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장여행그램013. From Jeju, Korea
한장여행그램 013. 제주에 살어리랏다
그곳에 살어리랏다.
제주에 살어리랏다.
사랑해 마지않는 그곳에서
사랑하는 나의 님과
오늘 밤 단 둘이서 party party
행복을 예감하는 행복한 party
사랑을 느끼면서 party
고전부터 현대까지의 모든 가사가 잘 어울리는
제주에 살어리랏다.
애인이 뭐 이러니?
오랜만에 연애를 시작한 그녀의 이름을 발신자 화면에서 봤을 때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이 놈의 계집애, 연애 투정을 부리려 전화하는구나. 그녀의 애인은 같은 회사 상사였다. 그녀가 입사하자마자 그의 눈빛이 달랐다나 뭐라나.
그녀는 늘 인기가 많았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좀처럼 그녀에게 다가오지 못했고, 결국 그녀가 사원에서 대리가 되고서야 마음을 고백했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지켜본 그는 듬직하고 좋은 성품을 가진 사람이라고 했다. 그녀와 그는 3년 동안 묵혀왔던 몽글몽글한 감정을 본격적으로 하트 빛으로 물들이려 했으나,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떨어졌다.
"태국으로 발령받았대! 최소 두 달이래."
사귀기로 시작한 날보다 더 많은 날들을 태국에서 보내야 한다고 했다. 회사에서 내려온 결정이라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지만 속상한 마음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게다가 출국일은 바로 내일이었다. 그녀는 바쁜 일정 탓에 출국일까지 일해야 하는 그에게 한바탕 투정을 쏟아내고 나에게 전화했다고 했다.
"그래서 말인데, 제주에 잠시 다녀와야겠어."
여자의 마음을 알다가도 모른다더니, 어째서 갑자기 제주로 불똥이 튄 것일까.
"갑자기 제주는 왜?"
"매일 같이 있다가 혼자 덩그러니 떨어진 기분이 싫어. 기분 전환하러 혼자 제주 가서 바람 좀 쐬고 와야겠어."
그녀는 곁에 있던 그가 갑자기 사라진 상실감이 생각보다 자신을 힘들게 한다고 했다. 그래서 여행을 가기로 결심했다고. 여행 준비하면서 정신없이 지내다 보면 두 달은 금세 지나가 있을 거라 그렇게 믿는다고 했다. 평소 제주여행을 많이 한 나에게 전화를 건 진짜 이유라고 했다.
"제주여행 많이 해봤지?"
"응 일곱 번 정도 여행했지."
그녀는 그 좁은 땅덩어리에 일곱 번 씩이나 갈 곳이 있냐고 반문했다.
"갈 때마다 더 좋아. 난 정말 제주가 좋아. 살고 싶을 만큼."
"제주에 내려가서 살 거야? 효리 언니처럼?"
"내가 돈만 많았어도 효리언니보다 먼저 내려갔을걸."
여자들의 대화가 늘 그렇듯, 자연스럽게 주제는 애인 험담에서 제주살이로 옮겨졌다. 그녀는 제주가 좋은 이유를 물었고, 나는 팍팍한 도시에서 사는 것보다 슬로우 라이프를 즐길 수 있는 제주가 좋다고 말했다. 그녀는 가족과 떨어져살 수 있냐고 물었고, 나는 넓은 마당에서 강아지를 키우며 남편과 살거라 말했다. 그녀는 돈은 어떻게 벌거냐고 물었고, 나는 삶은 어떻게든 이어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제주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늘 제주에서 머무는 상상을 하곤 했다. 그곳의 삶이, 도시의 삶보다 더 나으리라는 보장은 없었지만 그래도 도시의 삶보다는 행복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아직은 막연한 꿈이지만 함께 제주여행을 꿈꾸는 짝꿍이 있으니 못 이룰 것도 없겠다 싶다.
"그러니깐, 네 말은 나중에 남편과 함께 내려가서 오순도순 여유롭게 살겠다는 거구나."
"강아지 두 마리랑 내 미모를 똑 닮은 아기도 함께."
"갑자기 제주에 내려가기 싫어지네."
"왜?"
"네 이야기를 들으며 상상했는데, 제주가 너무 로맨틱한 거지. 나쁜 년. 애인과 떨어져 있는 나에게 꼭 그래야 했니. 하여튼 있는 것들이 더 그래요."
그녀는 내 덕에 제주가 너무 로맨틱해져서 혼자 가는 자신이 처량해졌다고 말했다. 위로받으려고 전화했다가 염장만 얻어간다고도 했다. 그리고는 내가 말해준 제주의 숨은 비경들은 두 달 뒤, 애인님과 함께 갈 것이며 오늘 받은 염장 같은 수모는 꼭 돌려주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한참을 싱글의 서러움을 성토하던 그녀는 갑자기 '야! 오빠한테 전화 들어왔다. 얼른 끊어!'를 외치고 수화기 너머로 사라졌다. 그리고 몇 달 후 그녀의 SNS 프로필엔 아름다운 제주의 해변을 배경 삼아 찍은 커플 사진이 걸려있었고, 주말이 지날 때면 쉴 새 없이 데이트 사진이 업데이트되었다.
두 달 동안 외롭다고 훌쩍이던 과거의 그녀에게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그녀는 연일 러브러브모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흐믓한 미소로 그녀의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르는 일 뿐.
오늘도 역시, 너의 행복한 연애에 '좋아요♡'
(하여튼 있는 것들이 더해요. 라는 말은 너에게 반사♡)
한장의 사진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 여행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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