 걸었고, 오늘은 또 이렇게 밖을 걷게 된다. 이 날 밤공기를 쐬며 기분 좋게 걸은 덕분에 나는 나머지 자가격리 기간을 방에서 버틸 수 있었다 -물론 많이 불편하기는 했지만-


밤이라 거리에 사람도 전혀 없으니 더욱 좋다. 어제까지 입고 있던 핫핑크 색의 잠옷을 두고 남색 파자마를 입고 나와서 다행이다. 구급대원분이 정말 친절했다. 좋았다


코로나는 참으로 괴로웠다. 몸도 아프고 힘들었고 무엇보다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엄청났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몇 주 뒤에 글을 써서 올릴 것 같지만 나는 후유증을 겪고 있다. 다행히 일상에 지장이 갈 정도는 아니지만 몸이 불편하고, 심리적으로는 더 불편하다. 하지만 아픈 만큼 고마웠던 존재들, 다행이라고 생각한 것들도 많았다. 무엇보다 심각한 증상이나 후유증 없이 일상으로 돌아왔음에 감사한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코로나를 한 걸음 더 이겨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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