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장여행그램022. From Taipei, Taiwan
한장여행그램 022. 야시장에서 만원이면 충분해요
야시장 없는 아시아 여행은
앙꼬 없는 단팥빵
아시아 - 야시장 = 0
아시아 여행에서 야시장이 없다면 어떨까?
아, 야시장을 사랑하는 나에겐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괴로운 설정이다. 그건 마치 탐스러운 딸기를 빼놓고 만드는 생크림 케이크와 같고, 고전적으로 접근하면 앙꼬 없는 단팥빵과 같은 셈이다. 야시장을 위해서 아시아 여행을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나 같은 '야시장족'들에게는 야시장은 그런 존재다. 아시아 여행의 결정적 존재, 아시아 여행의 목적.
나는 야시장의 사람 냄새가 좋다. 까맣게 그을린 얼굴로 인심 좋게 웃어주시는 상인들의 얼굴을 만나는 일은 여행자의 마음을 푸근하게 해준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눈과 귀가 풍성해지는 것은 야시장뿐이리라. 노련한 솜씨로 부지런히 만들어내는 아시아 특유의 길거리 음식은 입까지 풍족하게 만들어준다. 솔직하게 내 마음을 풀어내면, 사람 냄새보다 야시장의 저렴한 물가가 제일 좋다. 매년 살인적으로 오르는 서울의 물가에 시무룩했던 나를 달래 주는 것만 같다. 만원 한 장으로 풍족하고 윤택한 저녁을 보낼 수 있는 이곳을 싫어할 이유는 전혀 없다. 반면에 이곳을 사랑할 이유는 충분하다!
습하고 무더웠던 낮의 무기력함을 날려버리는 듯한 야시장의 선선한 공기는 시원한 맥주를 끌어당긴다. 게다가 저렴하고 맛있는 안주가 우리 눈 앞에서 불에 구워지고, 볶아지고, 튀겨지고 있으니 금상첨화가 따로 없다. 아무리 많이 먹고, 마셔도 여행자의 주머니는 고맙게도 아직 이 밤을 즐기기 충분하다 말한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반드시 호와 불호가 있다는 말처럼, 이토록 좋은 야시장을 앞에 두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나의 여행 동행자, J양이 바로 불호의 주인공이다.
길거리에서 파는 음식을 먹지 않는, 아니 먹지 못하는 J의 고백에 나는 곤혹을 치러야 했다. 채식주의자 선배와 여행하면서 육식의 즐거움을 살포시 놓은 적이 있었지만, 아예 길거리 음식 자체를 먹지 못하니 이거 참,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 친구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한테 길에서 파는 음식은 비위생적이니, 먹지 말라는 교육을 받았다고 했다. 좋은 말씀이고, 건강을 위한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야시장을 사랑하는 여행자로 바라봤을 땐, 너무나 슬픈 선택이 아닐 수 없었다. 나에겐 그녀의 선택을 비난할 권리도 음식을 먹으라 강요할 권리도 없었다. 다만 여행 동행자로써 아쉬워할 수밖에.
그녀는 야시장 구경을 하는 도중에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가끔 나도 길거리에서 파는 음식을 마음대로 먹고 싶어. 하지만 어릴 때부터 몸에 밴 습관이라 나도 어쩔 수가 없어. 네 여행을 망쳐서 미안해."
"괜찮아. 내 여행을 위해서 네 여행을 망칠 수 없잖아. 눈으로 실컷 담고 가자."
나는 그녀를 위해 매장 내에서 판매되는 음식을 먹었고, 그녀는 나를 위해 매일 야시장 투어를 다녔다. 우리의 여행은 오롯이 하나 될 수 없었지만, 여행 동행자가 가져야 할 양보의 미덕을 톡톡히 배웠다.
만약 그녀와 내가 야시장의 밤을 함께 즐거워하며 누렸다면 추억할 기억이 하나 더 생겼을 것이다. 무더운 낮을 시샘하듯 선선하게 불어오는 야시장의 밤 기운을,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닭꼬치의 행복을, 얼음이 동동 떠다니는 동남아 특유의 맥주의 기억을 그녀와 함께 나누지 못함이 참 아쉽고, 아쉽다.
매서웠던 꽃샘추위가 지고, 따뜻한 꽃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이 왔다. 저녁에 길을 걸어도 더 이상 어깨를 움츠리지 않는다. 밤거리를 걷고 싶은 바람이 불어오면, 야시장의 선선한 밤이 제멋대로 기억난다.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맥주를 마시던 야시장에 머물던 그때가 생각난다. 앞으로 날씨가 더 따뜻해지면 여기저기 밤거리를 쏘다니며 여행 앓이에 몸살을 앓겠지. 야시장에 갈 수 없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 한 가지다.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셀프 야시장. 치킨과 맥주를 들고 한강 노상을 펼치는 일. 단일 메뉴라 조금 섭섭하긴 하지만, 한국에서만 맛볼 수 있는 야시장 메뉴니 다시 생각해보면 특별한 메뉴다. 더욱이, 내 여행 메이트였던 J양과도 함께 할 수 있으니 더 좋지 아니 한가.
여러모로, 밤(夜)에 먹는 음식은 대만이든, 태국이든, 한국이든 참 좋은 것 같다.
어라, 나는 야시장이 아니라 야식을 좋아했던 건가.
어느 쪽이면 어때, 좋으면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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