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장여행그램 023. From Korea, 캠핑카 전국일주 프로젝트
한장여행그램 023. 청춘들의 밤은 기타와 함께 시작된다.
저녁이 되면 텐트를 치고
타프 아래서 밥을 짓고 요리를 만들었다.
그러다 별이 선명하게 보이는
밤이 찾아오면
기타를 꺼내 노래를 불렀다.
청춘의 밤을 그렇게 시작되었다.
"노래 잘 들었네"
언덕 위의 텐트 주인 아저씨가 탱글한 포도알이 살뜰하게 박혀있는 포도 두 송이을 가져오시면서 말씀하셨다. 캠핑을 하다보면 옆 텐트와 술 한잔 기울이며 음식을 나눠먹을 때도 있지만 오늘처럼 이렇게 예상못한 선물을 받을 때는 더 반갑다. 이런 나눔이 캠핑의 즐거움 아니겠는가.
우리 텐트 보다 위에 터를 잡으셨다는 아저씨는 포도가 담긴 접시를 건네주시면서 흐믓하게 웃고 계셨고, 언덕 위의 텐트에서 아저씨 와이프분이 맛있게 먹으라고 손을 흔들고 계셨다. 우리는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감사합니다. 맛있게 잘 먹겠습니다."
"젊은 친구들이 왔길래, 밤새 술마시고 떠드나 싶어서 와이프랑 걱정을 많이 했어."
아저씨와 와이프분은 저녁을 먹고 주무시려다가 밖에서 들리는 기타 소리에 텐트 문을 열고 나오셨다고 한다. 우리가 부른 노래는 언제 들어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故김광석의 '서른즈음에'였다. 팔영산 캠핑장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아저씨와 우리들 텐트 딱 둘 뿐이었다. 까만 여름밤을 빛내주는 별들만 머물던 팔영산 캠핑장이 우리의 기타 선율로 가득 채워진 것이다. 가만히 노래를 들으시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시장에서 사오신 포도 두 송이를 꺼내들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러 오셨다고 했다.
"우리가 괜한 걱정을 했지뭐야. 이렇게 팔영산의 아름다운 풍경에 취할 수 있는 기타가 울려퍼질 줄 알았으면 환영해줄 걸 그랬어."
남자 넷, 여자 둘. 이렇게 우리 여섯이 캠핑장에 들어서면 늘 따라오는 걱정 중 하나였다. 우리는 아저씨께 작은 의자를 하나 내어드리며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다고 말씀드렸다. 우리는 캠핑카 전국일주를 하고 있었기에, 단 하룻밤의 캠핑을 위해 새벽까지 달리는 그런 무리와는 조금 거리가 멀었다.
저녁이 오면 타프를 세우고 그 날 시장에서 산 재료들로 저녁을 차리곤 했다. 시장 아줌씨들의 솜씨가 가득 담긴 까만 봉지를 열어보면, 손질된 동태, 오징어, 백합, 등갈비 등 지역을 대표하는 다채로운 식재료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숙련된 솜씨로 냄비밥을 준비하고, 찌개를 올리고, 각종 야채를 볶거나 지졌다. 어떤 날은 조개를 가득넣은 된장찌개에 계란 말이를 먹었고, 또 다른 날은 매콤함 닭볶음탕을 한솥 만들어 다음날 아침까지 먹었다.
손님이 오거나 기분을 내고 싶은 날은 캠핑요리를 위해 숯과 그릴을 꺼내기도 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캠핑요리는 재료비와 손이 무척이나 많이 들었지만, 맛은 평소의 저녁보다 못한 경우가 많았다. 요리는 진심이 담겨야 맛있는 법인데, 우리는 맛보다 그럴싸하게 보이기 위해 만든 요리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부족한 요리실력으로 열심히 차린 저녁밥은 20분도 안되서 늘 끝장났다. 수북히 쌓인 빈 그릇을 보고 우리는 항상 이런 말을 했다. 차리는 건 1시간 반인데, 먹는 건 20분채 안 걸리다니. 허무해. 라고 말이다. 그러면 나는 허무함에 늘어져있는 친구들을 향해 어마무시한 말을 건넨다.
"근데 더 무서운 건 무엇인지 알아?"
"뭔데?"
"치우고 설거지하면 또 1시간이 걸려."
"오 마이 갓!"
