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장여행그램 014. From Jioufen, Taipei.
한장여행그램 014. 엽서를 보냅니다.
여행 오면 늘 엽서를 보냅니다.
가장 여행지스러운 엽서를 골라
사랑하는 이들에게 편지를 씁니다.
한 글자 한 글자 예쁜 말들만 골라
엽서에 담다 보면
어느 새 엽서의 빈 공간이 모두 사라집니다.
못다 전한 마음이 있을까
작은 공간을 찾아 한 글자 더 적어 넣습니다.
며칠 후면 만날 이들이지만 그래도 엽서를 보냅니다.
엽서를 받는다는 건 늘 행복한 일이니까요.
여행을 가면 반드시 하게 되는 자신만의 시그니처 행동들이 있다.
누군가는 세계 각국 냉장고 자석을 모으고, 또 어떤 이는 각국의 젤리를 모으는 사람도 있다. 나는 한 때 각국의 티팟 세트를 모았는데, 장거리 배낭여행 족이 되고부터는 깨지기 쉬운 도자기류를 감당할 수 없어 포기했다. 그렇다고 나의 시그니처 행동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티팟 세트와 함께 여행객이 되면 늘 해오던 일이 있었는데, 바로 엽서 쓰기다.
내가 현재 머물고 있는 이 낯선 땅을 가장 잘 설명해줄 수 있는 사진엽서를 골라 들뜬 마음으로 카페로 간다. 대 여섯 장 되는 엽서를 테이블 위에 펼치고 엽서를 받을 사람들을 떠올리는데, 이 작업이 바로 나만의 엽서 선별작업이다. 이 선별작업에선 나의 주관적인 사심이 듬뿍 들어간다. 요즘 직장에서 우울함을 겪는 친구에겐 차분한 위로를 줄 수 있는 노을이 담긴 엽서를, 행복한 연애를 시작한 친구에게는 햇살이 아름답게 내리쬐는 밝은 엽서를 보낸다. 다음에 함께 여행 왔으면 싶은 이에게는 보는 즉시 여행 지름신이 내려오는 어마 무시한 엽서를 고른다. 마지막으로 부모님에게는 '내가 지금 있는 곳이 이토록 아름다우니 걱정은 안 하셔도 괜찮습니다'라는 일명 걱정 잡아먹는 안심 엽서를 쓰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렇게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엽서 선별 작업이 끝나면 나는 하루를 통으로 엽서 쓰는 날로 비운다. 카페 앉아서, 게스트 하우스 베란다에서, 혹은 잠들기 전 침대 위에 누워서. 그렇게 한 글자 한 글자씩 꼭꼭 눌러쓴다. 혹시라도 못다 전한 마음들이 남을까 작은 공간까지 빈틈없이 채운다. 엽서를 쓰기 전에 '무슨 말을 할까' 하다가도 '잘 지내니?' 한마디로 시작된 이야기를 끝날 줄을 모른다. 그래서, 늘 엽서는 모자라다.
엽서의 내용은 사실 시시껄렁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다. 일기장에 적어도 될 만큼 사적인 이야기도 서슴없이 적기도 한다. 내 고민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위로받으니, 이때다 싶어 엽서 위에 어리광을 쏟아낸다. 며칠 후면 만날 이들이지만, 그래도 엽서를 쓰고 보낸다.
마음이 가득 담긴 엽서를 받는 건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니깐. 그 사실을 알기에 나는 여행을 다닐 때면, 기쁜 마음으로 엽서를 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가 보낸 엽서로 인해 지루했던 하루에 작은 미소가 번지길. 아무 일도 안 일어날 것 같은 푸석한 삶 속에 피어나는 작은 초콜릿 상자 같은 행복함을 주길. 나는 속으로 그렇게 바라면서 우표를 붙이고, 무사히 도착하길 바라는 짧은 기도를 하고 엽서를 보낸다.
사실 나는 여행에 가지 않아도 엽서를 보내는 날이 있다. 매일 얼굴을 보고, 매일 통화를 하고, 시도 때도 없이 카톡! 카톡 하는 부모님에게 가끔 엽서를 보낸다. 수 천자를 쓸 수 있는 메신저가 있지만 손글씨로 부모님과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 날이면 동네 문구점에 들러 마음에 드는 엽서를 산다.
아무런 해프닝이 없을 때 엽서를 보낸 다는 것은 생각보다 민망한 일이다. 드릴 때도 멋쩍고 쓸 때는 더 멋쩍다. 어릴 때, '부모님께'로 시작하는 효심 날리는 편지는 많이 써봤지만, 일상적인 엽서는 나도 처음이라 첫 글씨를 쓰기까지 많이 망설였던 기억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엽서라는 존재는 참 재밌다. '엄마, 아빠 한솔이예요.'라는 한 마디를 쓰자마자 연달아 쓸 말이 줄줄이 소시지처럼 딸려나오니. 엽서, 이 놈은 참 재주가 보통이 아닌 것 같다.
그렇게 부모님께 여러 번의 엽서를 보냈다. 별 이야기가 없는 엽서라도 딸내미의 손글씨로 묻는 안부가 꽤 마음에 드신 모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생각지도 못한 답장이 왔다.
안녕. 얼굴 매일 보면서 편지 쓰니 새롭다.
답장을 쓰도록 노력할게
마음이 가득 담긴 엽서를 받을 때마다 행복해진단다.
사랑해 이쁜 딸. 일하랴 살림하랴 많이 힘들지?
그래도 잘하고 있어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받는 사람: 매일 봐도 보고 싶은 사람
보내는 사람 : 경북 영천군 자양면 삼귀 1동 아랫귀미 극실댁 손녀
엄마는 어릴 때 살던 동네 지명과 어르신들에게 불리던 애칭을 써서 답장을 보내셨다. 부모님의 답장이 아니라 나를 사랑해주는 한 사람과 편지를 나누는 기분이었다. 눈물이 왈칵 났다. 엽서라는 놈은 정말 재주가 대단해서 당할 재간이 없다. 고작 종이 한 장 주제에 우리 엄마를 행복하게 하고, 나를 울게 만들다니.
앞으로도, 영원히 나의 여행 시그니처 행동은 '엽서 보내기'가 될 것 같다. 한 통의 답장으로 엽서가 얼마나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지 또 한번 깨닫게 되었으니, 앞으로도 계속 내 엽서는 배달될 것 같다. 바람이 있다면, 엽서 보내기가 여행 시그니처를 넘어 내 인생 라이프 시그니처가 되기를 빌어본다. 언제 가는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에게 내 엽서가 가는 날이 오기를. 바라고 또 바라본다.
한장의 사진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 여행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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