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캠퍼스 짝사랑

한장여행그램 021. From Inha, Korea

by 키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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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장여행그램 021. 두근두근 캠퍼스 짝사랑


통통통

캠퍼스를 채우는 농구공 소리

두근두근

내 마음을 채우는 터질듯한 심장 소리

너에게 들릴까

두근두근 뛰는 내 마음을

너는 알까



선배는 늘 나를 농구장 계단에 앉혀두었다.



그 자리는 선배가 농구하는 모습이 가장 잘 보이는 로열석 같은 곳이었다. 나는 그곳에 앉아 선배가 땀 흘리며 열정적으로 농구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선배와 2시에 만나서 과제를 하기로 했다면, 나는 항상 농구 응원 도우미 역할을 30분 정도 마쳐야 선배를 만날 수 있었다.


이럴 거면 30분 후로 약속 잡지 그랬어요?라고 투정을 부리면, 선배는 다음부터 안 그럴게. 얼른 과제하자. 며 다정한 눈길을 했고, 나는 매번 그 눈길에 피, 알겠어요.라고 넘어가고 말았다.


선배를 기다리는 시간이 싫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고 할까. 농구공이 통통통, 선배의 운동화 마찰음이 끼익끼익, 깔끔한 클린 슛이 들어갈 때 나는 경쾌한 찰랑거림. 그중에서 가장 좋은 것은 계단에 앉아있는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선배의 눈길이었다. 지루할 틈 없는 선배의 눈길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앉아 있던 적이 많았다.



그렇다. 눈치챈 것처럼, 나는 선배를 짝사랑 중이다. 그것도 몰래, 아주 열렬히.




선배에게 첫 눈에 반하게 된 날을 기억한다. 아주 시끌벅쩍한 개강파티가 벌어졌던 학교 앞 주막. 술을 먹지 못해 난감해하는 나에게 짓궂은 한 선배는 글라스에 소주를 담아 내게 강요했고, 그때 선배가 구세주처럼 등장했다. 선배는 이런 건 안 먹어도 돼, 기죽을 거 없어, 라며 내 앞에 놓여있던 소주를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었다. 그때부터였다. 내가 선배의 시간표를 알기 위해 동분서주하게 된 것이.



신입생이었던 나는 선배의 시간표를 졸졸 따라다녔다. 매 학기마다 선배의 시간표에 학년 제한이 없기를 빌고 또 빌었다. 그렇게 벚꽃이 지고, 다시 벚꽃이 피어난 2학년 봄이 돼서야 내게도 선배와 함께 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우린 매주 과제를 하기 위해 붙어 다녔고, 그때마다 선배는 나를 농구장 계단에 앉혀두었다.



아까 말했듯이, 농구장 앞에서 선배를 기다리는 시간을 좋아한다. 하지만 늘 그 시간이 좋은 것은 아니다. 특히 오늘처럼, 지나가는 과 선배 언니들의 '쟤야, 맨날 도우미처럼 앉아있는 얘'라는 수군거림을 듣는 날은 선배가 주는 눈길도 나의 초라함을 막을 길이 없다.



시계를 보니 우리가 약속한 시간보다 20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선배는 날 후배 그 이상으로 보지 않은 걸까.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계단에 앉아있는 도우미가 되고 싶지 않아,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 뒤돌아 걸었다.



뒤에서 선배의 다급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치, 이렇게 빨리 올 거면 진작 오던가.



"다 끝났어, 어어, 같이 가자."


선배는 겉옷과 가방을 대충 둘러메고 앞서 걷는 내 앞을 막아섰다.


"화났어?"


슈렉의 고양이 눈길을 하는 선배. 아, 이거 반칙 아니냐. 진짜.



"선배, 진짜 너무해요."

"진짜 미안, 기다리느라 더웠지?"

"네, 더웠어요. 더운 줄만 아세요? 화도 나고 서운도 해요."



선배는 두 손으로 싹싹 빌면서 불쌍한 눈길을 보냈다.



"다시는 안 그럴게요. 과제하러 카페 갈까?"

"저요, 이제 안 할래요."

"어?"

"선배 기다리는 것도, 제가 선밸, 안 해요. 이제 안 할래요."



사람들이 아무리 나를 농구 도우미라고 불러도, 선배에게는 조금은 다른 의미일 줄 알았는데. 내가 매몰차게 뒤돌아 걸어도 선배는 가만히 보고만 있는 걸 보고 깨달았다. 짝사랑이 끝났음을.




짝사랑도 사랑이라, 끝냈더니 이별의 후유증이 있더라. 짝사랑 후유증 첫 번째, 선배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생각만 해도 기분이 시무룩해진다는 것. 두 번째, 꽃도 피고 햇살도 따뜻해도 내 마음은 폭풍을 몰고 오는 먹구름으로 가려져 아무런 의욕도 없다는 것. 하아.



2시, 평소 같으면 선배를 기다렸던 시간. 하지만 지금은 도서관 테라스에서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처럼 철퍼덕 고개를 처박고 짝사랑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때, 선배와 친한 S선배가 전공서적으로 내 머리를 콕콕 찍었다.



"농구 응원단, 왜 여기 있냐."

"저 이제 거기 안 가요."



짝사랑 후유증의 세 번째 증상. 선배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내게 선배의 기억을 상기시켜준다는 것.



"그 녀석이 꽤나 서운하겠네"

"퍽 이 나요."

"너 아직도 모르니?"




나는 지금 하이힐을 신고 선배에게로 뛰어가는 중이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하이힐 굽이 망가지는 게 느껴졌다. 그래도 나는 선배에게 가야 하기에, 선배의 말을 들어야 하기에 뛰고 있다. 단숨에 뛰어온 농구장에 선배는 농구를 하지 않고 계단에 앉아있었다.



"왜 여기 있어요?"

가쁜 숨을 몰아쉬고 선배의 옆자리에 앉았다. 예상치 못한 내 등장에 선배는 놀란 듯 보였다.


"빨리 농구하고 뛰어와요. 그래야 안 들키지."

선배의 귀가 빨개졌다.



"S, 이 자식은 입이 가벼워"

"난 S선배가 입이 가벼워서 좋아요. 무거웠으면 선배가 왜 농구하는지 몰랐을 거 아니에요."



입이 가벼운 S선배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열렬히 짝사랑하는 선배가 짝사랑을 하고 있다고. 그것도 몰래, 아주 열렬하게. 그녀 앞에만 서면 미친 듯이 뛰어대는 심장소리에 자신의 짝사랑이 들킬까, 미련하게 농구를 하고 그녀를 만난다고. 그러니 이 미련한 놈의 짝사랑을 네가 끝내 달라고.



"난 선배의 심장소리가 좋아요. 내가 좋다고 1초마다 말해주는 그 심장소리가 좋아요. 그러니 이제 선배의 심장소리 숨기려고 일부러 농구하지 말아요."


"그동안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네가 그때 그렇게 가버리고 다시는 못 보는 줄 알았어."

"다시는 안 오려고 했어요."

"그런데 어떻게 다시 온 거야?"

"짝사랑 후유증 마지막 증상에 걸렸거든요."



짝사랑 후유증 마지막 증상.

끝났다고 믿었던 짝사랑이 다시 시작되는 것.


조금의 희망이라도 보이면 절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

서글프고 아프고 원망스러워도

상대의 눈길 한 번으로 모든 것이 괜찮아지는 것.

상대방도 나를 좋아하고 있었다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


그게 바로 짝사랑.



P.S 짝사랑을 하고 있는 모든 이들이 봄날의 기적을 맞이하길.





한 장의 사진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 여행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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