사람들은 물었다. 캠핑카 전국일주를 하면서 특별한 걸 많이 했겠다고. 하지만 우리는 말한다. 우리의 여행은 특별한 일보다 늘 일상적인 하루의 반복이었다고. 전국 곳곳의 명물과 명소를 사진으로 담고, 눈으로 담고, 입으로 담는 시간은 하루 중 잠깐이었다. 우리의 일과는 굉장히 단순했다. 일어나서 캠핑자리를 정리하고 또 다른 캠핑장으로 이동한다. 그 와중에 시장을 보고, 밥을 짓고, 텐트를 세우고, 설거지를 하면 하루의 끝에 다다르곤 했다. 모든 것이 정리되면 우리는 등불 앞에 모였다. 오늘 하루 보았던 모든 것들을 재잘 재잘 이야기를 하거나 때론 바닥에 누워 하늘의 무수한 별들을 넋 놓고 구경하기도 했다.
스마트폰보다 기타를 만졌고, 노트북보다 서로의 얼굴을 봤다. 이어폰을 빼고 서로의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구글 지도말고 종이 지도를 넓다랗게 펼치고 펜으로 이동장소에 별표를 그렸다. 전국일주 하는 동안 너덜너덜해진 지도에 테이프를 붙이는 것도 중요 일과 중 하나였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하면 참 자질구레한 일이었는데, 그 때는 미간에 집중 주름까지 만들어가며 열심히 붙였다. 그리고 그 자질구레한 모든 것들이 지금 추억이 되었다.
나는 지금 포도를 볼 때마다 팔영산 캠핑장의 아저씨가 떠오른다. 아저씨는 캠핑, 참 좋아. 오늘 밤 참 좋다. 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언덕 위로 올라가셨다. 우리는 아저씨와 와이프 분의 마음이 가득 담긴 포도를 먹었다. 8월의 뜨거운 햇살을 가득 받고 자란 탓인지 포도는 정말 달고 맛있었다. 이 밤이 끝날 때까지 기타를 쳐도 좋다는 아저씨의 호응에 우리는 밤이 새도록 기타 악보의 끝장을 넘겼다.
일에 치여 사는 나에게 캠핑의 추억을 선사하는 것들은 포도 뿐만 아니다. 전국일주를 하는 동안 먹었던 음식, 나눴던 이야기, 실수했던 어설픈 기억들까지 모두 내게 추억을 선사한다. 계란국에 젓갈을 넣는 바람에 모두 버려야했던 그 날의 충격적인 아침까지 지금은 모두 기분좋은 추억이다.
하지만 요즘 글램핑이며 텐트 펜션이며 누구나 쉽게 캠핑을 체험할 수 있는 패키지들이 참 많은 것 같다. 심지어 요리사 분이 직접와서 그릴에 고기를 구워주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편하고, 쉽고, 깔끔한 캠핑. 캠핑 용품을 모두 구매할 수 없는 사람들에겐 저렴한 가격에 캠핑을 맛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 같다.
그렇지만, 캠핑의 진짜 즐거움은 내가 오늘 하루동안 머물 보금자리를 직접 고생하며 만들고, 번거롭지만 요리해서 나눠먹는 그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캠핑의 추억이 켜켜히 쌓이고 추억이 물든다. 귀찮고 수고스럽지만 나중에 돌이켜보면 그 귀찮음과 수고스러움 자체도 추억인 셈이다. 고생은 고생일뿐이라는 생각이 있기에 캠핑이 이래서 호불호가 갈린다. (나는 여전히 호!)
캠핑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써 좋은 캠핑은 캠핑을 기억할 수 있는 단서를 최대한 많이 남겨두는 게 아닐까 감히 이야기해본다. 우리가 포도를 보면서 팔영산의 아름다웠던 밤을 기억하는 것처럼, 아저씨 부부도 포도를 드실 때마다 우리를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 오늘 참, 그 날이 그립다.
+한장여행그램, 조금 더 엿보기
오늘의 엿보기 사진들은 캠핑카 전국일주 프로젝트를 했던 대학생 로드리머 팀들의 사진입니다. 무려 6년 전 여행이네요. 캠핑의 붐이 일어나기 전에 캠핑카 여행 책을 만들겠다고 시작한 프로젝트였습니다. 좋은 기회와 경험이 있었지만, 너무 어렸던 탓에 출판까지는 성공을 못했네요. 하지만 추억만은 꽤 성공적이었습니다. 도와주신 모든 분들 이자리를 빌어 감사함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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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캠핑카 전국일주의 속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다음에 조금 더 자세히 한번 더 찾아오겠습니다.
한 장의 사진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 여행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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